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아이, 오라버니 급하기도 하셔라. 아무리 육정이 급하기로 고름 풀 짬은 주셔야지요. 그래도 순서가 있지.”
춘천부(春川府 ) 기생 월향은 어제 밤 뽕나무 밭에서 오디 따먹는 꿈을 꾸고 난 후 아침부터 괜히 흥이 나 있었다. 달거리가 목전일 때면 으레 몸이 스멀거려 가랑이 사이 바람도 예사롭지 않았으나 오늘은 유독했다. 들뜬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도 말이다.
월향은 춘천부 수변정(水邊停 ) 최고의 기녀였다. 잘록한 허리와 박속같은 흰 피부로 사내들 애간장 꽤나 녹였다. 월향과 하룻밤을 지낸 춘천부 아전들은 그들만 아는 월향의 방중술을 놓고 구멍 동서의 의를 다지곤 했다.
“그년이 말여 허리뼈를 몇 번 눌러주면 땡볕에 마른 고추 같은 고놈이 바짝 선다니께. 명기도 명기려니와 고년의 손맛에 누가 녹아나지 않겄어.”
기예사병 칠성과 정우, 안마에 능한 월향에 뼈 못추리는 밤
월향은 다른 기녀와 달리 안마 비기를 가지고 있었다. 사내놈 척추뼈를 그녀가 몇 번 만져주면 육모방망이만큼 커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별기군 기예단 소속 칠성도 안마에 능한 월향의 방중술 소문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같은 기예단 소속 정우(鄭雨), 상추(上秋), 강창(姜倉), 금경(金炅)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떼를 이뤄 신식군대 별기군 창설을 알리는 지방 행사를 갖곤 했는데 가는 곳마다 기방을 돌며 색정을 쏟았다.
이들은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기예꾼들로 청국 북경 복색과 변발풍 머리 모양으로 양반집 딸내미들의 얼을 빼놓는 능력이 있었다. 기생 오라비같이 쏙 빠진 얼굴과 소리 하나로 여인네들 애간장 꽤나 녹이는 미소년들이었다. 그들을 따르는 개족보 양반 여식들이나, 그들이나 글 한 줄 읽지 않아 머리가 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김국방, 기예단 사병에게 “축하잔치 끝나면 음식이든 계집년이든 마음대로 먹거라”
유월 스무하룻날 칠성은 춘천부 수변정 공터에서 열린 ‘강원도 별기군 창설 출정식’에서 잔치 놀이를 했었다. 어영대장 민겸호, 충용사 민태호, 도통사 이경하 등 군사권을 쥔 실력자들이 참석하다 보니 별기군 군장 김국방(金國防)은 기예단을 직접 찾아와 진두지휘 했다.
“어영대장과 충용사는 왕후의 일가로 군 수장인 걸 귀하들도 알 것이다. 그 분들이 이 멀리까지 와서 회포를 푸시도록 정성을 다해서 소리를 하도록. 그러라고 기예단을 만든 것이다. 잔치 끝나면 음식이건 계집년이건 마음대로 먹어라. 국방비를 충분히 기예단에 지급했으니 걱정 말도록. 정우, 잘할 수 있겠나?”
“옛, 춘천호 호수물이 증발될 만큼 소리 높여 창을 하겠습니다!”
김국방이 정우를 지목해 다짐을 받아 것은 그가 지난해 기예단 별영(別營)을 벗어나 민겸호의 여식과 한강 압구정까지 나아가 뱃놀이를 하다가 사간원(司諫院)에 걸려 백성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민겸호의 여식만 아니었다면, 기예단에서 제외 되고 영창을 갔을 일이었다.
조선 좌지우지 민비, 김국방 돈 받아 궁중서 무당 불러 굿판
김국방이 빠듯한 군비에도 마다하지 않고 기예단에 수만냥을 쏟아 붓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곧 5군영이 통합되어 무위영과 장어영으로 나뉘게 되는데 바로 그 총수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만 가면 민비의 눈에 들 것이고 그간 뿌려 놓은 돈도 적잖으니 군총수가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일본의 사주를 받아 신식 군대 별기군을 세운 것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민비는 허약한 왕세자 때문에 매일 궁궐에서 굿판을 벌였고, 그 굿판 비용을 군 재정에서 충당했다. 김국방은 동기 민태호에게 손을 써 양반 자제 병역을 빼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 궁궐로 보냈다.
김국방이 이렇게 무리하다 보니 구식 군대의 원성이 높았다. 그러나 구식 군대는 한양 변두리 천민 출신들이 대부분이어서 콧등에 앉은 파리만큼도 신경을 안 썼다.
김국방의 이러한 배려를 아는 칠성과 정우 등은 논현벌에서 천막공연을 하고 있는 기예녀들을 김국방 회식 자리에 들여 보내곤 했다. 그러면 김국방 등은 늙은 소가 여물통에 머리 박고 막 거두어온 풀을 먹듯 침을 질질 흘리며 색탐을 했다.
칠성, “새끼들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처먹기 바쁘니” 혼잣말
칠성은 미닫이 문을 닫고 나오며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새끼들,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그저 아무거나 처먹기 바쁘니…”
그랬던 칠성과 정우도 마지못해 들어온 기예단에서 닳고 닳아, 가는 곳 마다 기생년 치마 들치기에 바빴다.
“월향아, 네 소문은 천리 밖에서도 들었다. 이 오라버니 급하다. 옆방에 든 정우 들으라고 기성(奇聲)을 질러 다오. 오늘밤 질펀히 한 번 놀아 보자꾸나. 내가 누구냐? 신식 군대 별기군 아니냐. 네 몸은 조선의 군인인 내가 지키니 염려 팍 붙들어 놓거라.”
전정희 시사소설 작가 jhjeon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