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숙종 8년. 고려서원 출신 포도부장 전검사(錢劍士)는 영의정 허적 대감의 서찰을 받았다.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한성부좌윤으로 있는 고려서원 동기 변호사(便好事)가 때 아니게 직접 찾아와 전했다.
“이보게, 전검. 허적 영감이 남모를 곤경에 처한 모양일세.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겠나.”
‘전검’은 전검사를 부르는 그들만의 별칭이었다. 전검사는 변호사를 부를 때 ‘호사’라고 했다.
전검은 속으로 ‘끙’하는 신음소리를 냈으나 허적의 일이라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가 대구 지방관아에 근무할 때 허적의 도움을 적잖이 받았기 때문이다. 허적은 남인 문하들에게 단단히 일러 한양서 단독 부임하는 전검이 외로운 일이 없도록 모실 것을 명했다.
고려서원 동기 포도부장, 영의정 청탁을 받다
이에 따라 향리에 남아 있던 허적의 서자 허견은 전검 부임 첫날 그를 동성정(東城停) 모셔 여독을 풀게 했다. 그리고 부친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별채를 전검이 쓰도록 했다. 허견은 여기에 더해 지난 가뭄 때 빚을 갚지 못해 종년이 된 칠곡벌 한 농투성이 딸 해월이라는 애를 별채에 보내 전검의 시중을 들도록 했다. 이미 허견이가 겁탈한 직후였다.
호사는 허적의 밀의(密意)를 알아채라는 듯 얘기했다.
“숙종도 허적 대감 말이라면 꼼짝을 못하네. 그만큼 남인 세력이 득세란 말일세. 자네도 줄 잘 잡아 그 험한 포도부장 벗어나야 할 것 아닌가. 우리 동기들이 의금부와 형조 요직을 다 맡고 있는데 자네는 언제까지 포도청에서 도적 잡는 일만 하겠나. 동기니까 하는 말이네.”
서찰엔 부녀자 강간·살인죄를 저질러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아들놈 허견의 남근이 짓물러 더는 옥살이가 쉽지 않으니 기로소(耆老所·나이 많은 문신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 파수꾼으로 봉사하게 옥에서 빼달라는 청이 적혀 있었다.
전검사, 강간·살인한 자의 형집행정지를 수결(手決)
호사는 서찰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지 “기로소 수직관 명 받들어 파수하는 일은 아침에 일어나 방귀 뀌는 것만큼 쉽네. 권력 깨나 휘두르면 의당 밟아가는 수순일세. 어려워 말게”하였다.
호사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허견을 파수꾼으로 보내는 일은 전검에게 식은 죽먹기다. 의금부가 형집행정지에 대해 견제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요식 행위였다. 견제 권한도 고려서원 출신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서인 세력의 눈에 띌까 그것이 걱정이었다.
전검은 굿청 무당을 불러 허견의 형집행정지가 남근 괴사와 화증 등이라고 적게 했다. 천연두 기미도 보이는 것 같다고 무당에게 윽박질렀으나 그 무당년 기가 쎈지 주저했다. 굿청은 홍역, 천연두 등에 대한 특별한 치료법이 없자 나라가 굿으로 물리치게 한 의료기관이었다.
때문에 허견은 아무도 모르게 기로소 파수꾼으로 4년째 자유의 몸으로 살았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준다고 파수 중에도 술을 처먹는가 하면, 부녀자들 희롱에 바빴다.
영의정 마님 “서초벌 땅은 포도부장 걸세”
한데 어느 날부턴가 허견이 술로 떡이 되어 전검의 집 솟을대문을 걷어차며 행패를 부리기까지 했다.
“전검, 포도부장 평생 해 먹을래? 나를 이렇게 내쳐 놓고 얼마나 잘 살 듯 싶으냐? 나는 다 알고 있다.”
그럴 때면 상노비를 시켜 엽전 꾸러미 쥐어 주고 입막음을 했으나 돈 떨어지면 또 찾아오곤 했다. 사실 전검은 해월이와의 사이에 낳은 자식을 보았다. 그곳에 돈을 내려 보내기도 바쁜데 허견까지 속을 질렀다. 전검의 이같은 축첩 사실을 안 나장들은 전검의 영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서인 쪽에 고변되면 전검의 생명도 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허견이 행패를 부리고 간 날, 전검은 호사와 같이 영의정 대감 안방 마님 윤씨 찾았다. 그리고 전검이 마님을 향해 패를 던졌다.
“마님, 영의정 나리를 살리시려면 허견을 잠재우셔야 합니다. 최근 서인 세력이 허견의 형집행정지를 감지하고 모략을 획책 중입니다. 다시 잡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윤씨 문중 세도가의 딸인 마님은 잠시 미간을 찡그렸으나 무슨 계산이 있는지 쉽게 동의했다. 평생 골머리 썩여온 서자 하나 다시 가둔다 해서 영의정 영감에 누가 갈 일이 아닌 듯싶었기 때문이다.
“포도부장, 댁이 아니었으면 강상의 기강이 무너질 것이오. 내 부장의 배려가 너무 감사해 여기 도성밖 서초벌 땅문서를 준비했으니 밀치지 마시구려. 이는 우리 영감의 뜻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영의정 대감댁을 나오면서 ‘휴~’ 하고 숨을 쉬었다. 이제 누가 뭐래든 딱 잡아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호사가 전검에게 물었다.
“몇 마지가나 되는지 열어봐라. 반은 내꺼다.”
전정희 시사소설 작가 jhjeon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