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의 품격=그동안 국가대표 선수들은 NFC 소집 때 청바지 등 캐주얼한 복장으로 ‘패션 감각’을 뽐냈다. ‘원 팀·원 스피릿·원 골’을 기치로 내건 홍 감독은 선수들에게 ‘정장 착용’을 주문했다. 또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숙소까지 이동했던 전례를 깨고 정문에서 하차해 걸어서 이동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걸으면서 국가대표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리라는 의도였다. 거기에 기성용의 ‘SNS 파문’ 등으로 흔들리는 대표팀을 다잡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홍 감독은 이날 오전 10시 7분 정장 차림으로 가장 먼저 도착했다. “2001년 파주 NFC에 처음 왔는데, 정문에서 걸어들어 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솔선수범한 홍 감독의 말이다.
대표팀의 최고참인 염기훈은 처음 입소하는 것처럼 떨린다고 했다. “처음으로 정장을 입고 입소하니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더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고참 선수로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겠습니다.”
여름 양복이 없어 겨울 양복을 입고 온 정성룡도 마음가짐이 새롭다고 했다. “정문에서 걸어오는데 카펫 위를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50여 미터밖에 안 되는 길이 몇 백 미터는 되는 것 같아요. 태극마크에 대한 애착심이 더 생기고, 책임감도 더 강해지는 느낌입니다.”
멀리 포항에서 올라온 이명주(23)와 고무열(23)은 넥타이를 맬 줄 몰라 호텔 직원에게 부탁했다고 했다.
◇닻 올린 ‘홍명보호’=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을 노리는 ‘홍명보호’는 20일 오후 7시 호주 대표팀과의 동아시안컵 1차전을 통해 데뷔전을 치른다.
홍 감독에게 이번 동아시안컵은 대표팀 개혁의 출발점이다. K리그 선수들의 기량을 점검함과 동시에 스피드를 바탕으로 수비와 역습에 치중하는 ‘한국형 전술’도 시험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소집된 23명의 선수들은 홍 감독의 신임을 얻기 위해 치열한 내부 경쟁을 벌여야 한다.
“도전자의 입장에서 왔다”고 한 홍정호(24·제주)는 “이제 부상에서 회복해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 동아시안컵에 맞춰 대표팀에 복귀했으면 하고 바랐는데 마침 홍 감독님이 불러 주셨다.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홍명보의 아이들’로 통하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명주, 고무열, 윤일록(21·서울), 조영철(24·오미야), 김동섭(24·성남), 김민우(23·사간 도스), 홍정호 등 7명은 의욕이 남다르다. 고무열은 “다시 국가대표로 뽑혀 영광스럽다”며 “절실한 마음을 보여 주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2003년 처음 시작된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은 2003년과 2008년 정상에 올랐다. ‘홍명보호’가 올해 세 번째 정상에 올라 브라질로 가는 첫걸음을 힘차게 내디딜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파주=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