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세종 9년. 유감동은 소문대로 미인이었다. 대신들은 포박 당한 그녀를 힐끔힐끔 보면서 한 마디씩 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하니 사헌부가 빨리 대명률에 따라 거열형이라도 시켜야 되는 것 아닌가? 저년이 창기도 모자라 시신을 도륙 내는 살인까지…아무리 음기가 하늘을 찌르기로서니 허 참”
그러면서도 그들은 저고리 사이로 몽실하게 삐져나온 감동의 젖가슴을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감동은 이미 장형(杖刑)으로 머리는 산발이 됐고, 저고리 소매와 깃엔 피가 튀어 묻어 있었다. 또 장형 중 하혈을 했던지 긴 치마 앞섶에 널찍하니 피가 배어 있었다.
체머리는 풀어져 흡사 거렁뱅이 꼴이었으나 묘하게도 기품이 있었다. 적당히 통통한 볼과 눈초리가 살짝 올라 간듯하면서도 큼직한 눈망울의 얼굴 모양새는 사내놈이라면 누구나 품어 보고 싶어 할만했다.
용인 사는 열아홉 살 청년, 살 도려진 채 발견돼
사헌부 대사헌 채동훈은 장령(將令)이 내민 유감동 사건 관련자 명단을 보다가 얼굴을 들어 대신들을 일별했다. 그녀와 색정을 나눈 중앙과 지방의 고위 관리 38명의 명단이었다. 명단을 보다가 비변사 수장 김관팔과 눈이 닿자 그가 눈을 피했다. 장령이 작은 글씨로 첨언을 해뒀다.
‘비변사 김관팔의 서얼 김상판도 관련됐음’.
전날 장령이 대사헌에 직보하기를 “김상판이란 자는 유감동에게 살해됐습니다. 양물이 잘리고, 그 잘린 양물은 시신 입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양물이 열아홉 장성한 사람치고 지나치게 작았다는 겁니다. 서너 살 아이의 양물보다 작았습니다”라고 했다.
김상판은 김관팔이 양지(지금의 용인) 현감 재직 시 부녀자를 겁탈해 낳은 자식이었다. 양지현 다락골에 남의 논을 부쳐 먹고 사는 양민 덕우네가 있었는데 덕우 처 산들이를 겁탈한 것이다. 김관팔은 군적에 올라 있는 덕우가 해마다 내야 하는 베 2필을 내지 못하자 아전을 시켜 옥에 가두어 버렸다.
대개 베로 군역을 대신하지 못하면 강제 노역을 시키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덕우네 관한 김관팔의 조처는 지나치게 무거웠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나도록 덕우는 풀려나지 못했다.
그 사이 양지현에는 괴소문이 돌았다. 김관팔이 덕우 처 산들이를 야심한 밤에 겁탈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나장 두엇에게 덕우 집 문 앞에 수직을 세우고 그 짓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은 옥에 갇힌 덕우에게도 전해졌고, 덕우는 그 이튿날 옥안에서 삼베 적삼 벗어 새끼를 꼬아 목을 매 죽었다.
용인 청년 부녀자 겁간 일삼아…반반한 처자들 길거리 못 다닐 판
그런 산들이에게서 태어난 김상판은 어려서부터 온갖 못된 짓을 다하고 다녔다. 제 아비가 부임지마다 군포 징수를 통한 뇌물 요구로 악명을 떨칠 때, 몽정에서 막 벗어난 상판은 여염집 여인네 치마속 들추기 일쑤였다. 김관팔이 경기목사에게 뇌물을 바쳐 통진과 죽산 도호부사로 승승장구할 때 아들놈은 가는 곳마다 강간 사건을 일으켜 김관팔이 골머리를 앓았다. 사람들마다 “육시럴 놈”이라고 욕해대도 군포징수 위협에 수군대는 정도로 그쳤다.
김관팔은 상판이 계속 속을 썩이자 전임지 현감에게 시켜 상판을 양지현 찰방으로 가 있게 했다. 그런데도 그의 엽색 행각은 그칠 줄 몰랐다. 고을 내 양민 처자 중에 얼굴 반반한 이들은 마구간으로 끌고 와 강간했다. 그것도 아주 지능적이어서 딱히 죄를 물을 수도 없었다.
상판은 미치광이풀로 만든 약재를 보약인 양 속여 먹게 하고, 이를 먹은 처자가 정신이 혼미해져 스르륵 가라앉으면 겁간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양지현 왈패들과 어울리며 윤간도 서슴지 않았다. 제 어미뻘 되는 늙은 여인들에게까지 난봉질을 해댔다. 약발이 받지 않아 저항이라도 하면, 마구잡이 폭행이 이어졌다. 한 여인은 그들에게 억세게 반항하자 음부에 깨진 사기를 처박았다. 목숨 건진 것이 다행이었다.
모녀 겁간 당했던 유감동, 용인 청년 각을 떠 살해
유감동이 김상판을 약물사 하게 한 후 얇게 썰어 살해한 건 모녀가 김상판과 그 패거리 등에게 윤간을 당했기 때문이다.
양지현 태화산 자락 초부리 별감의 딸이었던 감동은 어느 날 어미와 수원부를 가기 위해 역말로 가 찰방 상판에게 파발마를 요구했다. 수원부로 서책을 구하러 나간 부친이 쓰러졌다는 얘기를 듣고 황급히 길을 나섰던 것이다.
“어이고 이를 어쩝니까? 당장 필요한 말이 없어요. 중참은 되어야 들어 올 텐데…우선 이거라도 드시고 기다리시죠.”
상판은 그러면서 인절미 한 접시를 내놨다. 콩가루가 어딘지 짙어 주저되긴 했으나 모녀는 의심치 않고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모녀는 역말에서 떨어진 방앗간에 버려져 있었다. 속곳이 벗겨져 있었다. 정신을 수습한 감동이 제 어미를 흔들어 깨웠을 때 어미는 숨을 거둔 상태였다. 머리에서 흐른 붉은 피가 흥건하게 땅을 적셨다. 어미는 감동이 정신을 잃었을 때 딸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다가 무뢰배가 내지른 돌에 실신했고,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겁간 당한 후 의녀 되어 복수 준비
그 후 유 별감 집안은 양지현을 떴다. 이팔청춘이었던 감동은 기녀가 됐다는 얘기가 풍문으로 전해졌다. 상판도 그 얘기를 들었다. 기녀라는 말에 사타구니 사이로 불쑥한 양기가 올랐다.
감동이 양지현 역말에 나타난 것은 칠월 초 어느 날이었다. 노란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감동은 모란 같은 얼굴로 해사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상판은 처음엔 움찔했으나 이내 미색에 반해 허둥대며 말을 이었다.
“내가 사람 볼 줄 안다니까. 양지현에서 썩기 아까운 인물이었지. 나 같은 호걸 만난 것 다행으로 알아. 그렇지 않으면 네가 이처럼 아리따워질 수 있었겠느냐? 색기가 좔좔 흐르는구나. 어디 한 번 오랜만에 품어 보자꾸나.”
감동은 상판의 생각과 달리 몸을 파는 삼등 기생은 아니었다. 수원부에 소속된 의녀(醫女)로 관리들의 체신을 챙겼고, 역병이 돌면 역병이 돈 마을로 들어가 불을 놓아 이웃 마을로 전염되는 것을 막았다. 약제에도 밝아 경기목사 안방마님 산후 하혈을 멎게 하기도 해 안방마님들 사이에 서로 부르기 바빴다.
“찰방 어른, 제가 수원부에서 최고로 여기는 보양제를 챙겨 왔나이다. 이거 두 환만 먹으면 양기가 대엿 시간은 간다 합디다. 이년도 달거리로 몸정 나눈 지가 꽤 되어 간지럽사온데 운우지정은 어떠한지요.”
상판은 앞뒤 안 가리고 감동의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양물 제 입에 문 용인 청년 시신…‘내 어머니의 원수 각을 뜨리라’
입에 양물을 문 난자된 상판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이튿날 정오께였다. 시신은 양물 뿌리가 잘렸고 그 주위로 골반 뼈가 드러나 있었다. 도려진 살은 표피층 별로 차곡차곡 널려 있었다.
그리고 손에 피를 묻혀 쓴 듯한 글귀가 땅바닥에 쓰여 있었다.
‘내 너를 더 도려 낼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네 아비 김관팔도 너와 못지않으니 내 반드시 각을 뜨고 말리라.’
장령은 눈짓으로 감동이 쓴 문장을 비변사 김관팔에게 보여 주냐고 물었다. 대사헌이 그러라는 고개를 끄덕이자 장령은 김관팔에게 조서를 내밀었다. 그사이 감동의 가슴에 한 눈 팔고 있던 김관팔은 재빨리 눈을 거두더니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장령이 보여준 문장을 읽고 나더니 후들후들 다리를 떨었다. 대신들은 비변사가 대체 왜 저러나 싶어 수군댔다. 감동이 그런 비변사를 향해 “퉤”하고 침을 뱉었다. 피가 섞인 끈적끈적한 침이 비변사 얼굴에서 흘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선임기자·시사소설 작가 jhjeon2@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