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루이비통? 난 주리백!”… 강남·분당의 30대 여성 사로잡은 ‘주리백의 비밀’

[친절한 쿡기자] “루이비통? 난 주리백!”… 강남·분당의 30대 여성 사로잡은 ‘주리백의 비밀’

기사승인 2013-07-02 09:08:01


주리백을 아시나요?

[친절한 쿡기자-하드윤미의 똥개훈련] 여러분들 혹시 주리백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요즘 강남과 분당판교 일대에서 가장 핫한 유행 아이템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주리백'이라고 말할 거예요. 지난 일요일도 맛집 집합소로 유명한 판교의 프랑스 거리에 갔다가 주리백 든 사람을 다섯 명이나 봤는걸요. 그러니까 주리백이 뭐냐고요?

사진 1을 보세요. 바로 그 아이랍니다.

인조 가죽, 전문 용어로 합성 피혁으로 만든 가방이에요. 타조 가죽, 악어 가죽, 뱀 가죽 무늬가 있고 컬러도 열 가지 정도 돼요. 사이즈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갑이랑 간단한 소지품 정도가 들어가는 중간 사이즈가 가장 인기 많아요. 짧은 손잡이로 손에 들거나 손목에 걸 수 있고 같이 들어있는 끈을 연결하면 어깨에도 멜 수 있어요. 합성 가죽이어서 가볍고 튼튼하고요, 오염이 돼도 물티슈로 쓱쓱 닦아내면 됩니다.

요즘처럼 때때로 비가 오고 땀도 많이 나는 여름철에 큰 부담 없이 들 수 있지요. 무엇보다 바람직한 점은 가격이예요. 10만원대 중반이면 살 수 있으니 일반 가죽 가방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값이죠. 정식 명칭은 '주리 301' 가방인데, 줄여서 그냥 '주리백'이라고 불러요.

줄 서야 사는 ‘잇 아이템’으로 등극

주리백이 인기를 끈 건 올해 초부터예요. 쓸만한 가방을 사려면 국산 브랜드도 몇 십 만원을 줘야하는 요즘, 10만원 정도면 튼튼한 가방을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분당과 판교, 강남의 30대 여성들이 판교에 위치한 주리샵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인터넷 쇼핑몰도 없이 직접 판매만 하니 가게는 언제나 인산인해. 급기야 가게 밖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고, 인기 있는 색깔의 가방은 예약하고 두세 달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게 됐지요.

상황이 이쯤되니 주리백을 손에 넣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앞서가는 패션피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어요. 주부들이 많이 가는 인터넷 카페에 "주리백 샀어요" 하는 글이 올라오면 댓글은 부러움과 동시에 질투로 가득 찼지요. 이맘때 주리샵에 구경 갔던 제 친구도 지금 있는 색깔들마저 품절되면 최소 한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괜히 조바심이 나서 "아무 색깔이나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걸로 주세요"하고 얼른 하나 들고 나왔대요. 주리백을 들고 저를 만났던 그 친구의 얼굴에는 100만원을 줘도 안 바꿀 거라는 듯한 어떤 자부심이 묻어나고 있었답니다.

해외 명품 가방을 좋아했던 또 다른 친구도 주리백을 사들고서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루이비통이 대수야? 주변 아줌마들 다 주리백 들고 다니면 이게 명품이야!"

주리백을 잡아라

주리백이 폭풍 같은 인기를 끌자 진짜 명품 업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이른바 '짝퉁'이 생겨난 것이지요. 주리백과 똑같이 생긴 가방을 반값에 못 미치는 가격에 파는 인터넷 쇼핑몰이 등장했고요, 주리샵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리백과 거의 흡사한 디자인의 가방을 파는 가게들이 속속 생겨났어요.

가격이 더 저렴한 것은 물론 색깔도 더 다양했고 줄을 서거나 예약 후 기다려야 할 필요도 없었지요. 주리백에 목을 매던 일부 팬들은 조금씩 주변의 다른 가게들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어요. 주리백과 주리백 st.(영어 style의 약자. 짝퉁을 일컫는 인터넷 쇼핑 용어)이 공존하게 되면서 인터넷에는 '주리백 정품'임을 강조하는 중고품 판매글이 등장하는가 하면 '주리백 짝퉁 구분법'을 알려주는 글도 올라왔구요. 정말 해외 명품 부럽지 않은 유명세죠?

주리백의 비밀

하지만 짝퉁 주리백, 주리백 st.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할 말은 있는 모양입니다. 바로 주리백 디자인이 해외 H 명품 브랜드의 가방과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어차피 주리백도 독자적인 디자인이 아니다, 우리는 주리백을 카피한 것이 아니라 H 브랜드의 가방 디자인을 차용한 것이라는 겁니다. 토종 명품으로 취급 받는 주리백이지만 그 역시 H 브랜드의 짝퉁이나 마찬가지니 주리백 디자인은 마음껏 갖다 써도 된다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주리백을 H 브랜드의 가방 디자인과 비교하면 비슷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아, 10만원대에 해외 명품 부럽지 않은 토종 명품의 가치를 누리나 했는데 짝퉁 가방 취급이라니 김이 새지 말입니다. 이름이 주리인 주리샵 사장님한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습니다. "대표님, 주리백은 H 브랜드의 짝퉁인가요?". 그랬더니 아래와 같은 답이 돌아왔어요.

주리백은 H 브랜드 가방과 디자인이 비슷해요. L 브랜드 가방과도 비슷하지요. 하지만 똑같지는 않아요. H 브랜드 가방을 흉내 내고 싶었다면 '주리'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거예요. 합성 피혁 대신 진짜 가죽을 썼겠죠. 저희 가방은 '주리백'이예요. 모양은 비슷하지만 가죽이 합성으로 완전히 다르고 제가 직접 디자인 요소를 첨가해서 특허청에 디자인 특허도 출원했어요. 최근에 새로 나온 모델에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원단을 사용해서 흉내 낼 수 없는 차별점을 두었지요. 경쟁 업체들이 판매하고 싶은 것은 H 브랜드 스타일의 가방이 아니라 주리백 스타일의 가방이에요. 고객들은 주리백이 아닌 경쟁업체의 가방을 보고도 주리백이라고 부르죠. 그것이 주리백이 가진 의미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요?"

주리백 사장님께 당부 말씀

주리백 정품을 사든 주리백 스타일을 사든 가방은 사는 사람 마음대로 고르고 구입하는 거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30만원 주고 해외 명품 짝퉁을 살 바에야 그래도 주리백 스타일을 사는 쪽이 낫지 않을까? 하고 말이에요. 한편으로는 루이비통 짝퉁, 프라다 짝퉁이 아니라 우리 브랜드의 짝퉁을 논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기도 합니다. 부디 제 2의, 제 3의 주리백 같은 브랜드들이 많이 나와 주길 바라며...

주리샵 사장님, 가방 가격 올리시면 안돼요! pooopdog@naver.com

김윤미

2000년대 중반 인터넷 뉴스 태동기에 디시인사이드 디시뉴스 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인터넷 이슈와 세계 토픽 등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보도하면서 ‘하드코어 윤미’ 줄여서 ‘하드윤미’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겨 일하다 반복되는 똥개훈련에 지쳐 퇴사했다. 현재는 자유기고가,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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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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