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임천용이라는 사람이 있다. 북한 특수부대 장교 출신이라고 한다. 이 사람은 지난 13일 ‘TV조선’ 시사 프로그램 ‘장성민의 시사탱크’에서, ‘5·18은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한 무장폭동’이라는 주장을 했다.
임씨는 “5·18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군 1개 대대가 침투했다”, “(5·18 당시)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라고 한 것이다. 화면 자막에는 ‘임천용 현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전 북한 특수부대 장교’로 나와 있다.
김명국이란 북한이탈주민이 있다고 한다. 이 사람이 지난 15일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시사프로그램 ‘김광현의 탕탕평평’에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전라도 사람들은 광주 폭동이 그렇게 들통 나면 유공자 대우를 못 받는다” “광주폭동 때 참가했던 사람들 가운데 조장, 부조장들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다” “머리 좀 긴 애들은 다 (북한) 전투원이다”
이렇게 엄청난 주장을 하는 김씨는 이 프로그램에서 가명으로 처리됐다.
이들의 주장이 5·18 하루를 앞두고 일파만파다. 33년 전 역사적 사실에 대해 ‘북한의 5·18 개입설’을 제기한 셈이다.
한데 임천용 김명국 이 두사람의 발언은 취중 얘기가 아니다. 골목에서 장기 두다가 나눈 얘기도 아니다. 서울 종묘 앞에서 휴식하는 노인을 상대로 한 얘기도 아니다.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렇게 주장했다.
소위 종편은 미디어 관련법에 따라 케이블TV와 위성방송, IPTV 등을 통하여 뉴스·드라마·교양·오락·스포츠 등 모든 장르를 방송하는 언론이다. 사회적 책무가 있다. 이 언론이 그들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한데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사실(fact)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뉴스의 기본이다. 종편 드라마 속 인물의 주장도 아니고, 개그 프로그램의 개그맨 멘트도 아니고 뉴스(사실)를 담은 시사프로그램에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주장이 여과 없이 방송이 됐다. 북한 출신이라는 사람들의 ‘신념’이 대국민을 상대로 전해진 것이다. 그러면 시청자는 누구를 신뢰하고 그 주장을 받아들일까? 임천용 김명국씨? 아니다, 종편이라는 채널, 좁게는 제작진의 양식과 양심이다.
제작진에게 역사에 죄짓는 일이 될까 두려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본다. 제작진을 상대로 한 질문이다.
① 임천용은 누구인가? 최소한 그를 판단할 스펙을 알고 싶다. 스펙은 ‘입증’할 자료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력서 한 장을 써도 ‘상기 사실과 틀림없음’이라고 하고 사인을 한다. 적어도 제작진은 그가 북한특수부대원 출신이라고 밝히는 국가정보원의 내용을 내놓고라도 주장하도록 했어야 한다고 본다.
② 김명국은 누구인가? 역시 입증할 서류 한 장이라도 있어야 한다. 김명국은 가명인데다 ‘북한탈주 이주민’이 전부다. 시청자가 믿으면 되는건가? ‘북한탈주 이주민의 주장은 진실이다’를 명제로 삼으란 말인가?
③ 그들의 주장이 제작진이 판단하기에 ‘믿을만한 사실’에 근거했다고 치자. ‘믿을만한 사실’인데 취재원 보호상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면 제작진이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바를 정황 증거라도 내 놔야 한다. 물증이 없어도 정황 증거가 있다면 우리는 진실로 믿기 마련이다. 그 설득력 있는 정황 증거는 무엇인가? 예를 들면 윤창중 사태와 같이 6하원칙이 있는 정황 증거 말이다. 6하 원칙 중 하나라도 분명한 게 있는가?
두 사람은 ‘신념’에서 주장했다. 그 신념이 공공재에 실렸다. 그렇다면 ‘그들의 신념이 사실’이라는 걸 공공재 운영자인 제작진이 책임져야 한다. 사실로 입증 못할 경우 그것이 바로 역사에 죄짓는 일이다.
불과 33년 전에 일이고, 그 피해 가족이 지금도 눈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