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항공기 승무원, 백화점 점원, 콜센터 직원 등 슬퍼도 웃어야 하고 화가 나도 참아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의 세계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비밀 모니터링 요원)’라는 현대판 암행어사가 있다. 백화점 편의점 음식점에 손님인 양 방문해 직원들의 서비스 상태를 점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어 고객은 ‘친절’을 누리는 반면, 감정노동자들은 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린다고 호소한다.
경기 성남의 한 은행에 근무하는 이모(30)씨는 “미스터리 쇼퍼가 나오는 기간에는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끊었던 담배를 무는 직원도 있다”며 “한 여직원은 평가 기간 동안 밤을 새워 상품 공부를 했는데 막상 고객에게 피곤한 모습을 보여 나쁜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감정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미스터리 쇼퍼 때문에 하루 종일 웃고 있느라 입 근육에 경련이 생길 지경”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서울 영등포의 한 백화점에서 여성복을 판매하는 직원(33·여)은 “손님이 내 명찰을 쳐다보면 점검 나온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오히려 판매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대부분 전문 대행업체를 통해 미스터리 쇼퍼를 고용한다. 대체로 단기 아르바이트인 경우가 많다. 매장 직원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자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객을 가장해 매장을 방문한 뒤 점원의 복장과 표정, 상품 정보 전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평가 문항은 통상 50개 정도이고 많으면 90개에 달할 때도 있다.
미스터리 쇼퍼를 교육하기 위한 동영상도 있다. 의심을 품은 매장 직원이 “혹시 미스터리 쇼퍼냐”고 물으면 순진한 표정으로 “그게 뭔데요?”라고 답변하라는 식이다. 점원의 친절도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인사해서도 안 된다. 점검이 끝나면 아무도 볼 수 없는 화장실 등으로 이동해 메모지에 결과를 적어야 한다.
이들의 활동범위는 백화점 편의점 관공서 은행 병원 등 다양하다. 버스에 투입돼 기사의 운전 행태를 점검하기도 한다. 평가 기준은 업종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 편의점의 경우 점원이 인사할 때 눈을 맞추지 않으면 점수가 깎인다. 냉동고에 성에가 껴 있거나 삼각김밥 등을 구입하는 손님에게 “데워드릴까요?”라고 묻지 않아도 감점이다. 점검 결과가 기준점수 이하로 떨어지면 점주에게 불이익을 준다.
자동차 판매장을 점검했던 한 미스터리 쇼퍼는 “영업사원의 명함과 간판 사진, 사소한 대화와 인사할 때의 표정까지 낱낱이 적어 보고했다”며 “녹취는 필수”라고 했다. 커피전문점 미스터리 쇼퍼는 커피 한 잔의 무게와 온도까지 잰다.
미스터리 쇼퍼 대행업체에서 최근까지 일한 김모(28·여)씨는 “미스터리 쇼퍼가 종업원 이름, 복장, 청결도, 표정 등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평가하기 때문에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의 감정노동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미스터리 쇼퍼들도 고충이 있다. 자신의 평가가 직원들 커리어에 영향을 미칠까 부담스럽고, 신분을 속여야 하는 고민도 있다. 김씨는 “손님인 척 속이고 거짓말을 하면서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게 곤혹스럽다”며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내가 평가했던 매장은 단 한 번도 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문동성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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