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경상도 안동의 유생 이원성(李怨聲)이 도성에 들어온 것은 신시 무렵이었다. 해는 인왕산 즈음에 걸려 있었다. 숭례문을 지나 경복궁으로 향하는 이 유생의 행색은 남루했다.
태종 즉위 원년. 도성으로 향하는 길목의 공기는 무거웠다. 곳곳에 순라꾼들이 육모 방망이를 들고 백성의 괴나리봇짐을 뒤졌다. 혹여 불온 서찰이라도 나오면 사헌부(검·경찰)로부터 경을 치기 십상이어서다. 그해 유월은 태종 즉위 일성인 ‘불량먹거리’ 집중 단속으로 모든 사헌부 인력이 차출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태평로 큰길을 지나는 채마 수레는 점고 받느라 더디 나갔다.
동쪽 종로 육의전 시장은 사헌부 관원이 종일 진을 치는 바람에 활기를 잃었다. 태종은 육의전 왈패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의 검은 돈 흐름을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상인에게 겁을 주어 많은 상인이 철시한 마당이었다.
이원성은 시장으로 몰린 나졸 덕에 남루한 행색에도 쉽게 광화문 신문고에 닿을 수 있었다. 신문고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의 원을 풀어주겠다고 세웠다. 신문고를 둥둥 치면 임금이 친히 백성의 통한을 해결해 준다하니 한 맺힌 백성이 어찌 환호작약하지 않겠는가.
학생들이 도당(徒黨)을 지어 광화문 앞에서 주먹시위를 한다고?
이원성은 몇 해 전 안동에 향현(鄕賢)을 제향하는 사우(祠宇)를 짓고자 안동현감에게 청을 냈다. 글 한 줄 읽지 못하는 소년들을 위한 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였다.
안동의 선비였던 그의 부친이 유언을 통해 “나라의 뼈대를 모르는 젊은이가 있는 한 조선은 오래가지 못한다. 네가 비록 향촌에 있으나 시문이 밝으니 살림이 빈궁해지더라도 소년들 교육에 힘쓰거라”하였기 때문이다.
한데 안동현감으로부터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유생의 뜻은 알겠으나 혈기방자한 소년들이 도당(徒黨)을 지어 몰려다니면 나라에 폐가 될 것입니다. 사헌부에서도 소년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터라 사우를 허락할 수 없습니다. 사론(邪論)으로 나라를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현감의 말은 정중했으나, 단호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력으로 숱한 인재를 살상하고 집권한 태종이었기에 바른 소리 하는 자의 입을 그냥 두지 않았다. 숱한 유생이 척살 당하는 일이 빈번한 시국이었다. 그러나 이원성은 사헌부를 비롯한 대신들의 과잉 충성이라 믿고 원을 해결하기 위해 문경 새재를 넘었던 것이다.
원정보(元情保), 전방 군사에 민간인 복장 입혀 후방 투입 여론 조작
한데 신문고에 다다르자 일단의 소년 무리가 신문고 앞에 진을 치고 청원을 하고 있었다. 소년들은 태종 즉위를 위해 근위대(국가정보원 격)들이 북방의 군사를 끌어들여 민심을 조작했다며 수괴 원정보(元情報)의 처벌을 요구했다.
원정보는 압록강변과 두만강변 군사 1만여명을 후방으로 끌어내 상민 복장으로 변장케 한 뒤 태종의 넷째 형인 방간이 여진과 내통하여 조선을 넘기려 한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원정보는 앞서 태종(방원) 집권 전 방원의 복심이 되어 태조가 세자로 책봉하려던 이모제(異母弟) 방석을 죽이고, 동복형(同腹兄) 방과를 허수아비 임금으로 앉히는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성균관 학생을 비롯한 소년들은 원정보의 행위는 역모나 다름없다며 즉각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한 요구는 들불처럼 퍼져 물을 건너고, 산을 넘었다. 형제를 척살한 태종에 대한 분노였으나 훗날 의금부가 되는 근위대의 폭정에 백성은 모두 쉬쉬하고 있었다.
이날 신문고 앞에 모인 소년 학생은 1000여명이었다. 소년들은 격서(檄書)를 내걸고 원정보의 즉각 수감 및 근위대 폐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헌부는 궁궐 수비 기별대 5000여명을 동원, 소년들과 거리를 두고 해산을 요구했다.
진압 나선 사헌부 "서얼 주도 아래 휩쓸리는 오랑캐 학생들…수구문에 쳐박아라"
박두(樸頭)로 무장한 사수들이 주먹 시위를 하는 소년들을 겨누고 있었다. 박두는 철촉 대신 나무촉을 쓰는 사격 연습용이나 이를 사람이 치명적인 곳에 맞을 경우 명을 달리할 수 있는 화력이었다.
이원성이 구경꾼과 섞여 소년 시위대로 다가서자 사헌부 군사가 정강이를 걷어찼다. 나뒹굴어진 이원성은 깊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데 그와 동시에 “격발!”이라는 소리가 나더니 후두둑하며 박두가 허공을 갈랐다. 동시에 소년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신문고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원성이 간신히 도포자락을 챙기며 일어서자 별장인 듯한 자가 목소리를 높여 군사를 다그쳤다.
“저 놈들은 조선 백성이 아니다. 여진과 내통하고 있는 서얼 주도하에 휩쓸리는 오랑캐 사상을 지닌 상것 들이다. 말썽 안나게 밟아 청계천 수구 밑에 쳐박아 버려라!”
아비규환은 그렇게 한 동안 지속됐다. 넋이 나간 이원성은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분을 내고 싶었으나 시골 서생이 그리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수구문 밖에 퉁퉁 부은 시신으로 떠오를 것 같았다. 공포정치의 시작이었다.
전정희 시사소설 작가 jhjeon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