[쿠키 칼럼] 잡스럽다. 마음과 심리를 꿰뚫는다는 토크쇼 ‘화신’(SBS TV)을 두고 하는 얘기다.
생활과 밀접한 궁금증을 시청자와의 소통을 통해 나눈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인데 10여회가 다 되도록 그 정체성이 모호하다. 토크쇼라고 하기엔 주제가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시청자의 연애, 직장생활, 사회 이슈, 패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의 소위 생활밀착 정보를 담아 재밌게 엮은 프로그램’.
그 취지는 그럴 듯해 보이는데 광폭이어서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를 위해 유능한 제작진이 화각을 좁혀 시청자에게 전하는 수고를 한다.
한데, 좁혀진 화각은 이번엔 초점이 흐려 시청자가 눈을 찌푸리고 봐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설문을 통해 제공된 주제는 호기심을 유발하기보다 상식의 확인에 불과해 시청에게 인내를 요구한다. 그렇다고 MC 및 출연자의 언어구사가 촌철살인이라 할 만큼 이슈를 건드리지도 못한다.
9일 방송분에서도 이같은 결점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한마디로 얘기하라면 ‘산만하다’이다.
MC 신동엽과 김희선이 프로그램 속 액자소설처럼 ‘공원에서’라는 남·녀 심리묘사 연기를 하나 시청자에게 남는 건 메시지가 아니라 초밥을 내놓는 신동엽의 ‘더러운 즉석초밥’이다. 신동엽이 초밥을 꾹꾹 주물러 김희선 입에 넣어주는데 김희선은 결국 이것을 먹지 못한다. 먹었다면 블랙코미디라도 될 터이다. 시청자 머리 속에 ‘남녀간 심리차이’는 잊혀지고 ‘더러운 초밥’만 남았다. ‘화성인’ ‘금성인’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화면은 그 허망함을 채우기 위해 다른 출연자의 ‘얼굴 스톱 화면’으로 받쳐 주려 한다. 프로그램의 현 상황을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가수 쌈디와 탤런트 이도영의 아슬아슬한 연애담은 옛 여인에 대한 모독은 아닌가 싶을 만큼 구체적이어서 명예훼손에 가깝다. 토크쇼라는 것은 스태프와 출연자 간의 걸러진 작업 끝에 이뤄지는 ‘연기’이다. 사전 취합하고, 포인트를 잡아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권침해와 성차별적 요소를 걸러내지 못했다면 출연자보다 제작진의 문제다.
잘생긴 남자 연예인에게 저돌적으로 덤벼드는 옛 여자친구 얘기. 남자 연예인들은 자기자랑이지만, 폭로된 여인들에겐 수치스러울 수 있다. ‘3분 증명사진기’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키스를 해댔던 여자가 12일 만에 다른 남자만나 가더라는 ‘악녀이야기’, 키스해 달라고 조르는 중3 여학생에 대한 앞뒤 가리지 않는 토크. 그들은 어떻게든 ‘포인트’가 되기 위해 자신이 살았던 도시와 시기를 특정하며 열을 올렸다. 제작진이 거론된 여성들에게 양해를 얻어 ‘짜고 친다’면야 이해할 수도 있으나 그랬는지 의문이다. 설령 양해를 얻었다 하더라도 성 차별적인 요소가 짙다.
이를 거드는 MC들 또한 가관이다. “저런 행운이 우리에게 올까?”라며 그 얘기가 그 나이대 ‘일반적 연애문화’인양 명분을 준다. 자막은 ‘불공평한 세상’이다. 여성 게스트들은 여성을 위해 주는 척 하면서 차별하는 당돌한 남자들 얘기에 “쎄다” “어머머 세상에” 등으로 애써 웃음을 짓는다.
이건 뭐, 술먹기 게임을 통해 여자 낚는 청소년들의 위험한 치기를 보는 것 같다. 조카뻘 데리고 그 얘기를 듣는 이들(신동엽 윤종신 김희선 양희은 등)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가수 양희은이 그들 얘기에 “(저돌적으로 키스 등을 하는 여성 또는 여학생)걔 이름 뭐니? 걔 아버지 뭐하시니?”하는 멘트는 순발력이 아닌 ‘규범을 담은 가치’의 순간적 반영이다.
토크쇼엔 흡입력 강한 사실(fact)이 있거나 ‘말의 묘미’로 삶의 진실(철학)을 건드려 주어야 한다. 이걸 제작진과 MC가 하는 것이다. 특히 MC는 화각 안에 비춰진 이들을 장악하고 시청자가 불편하지 않게 이끌어야 하는 책무가 있다. 그래서 비싼 돈 주고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이다. 신동엽 김희선 윤종신이 그들이다. 토크쇼의 진짜 스타는 게스트가 아니라 MC인 이유다.
그러나 ‘화신’은 포인트를 잡지 못하는 제작진, 화각 안을 장악 못하는 MC 등으로 2013년판 ‘여유만만’이란 얘기를 듣는다. 4%대의 낮은 시청률엔 이유가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