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10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승강장. 한참 승객이 많을 시간인데도 신문 음료 과자 껌 등을 파는 매점의 철제 셔터가 굳게 닫혀 있었다. 먼지만 잔뜩 쌓여 있었다. 셔터에는 ‘5/14~5/19일 휴무합니다. 개인사정으로 가게 때려치웠다. 장사가 안 돼서…’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휴무 기간이 끝난 지 20일이 훌쩍 지났는데도 이 매점은 영업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서울 지하철 승강장 매점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장애인, 노인, 한부모가정 등이 우선 사업자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지하철역마다 앞다퉈 들어서고 있는 편의점 커피점 제과점 등에 밀려 영세민의 생계수단인 이런 매점들이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10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역사 내 편의점은 2010년 186개, 2011년 212개, 2012년 233개 등 해마다 증가했다. 2010년과 비교하면 25% 늘었다. 같은 기간 지하철역의 커피전문점은 13개에서 89개로, 제과점은 78개에서 109개로 급증했다.
반면 2010년 206개이던 승강장 매점은 2012년 193개로 줄었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길음역 승강장의 셔터 내린 매점처럼 폐업하지는 않았어도 장사가 안 돼 휴업 중인 ‘사실상 폐업 매점’이 적지 않다.
매점 판매자들은 신문과 담배가 잘 팔리지 않는 데다 역 근처와 개찰구 앞까지 편의점이 들어와 매출에 타격을 받는다고 호소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 매점에서 일하는 장모(59)씨는 “역 안에 편의점이 들어온 뒤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면서 “더운 날엔 물이라도 팔려서 괜찮은 편인데 자판기 생수가 1000원이라 우리는 800원에 팔아야 한다”고 했다. 장씨는 “승객들이 대부분 다른 곳에서 물이나 커피를 사서 마시다가 승강장에 와서 버린다”면서 “어려운 사람들이 운영하는 매점을 우선 보호해줘야 하는데 지하철공사 측이 대기업에서 돈 얼마 받고 가게를 내주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석계역에서 매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A씨는 “간이매점의 경우 편의점처럼 모든 것을 갖출 수 없고 물건 종류도 편의점의 3분의 1밖에 안 되기 때문에 편의점과 경쟁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외대앞역 매점의 김모(54)씨도 “작년에 하루 매출이 30만원 정도였다면 올해는 20만원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라며 “수익이 안 나는 곳은 당연히 인건비도 나오지 않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털어놨다.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측은 “개찰구 안쪽은 불우계층이 운영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분리해둔 것”이라며 “요즘 역 안팎에 카페가 수십개 들어서고 영업 여건이 바뀌다 보니 일부 매점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보공개센터 조민지 간사는 “골목상권의 어려움이 지하철 역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며 “장애인·기초생활수급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겠다는 조례의 취지가 퇴색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박세환 박은애 기자 min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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