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영업사원의 욕설 파문을 일으키면서 ‘갑(甲)의 횡포’라는 비난에 휩싸였던 남양유업이 9일 대국민사과를 했습니다.
본지 특종 보도 이후 만 4일4시간38분만에 고개 숙여 사과…홍원식 회장은 '꿀먹은 벙어리' 전술?
김웅 대표이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 중림동 엘더블유컨벤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영업현장에서 '밀어내기' 등 잘못된 관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서 "이와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원칙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난 4일 오후 5시52분 국민일보 쿠키뉴스가 특종보도한 지 엿새째, 정확히 말하면 만 4일 4시간 38분 만에 김 대표이사와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 및 지점장 등 13명이
국민 앞에 고개 숙이고 사죄했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장 어디에도 홍원식 회장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甲중의 甲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장막 뒤에 숨어서 TV를 지켜봤을 것입니다.
"언론쯤이야 입막음하면"…취재 들어가자 첫 사과문 준비, 보도한지 18분만에 사과문 발표
쿠키뉴스가 <“자신 있으면 맞짱 뜨든가” 남양유업 직원 폭언 동영상 인터넷 발칵“>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민주당의 새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진행되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한국기자협회 주최 축구대회에 기자들이 선수와 응원부대(?)로 참여하고 있던 터라 토요근무를 하고 있는 김상기 기자를 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막 회사에 출근하니 김 기자가 남양유업 ‘욕설 파일’로 인터넷이 시끄럽다는 보고를 해왔습니다.
포스코에너지의 ‘라면상무’ 사건, 프라임베이커리의 ‘빵회장’ 사건 등 잇따른 갑(甲)의 횡포에 대해 국민적 비난이 거센 가운데 접하는 보고(報告)니 기자의 ‘동물적 감각’이 발동한 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휘발성이 큰 사안인 만큼 위변조의 위험이 있으니 철저한 ‘팩트(facts)’ 확인을 지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양유업 본사에서 김 기자의 취재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욕설 파일’의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2010년 6월 당시 ‘욕설’ 사건이 있은 이후 30대의 영업관리소장과 50대의 대리점주가 만나 화해한 사안이고 사과문을 쓰고 있으니 보도를 유보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러 차례 통화하면서 “저희가 어떻게 하면 기사가 안나갈 수 있느냐”고도 했습니다. 김 기자에게서 남양유업측의 입장을 전해 듣는 순간 남양유업 측이 ‘욕설’ 파일이 언론에 알려지면 큰 변고가 될 것이라는 것과 어떻게 해서든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동시에 “언론쯤이야 얼마든지 입막음할 수 있다”는 오만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감이 들었습니다. 필자에게도 전화 통화 시도가 있었지만 김 기자에게 “최대한 해명과 반론을 반영해주되 바로 전송하라”고 지시했습니다. YTN에서는 오후 6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새로 선출하는 대표와 최고위원을 발표한다는 예고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민주당 새 대표 발표 8분 전에 ‘욕설 파일’ 기사는 전송됐습니다. 그러고 18분이 지난 오후 6시 10분쯤 남양유업은 사과문을 발표했습니다.
<공식 사과문>
남양유업 주식회사 대표이사입니다.
현재 인터넷에 회자되고있는 당사 영업사원 통화녹취록과 관련해 회사의 대표로서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실망을 안겨 드린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해당 영업사원은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며 당사는 사태의 엄중함을 감안, 이를 즉각 수리하였습니다.
아울러 이번 통화 녹취록은 3년 전 내용으로 확인되었으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관리자를 문책하겠습니다.
또한 다시 한번 회사 차원에서 해당 대리점주님께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와함께 임직원들의 인성교육시스템을 재편하고 대리점과 관련한 영업환경 전반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 이번과 같은 사례가 결코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심려를 끼쳐 드린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남양유업 대표이사 배상
2013년 5월 4일<끝>
거짓 해명과 꼼수…욕설당한 점주 "화해는 무슨 화해?"
쿠키뉴스는 특종보도가 나간 지 18만 분만에 발표된 <공식사과문> 내용을 충실히 반영해 기사를 재전송했습니다.
필자가 취재과정과 사과문을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독자들이 모르는 남양유업의 거짓과 꼼수가 숨어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사과문 취지를 보면 “3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 점과 “영업사원 사직서”에 주목해야 합니다. 필자는 3년 전에 있었던 일이고 영업사원을 제물로 삼았으니 언론이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남양유업 관계자의 거짓말이 이러한 확신을 들게 했습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두 사람이 만나 화해했다고 했지만 욕설을 먹은 대리점주의 지인은 기사가 나간 직후 전화를 걸어와 “화해는 무슨 화해? 영업사원과 만난 일도 없다”면서 분노를 표시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필자는 <공식사과문>에 얼마나 진심이 담겨있을지 의문을 가지면서 사태의 파문을 조망해왔습니다.
첫 보도 이후 엿새간 2400건 기사 쏟아져…대국민사과
첫 보도 이후 TV 앞 대국민사과를 한 9일 오후 3시 현재 네이버뉴스에서 <남양유업>이란 키워드로 검색해봤습니다. 무려 2400건에 육박하는 기사가 떴습니다. 언론사마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쏟아진 경마식 물량보도 때문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언론에 적잖은 뭇매를 맞았다고 봐야할 것같습니다. 아마 남양유업 창사 이래 가장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왔을 것입니다.
대국민 사과 전까지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이 조직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대국민 사과로 약간의 반등이 있었지만 황제주로 통했던 남양유업의 시가총액이 닷새만에 1200억원이나 사라졌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검찰은 남양유업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밀어내기’ 관행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민주당 김한길 신임 대표는 5일 골목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6월 국회는 대한민국 모든 乙을 위한 국회가 될 것”이라고 천명하고 나섰습니다.
이러니 남양유업의 상당수 임직원들은 회사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더 이상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선지 오늘 발표한 사과문은 지난 4일 <공식 사과문>을 보다 구체화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다음은 남양유업이 발표한 사과전문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련의 사태에 대해 회사의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고개 숙여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먼저 지난 금요일 온라인상에 공개된 당사 영업사원과 대리점사장님과의 음성녹취록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당사는 환골탈태의 자세로 인성교육 시스템과 영업환경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해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영업현장에서의 밀어내기 등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도 이 같은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와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 개선조치 하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당사와 갈등 관계에 있는 '대리점피해자협의회'에 대해 경찰 고소를 취하하고 화해 노력에 적극 나서겠습니다.
아울러 운영하고 있는 대리점의 영업현장 지원을 확대하고 대리점 자녀 장학금지원 제도와 대리점 고충 처리 기구를 도입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이번 사태를 뼈저린 교훈으로 삼아 대리점과 함께 성장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반성하는 자세로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남양유업이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국민여러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끝>
대국민사과에 여론은 싸늘…"10년간 절규 이제야 사과"
특히 TV 앞에서 ‘밀어내기’ 관행을 인정하고 검찰과 공정위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것은 얼핏 진실성이 담긴 사과문처럼 비쳐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론은 제가 받은 인상과는 사뭇 다릅니다. 대국민 사과문 발표 이후 남양유업대리점주협의회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이날 오후 남양유업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의 진정성을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전산조작을 통한 밀어내기 행위, 유통기한 임박 상품 보내기 행위, 유통업체 파견사원 임금 떠넘기기 행위, 각종 떡값 요구 행위, 대리점주의 인격을 짓밟는 고압적 언어와 행동 등을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대리점주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를 향해서는 대리점 형태의 사업장을 보호할 수 있는 일명 ‘남양유업방지법’을 청원할테니 조속히 마련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인터넷과 SNS에 올라오는 반응도 대리점주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 대리점주들과 국민들은 왜 남양유업의 대국민사과를 ‘쇼’로 생각할까요? 한 대리점주가 “10년 동안 남양유업 측에 절규를 했는데 이제야 사과문을 발표했다”고 밝힌 것에서 답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과는 시작에 불과…'甲중의 甲' 홍 회장, 꼼수 접고 직접 나서야
사과문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사과문 그대로 실천을 담보하지 않는 한, 한낱 휴지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휴지로 만들 수 있는 힘은 甲중의 甲 홍 회장에게 있습니다. 홍 회장은 TV에 나오는게 죽기보다 싫을 것입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말입니다. 그동안의 취재 경험상 검찰 소환 단계에서는 피할 길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답은? 대리점주들이 하루 빨리 현업에 복귀하고 남양유업 임직원과 가족들이 다리 쭉 뻗고 잠잘 수 있는 산업평화가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것의 키는 홍 회장이 쥐고 있습니다. 더 이상 꼼수는 안 통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대한민국 모든 갑을관계가 상생적 동반자 관계로 바로 서길 기대해 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재호 기자 j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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