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9세기 미국 최고 작가로 꼽히는 애드거 앨런 포(1809~1849). ‘어셔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등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포는 14세 때 학급 친구의 어머니 제인 스타나드를 만나는 순간 황홀경에 빠졌다. 친구 어머니를 사랑한 것이다. 세살 때 고아가 된 그로서는 친구의 어머니가 이상적인 여성상이었을 수 있다. 포는 제인이 죽은 후 매일 꽃을 들고 묘지를 찾았다. 그의 담시(譚詩)엔 친구의 어머니를 흠모했던 정염이 드러난다. 인습과 관습에 묶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사춘기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친구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을 사랑한다. 에바 부인에게서 어머니, 누이, 애인, 아내를 포함한 전인적인 사랑을 느낀다. 싱클레어는 우연히 친구 어머니의 사진을 본 순간 심장의 고동이 멎어 버렸다고 했다. 혼란과 고통 가운데 성장하는 소년들의 성장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년, 친구의 어머니를 사랑하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에서 주인공 강도(이정진 분)는 어느 날 자신이 엄마라며 불쑥 찾아온 미선(조민수)을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엄마라는 말에 무섭게 빠져들기도 한다. 한데 묘하게 빠진다. 근친상간의 느낌으로 다가들어 줄곧 불편하게 만들며 말이다. 어머니의 생식기를 만지는 아들의 손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준비 안된’(?) 관객은 ‘멘탈 붕괴’에 빠지기 쉽다.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이 등장하는 영화 ‘올드보이’보다 강도가 더했다.
이 김기덕 감독의 새로운 영화 ‘뫼비우스’가 영화계에 멘탈붕괴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그 내용이 입에 담기도 남살스러워 쉬쉬하는 분위기다.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는 최근 ‘뫼비우스’에 대해 근친간 성관계 등을 이유로 제한상영가 결정을 내렸다. 말이 근친이지 직계 성관계이다. 더 엄밀히 정확히 표현하자면 모자 간 성관계이다.
이에 대해 김 감독 측이 11일 영화 ‘올드보이’를 예로 들며 일반 성인 관객이 ‘뫼비우스’를 보고 판단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영등위에 보냈다. 김 감독은 의견서에서 ‘관계에서 믿음을 잃은 부부의 질투와 증오가 아들에게 전이되고 결국 모두가 죄책감과 슬픔에 빠져 쾌락과 욕망을 포기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근친상간, 직계 성관계, 모자간 성관계
영등위가 지적한 직계간 성관계의 경우 모자간 성관계가 아니라 부모의 성관계 의미에 더 무게를 뒀다는 설명이다. 김 감독의 얘기다.
“물리적으로 아들의 몸을 빌리지만 영화의 전체 드라마를 자세히 보면 그 의미가 확실히 다르다.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치이고 연출자로서는 불가피한 표현일 뿐이다. 심의 권리를 부여받은 영등위와 제 생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일반 성인 관객이 영화를 보고 판단할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미성년 학생들이 이 영화를 보면 주제나 내용을 잘못 받아들일 위험이 있지만 19세가 넘은 대한민국 성인이 ‘뫼비우스’의 주제와 의미를 위험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칸 마켓 상영을 통해 이 영화를 보고 수입해 상영하려는 여러 유럽 선진국의 성인보다 대한민국 성인의 의식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뫼비우스’는 칸 필름마켓에서 비밀리에 가진 미완성 편집본 상영 한 차례만으로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 여러 지역에 선판매가 되는 등 해외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김 감독은 말을 이었다.
“영화 ‘올드보이’도 불가피한 아버지와 딸의 내용이 있지만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로 많은 마니아를 가지고 있다. 진정한 문화 선진국은 쉬쉬하는 인간의 문제를 고름이 가득 차기 전에 자유로운 표현과 논쟁을 통해 시원하게 고름을 짜 내고 새로운 의식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뫼비우스’는 인간의 수많은 문제 중 하나인 성과 성기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이다.
영화의 의미 있는 주제를 생각하기보다 물리적인 영상만을 못 보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생각한다. 제가 지금 무엇이 부족해 단순히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엄마와 아들의 금기인 섹스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겠는가. ‘뫼비우스’ 시나리오를 쓰고 제작하기로 결정하는데 창작자의 양심으로 저 자신과 긴 시간 싸웠다. 윤리와 도덕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뫼비우스’를 꼭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었다.”
김기덕 감독 “모자 성관계가 아니라 믿음을 잃은 부모의 성관계에 의미 두었다”
그는 애초 희망했던 배우들이 거절해 몇 차례 제작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제한상영가로 개봉을 못한다면 저를 믿고 참여한 배우, 스태프가 크게 실망할 것이다. 촬영 중에도 ‘내가 왜 이런 영화로 또 논란의 중심에 서야 하나’라고 수없이 자문자답했다. 제한상영가의 결정적인 문제가 되는 장면을 찍을 때는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이 시대는 성과 욕망 때문에 무수한 사건과 고통이 있다. ‘뫼비우스’로 그 정체를 질문하고 싶었다.
제 영화는 항상 제가 판단하는 결론이 아니라 늘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영등위원의 입장을 여러 가지로 이해하면서도 표현의 가치 또한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제 영화 18편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인정해준다면 성숙한 대한민국 성인이 이 영화를 보고 판단할 기회를 달라. 이런 제 간절한 의견에도 제한상영가 결정이 바뀔 수 없다면 배우·스태프의 지분을 제가 지급하고 국내 상영을 포기하겠다.”
김 감독 측은 이르면 이날 중으로 영등위에 재분류를 신청할 예정이다. 영등위 규정상 결정에 이의가 있으면 30일 이내에 재분류 신청을 할 수 있다.
미끄덩한 사회 현실, 드러내는데 탁월한 김기덕 감독
‘뫼비우스’가 우리 사회의 건전한 가치를 뒤흔드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모자 간 성관계’라는 반윤리가 거부감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 거부감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생각의 구토’를 유발한다.
세상은 우리가 드러내놓고 말 할 수 없는 미끄덩한 이물스러움이 하수를 이루고 있다. 이 하수의 구석구석을 비추는데 뛰어난 감독이 김기덕이다. 그가 평생을 바친 예술에 대한 헌신을 높이 산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는 영등위라는 기구를 통해 발현되는 것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그 영등위가 ‘제한상영가’ 결정을 내린 것은 국민의 신탁 의무를 충실히 한 것이라고 본다. 예술을 탄압하던 독재시대처럼 ‘음모’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 어머니를 신성으로 여기는 우리의 마음이 ‘어머니와의 성관계’라는 사실에 얼어붙어 있다. 김 감독은 ‘지금 당장’ 해결하려 하기보다 먼 안목을 가지고 세월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애드거 앨런 포도 수많은 문제작을 발표했으나 정작 독자나 세상으로부터 번번이 묵살 당하며 가난과 병마로 한 평생을 보냈다. 심지어 사후에도 오래도록 무시당하다 1875년에 겨우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것이 예술가의 삶이다. 영혼이 따뜻한 작품이면 그 작품의 생명은 숨고르기를 할 뿐이지 죽지 않는다. ‘뫼비우스’가 그러하리라고 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