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영훈 오랑캐문어학교 김국제 필사의 탈출기…칭병 누워버려

[전정희의 시사소설] 영훈 오랑캐문어학교 김국제 필사의 탈출기…칭병 누워버려

기사승인 2013-07-03 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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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형조판서 서필원(1614~1671)은 강직한 사람이었다. 1648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을 거쳐 충청 및 전라도 관찰사 등을 역임했고 69년 형조판서가 됐다.

그는 이상진 등과 함께 오직(五直)으로 불렸다. 현종 임금에게도 직간을 서슴지 않았다. 현종이 대신들 앞에서 말했다.

“내가 서 판서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소. 서 판서 무서워서 수결(手決)이나 제대로 하겠소. 아니 그리 무던한 사람이 고집하는 병통은 어디서 생겼단 말이오.”

현종의 반농담은 서필원이 양주현 영훈서원 대유생 김국제를 잡아들인데 대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 전날 김국제는 서원 남설(濫設)하고 지방관아에 구청(求請)과 양정(良丁)을 일삼아 포도청에 구금된 상태였다.

“영훈 대유생 김국제 위법 심각…입학생 선발 금지시켜야”

“소신이 사액(賜額·서원에 대한 임금의 설립허가) 서원의 대유생을 잡아들인 것은 국법을 어지럽히기가 도를 넘었기 때문이옵니다. 서원 입학 자격도 갖추지 않은 양정(良丁·양민)의 자제를 뇌물을 받고 유생으로 바꿔치기 하는가 하면, 청나라와 인삼 밀매로 돈을 번 상인 자제들을 마구 잡이로 입학시켜 백성이 원성이 자자합니다.

이같은 김국제의 파렴치한 행위는 처벌 받아야 마땅하고 영훈서원도 정거(停擧·입학생 선발 금지)시켜 서원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보니 소신의 영훈서원에 대한 정거안을 수결하여 주소서 전하.”

그 무렵 조선의 서원은 천여개에 달했다. 특히 경상도 쪽으로 삼분의 일에 달해 경상도 관아와 백성이 서원 등살에 몸살을 앓았다. 나라가 공인한 사액임을 전면에 내세워 서원 부속 토지에 대한 면세를 통한 땅투기, 양민 자제 채용 댓가로 뇌물을 받고 저지르는 군역 회피로 백성 간에 서원철폐 원성이 자자했다. 또 학벌, 사제, 당파 문제로 작은 고을이라 하더라도 서원이 들어서면 사분오열 되었다.

영훈 김국제 선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길 안내하고 축재

“전하. 김국제가 사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선대가 이조낭관(요즘으로 치자면 교육부 관리)에게 뇌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그의 선대는 광주(廣州) 삼도전의 토호였는데 청나라 오랑캐들이 남한산성을 포위하도록 앞잡이를 한 댓가로 광주와 양주땅 대개를 얻은 자입니다.

경기관찰사도 수뢰에 가담해 유배를 당하였습니다. 한데도 그 자는 탐관오리의 비위를 맞춰 가며 양주, 광주현 내에 7개의 서원을 가지고 세력을 확장, 민전(民田) 잠식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종국에 경기 동부의 세수 감수를 의미하옵니다.”

현종이 듣자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때 노론의 영수이자 우의정인 이삼성(李參星)이 말을 자르고 나왔다.

“서 판서는 지금 곡해를 일삼고 있습니다. 영훈서원은 청나라와 왜나라 말을 가르치는 오랑캐문어(文語)전문서원입니다. 양국과의 교역을 위해서 나라가 사액을 내리고 토지를 준 왕립서원의 선두이옵니다. 도성 많은 관리들도 김국제 대유생의 가르침을 받은바 그를 하루빨리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노론 영수 이삼성(李參星), 현종 압박하며 영훈 보호

이삼성은 노론의 영수로서 그 지지기반이 영훈서원이었다. 영훈서원이 짧은 시간 내 급격한 세확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삼성의 보호 없이 불가능했다. 그는 이조에 압력을 넣어 지방관아에 청구가 가능토록 했고, 반대세력에 훼가출향(毁家黜鄕)시킬 수 있는 권한을 서원이 갖도록 해 향촌사림의 줄을 세웠다.

현종은 미간을 찌푸렸다. 서필원의 진언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의 정거안에 수결했을 경우 노론의 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서원이 강학활동보다 정파의 이익을 일삼고, 제향을 빌미로 누(樓)를 첩설(疊設·거듭설치함)해 국가 재정을 뒤흔든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다.

이날 어전 회의는 현종의 언중유골로 마무리됐다. 이튼날 서필원이 양주감옥에서 김국제를 한양으로 이송하려 하자 김국제가 칭병으로 맞섰다. 사지에 풍이 들려 꼼짝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필원이 양주현감에게 불호령을 내렸으나 현감은 대답하는 시늉만 했다.

그는 좌랑을 시켜 강제 이송할 것을 명했다. 그때 형조 집무실에 영의정 이삼성이 들어섰다. 보좌도 거느리지 않은 소리 없는 방문이었다.

“서 판서, 영훈 철폐는 안되네. 자네가 세상 물정은 모르네”

“이보게 서 판서. 대유생을 압송하면 여럿 다치네. 자네가 진정 몰라서 이러는가? 도성안 관리라면 다 아네. 좋은게 좋은 걸세.”

서 판서는 나직하게 말을 받았다.

“관령(官令)보다 더 위세가 당당한 서원을 혁파하지 않으면 조선이 누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특히 영훈서원은 학위 장사로 확보한 땅이 도성을 위협할 정도입니다. 정승 어른의 말씀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율령이 서려면 압송이 불가피합니다.”

이삼성은 허허허 웃더니 휘적휘적 수직 군사 사이를 걸어 나갔다.

그날 오후. 현종은 서필원을 파직했다. 그와 동시에 백령도 위치안리를 명했다. 김국제를 압송하려던 좌랑은 울면서 자신이 모시던 판서를 포박했다.

이 소식이 들은 김국제는 “그 놈 참 세상 물정 모르고 설치는 구나”하고 툴툴 털고 일어나 도성 정승대감을 찾았다.

전정희 시사소설 작가 jhjeon2@daum.net

전정희 시사소설 작가 jhjeon2@naver.com



전정희 기자
jhjeon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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