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스몰토크] 對일본전 축구 쪼잔한'붉은악마', 응원 '때려칠' 일인가?

[전정희의 스몰토크] 對일본전 축구 쪼잔한'붉은악마', 응원 '때려칠' 일인가?

기사승인 2013-07-30 10:26:01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한마디로 ‘쪼잔하다’. 28일 서울 잠실에서 치러진 한·일 간 축구 응원전을 통해 보여준 양국 응원단 및 언론의 보도 태도가 말이다.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휘날린 일본 응원단 울트라닛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횡단막을 내걸은 ‘붉은악마’ 모두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것임에 분명하다.

여기에 우리 언론과 산케이신문 등을 비롯한 일본 언론은 서로 ‘반일,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구호는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의 얘기다. 그는 민족사관을 수립했고, 근대 사학의 기초를 닦았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말도 그의 얘기다.

한데 축구경기에서 양측은 애국심 대결을 벌였고, 경기가 끝난 후에도 양국 언론이 감정에 불을 지피며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쪼잔한(속된 말로 마음 쓰는 폭이 좁다는 뜻)’ 일본 관방장관은 ‘붉은악마’의 횡단막을 두고 “극도로 유감”이라는 신중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 언론은 ‘(한국인들의) 병적인 반일감정’이라며 자국민을 선동질했다. 우리 네티즌과 언론도 이에 못지않다.

위안부망언, 독도문제, 교과서 역사왜곡, 정치인 신사참배 등의 민감한 문제가 축구 경기장에서 그 같은 형태로 투영된 셈인데 그런다 하더라도 때와 장소가 틀렸다. 그냥 국가대항 A매치 스포츠일 뿐이다.

우리는 일본의 고삐를 쥐고 움직였던 민족이다

더구나 양측 응원단에 대해 대한축구협회 등이 제재에 나서자 ‘붉은악마’가 후반 응원을 보이콧했다는데 이는 성숙치 못한 자세다. 잠실 경기는 우리 안방에서 벌어진 경기고, 응원단은 손님을 맞은 주인 격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이라는 건 일본을 빗댄 얘기다. 맞다. 그들은 쪼잔하고 뻔뻔하다. 위안부 문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말할 수 없이 뻔뻔하다. 그 문제에 대해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다. 우리는 늘 현재적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역사, 근대의 역사가 일본에게 밀리는 것이 현실이다.

임진왜란 전만 하더라도 우리도 왜(일본)에 갑이었다. 조선은 화이관에 입각해 일본을 오랑캐로 여겼다. 이 무렵 막부 장군이 보낸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가 조선의 조하(朝賀·임금에게 하례하는 일)의식에 참여해 예를 갖췄다. 쉽게 말해 조공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왜와 대등한 자격으로 수호하고 사절을 교환했다. 소위 조공을 받을 정도로 갑이었던 조선이 교린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건 바보여서가 아니다. 속으로는 기미정책을 펼쳐 실리를 모두 얻었다.

기미란 말의 굴레와 소의 고삐를 가리키는 말인데 고삐를 쥐고 있었다는 뜻이다. 한데 이러한 우월적 지위는 명·청(중국)이라는 사대적 안보우산에 기생하다 종국에는 세계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일본 식민지가 되는 치욕을 겪으며 추락한다.

선조 등과 같은 멍청한 리더와 당파적 세도권력이 나라를 ‘말아 먹은’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신채호 선생의 말대로 ‘역사를 잊지 않고’ 극복해 오늘에 이르렀다. 일본이라는 사나운 이웃이 우리를 자극했던 점도 발전의 동력이었다.

‘자기 한풀이’식 응원, 양국 관계에 손해만 끼친다

한데 요즘 ‘붉은악마’와 같은 젊은층의 대일본 역사 인식을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살펴보면 기미의 실리보다 자기 한풀이에 가깝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세대도 아니고, 그로부터 비롯된 6·25전쟁을 치룬 세대도 아니면서 어떻게 그런 비이성적, 비합리적 대일관을 가지고 있을까 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기미는 둘째 치고 말과 소의 뒷발에 채일까 걱정이다.

엄밀히 말해 일본보다 더 무서운 적은 동북공정 등을 일삼는 중국이다. 그들과 우리는 1:1의 공정한 게임이 되지 않는 수퍼갑이다. 그들이 아편전쟁을 극복하고 살아나고 있다는 점은 악몽의 부활이다. 우리가 중국을 수천 년을 사대한 이유가 있다. 사대하지 않으면 먹혔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속된 말로 ‘짱개’라는 우월적 지위에서의 중국 비하는 한중수교(1992년) 이후 20여년 정도다. 우리가 수천 년 공녀(貢女) 바치며 살았던 게 한중관계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비록 ‘잊지 말아야할 구원’이 있으나 협력과 견제로 상생할 파트너다. 중화(中華)의 견고한 틀로 우리를 변방 오랑캐로 삼아온 중국에게 일본을 지렛대로 삼는 ‘블록경제’ 등으로 맞서야 한다.

일본은 섬나라가 갖는 폐쇄성 때문인지 심해 그 근본이 쪼잔하다. 반면 우리는 대륙적 기질이 있어 호방하다. 그 호방한 공식 응원팀이 쪼잔하게 대응해서는 안된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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