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노통 저주 발언, 정 아나 홍,홍,홍 웃다

[전정희의 시사소설] 노통 저주 발언, 정 아나 홍,홍,홍 웃다

기사승인 2013-07-31 10:17:01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장원서는 대궐 안의 꽃과 과실을 관리하는 관서였다.

정아나는 장원서 장원(掌苑)으로 정6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원서를 그만 두고 궁궐 바깥 외명부에 머물면서 왕의 친척과 관리부인들 잔심부름이나 하며 행하로 먹고 살았다.

정아나는 광해군 시절 꽃 같은 미모로 어딜 가나 사랑 받았다. 궐내 내수사(요즘 조달청 격), 선공감(건설교통부) 등의 관리들이 그녀가 나타나는 길목마다 기다려 말붙이는 바람에 정작 제 할 일은 뒷전에 미루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정아나는 홍 홍 홍 거리며 농지거리를 받아줬다.

정아나, 베이징 유학생 강추태와 수작하다

그 가운데서도 선공감 강추태 판관(종5품)과 수작이 잘 맞았는데 그 둘은 틈만 나면 경복궁을 빠져 나와 삼청골 계곡으로 숨어들곤 했다.

강추태는 명나라 사행원으로 몇 차례 베이징을 다녀왔다. 그 자랑이 어찌나 요란하던지 궐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청나라 동문관(외국어교육기관)에서 수학한 유학파라는 자랑을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하는 인물이었다.

한데 묘한 것이 정아나를 비롯한 궐내 여자 대부분은 강추태의 감언에 혹하니 넘어가기 일쑤였다. 내명부 귀인, 소의, 숙의 등 높은 품계의 여자들까지 그의 달변에 “어머머, 어머머”를 연발했다.

“이것이 베이징에서 유행하는 박하유라는 겁니다. 명은 확실히 대국이어서 쓰는 물건 하나가 우리와 너무 차이나요. 그쪽 여자들은 이 박하유를 발라서 그런지 피부가 아기 볼 살처럼 부드러워요. 정아나에게만 주려고 사왔습니다. 너무 비싸서 딱 한 개만 샀다니까요.”

“정말이에요. 홍 홍 홍. 어머머 벌써 곽부터 우리 것과 너무나 달라요. 확실히 그네들 것은 색감부터가 틀리다니까요. 이래서 베이징 명품, 베이징 명품 하나 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나 쓰지 도성 밖에 사는 것들 구경이나 하겠어요.”

그들은 그런 수작을 하면서 숙정문 아래 계곡에 이르렀다. 한 여름인데도 수백 년 된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어 조금도 덥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런데도 그늘에 들어야 한다며 동굴처럼 생긴 바위 아래로 찾아 들었다.

바짝 마른 바위에 비단 치마를 펼쳐 앉으며 정아나가 말했다.

“왜 이리 덥지요? 중복이 다가와서 그런가?”

“숙정문 아래가 음기가 성해서 그럴 겁니다. 도참을 좀 아는데 그렇다고 하더군요.”

정아나는 다시 홍 홍 홍 하고 웃었다. 가지런한 손끝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데 배겨날 자가 없을 만큼 고혹적이었다. 강추태는 약간 빈 듯한 그녀의 웃는 모습에 더욱 애가 달아 사타구니에 힘이 들어갔다.

“음기가 별거겠어요. 나비가 꽃을 찾는데 자연 꽃이 많은 데로 가는 게 이치 아니겠어요? 제가 장원서에서만 다섯 해예요. 궐내 화려한 나비는 다 압니다. 홍 홍 홍”

“크 하하하. 정 소저 농이 제법이시오. 꽃을 가꾸시다 보니 소저의 마음과 몸이 꽃 저리가라요. 음기란 바로 색 아니겠습니까? 꽃이 색 쓰는 거야 당연한 이치고요. 안 그렇습니까 정소저.”

강추태는 그러면서 도포 자락을 내치며 슬그머니 정아나 옆으로 앉았다. 손은 벌써 주단치마 끝자락을 살짝 잡고 있었다.

“여전히 더워요. 제가 너무 급하게 올라왔나요?”

정아나는 그러면서 치마를 살짝 들어 바람을 맞는 시늉을 했다. 흰 속치마가 아침 햇살보다 눈부시게 강추태의 머리 속으로 들어왔다.

“정 소저, 음기가 성한 곳에 와서 내 이리 체통 차리니 내가 아닌 듯 하오. 모름지기 사내란 질러야 사내다운 것 아니겠소. 베이징 변발한 사내들이 여자를 취할 때 그리 합디다. 크 하하하.”

그러면서 강추태는 정아나에게 접문(키스)을 했다. 정아나는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으나,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혀를 깊숙이 받아 들였다. 숙정문 나졸들이 중참을 먹으려는 지 신호를 보내는 소리가 매미 소리에 섞여 들리는 듯 했다.

동기 출세하자 “성상납했다” 폭로

그날 이후 두 사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중학천을 따라 삼청골 골짜기를 옮겨 다니며 서로를 탐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궐내 최고의 미색이라고 자부했던 정아나는 자존심 강하고 야심 있는 여자여서 내명부 서열 3, 4위 쯤은 콧등으로도 생각 안했다. 그들만 하더라도 성은을 입어 하루아침에 신분이 달라진 소의, 숙의인데도 ‘지깟 것들이’ 하며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이런 그가 헤살헤살 웃으며 사내들 농을 받아 주기 시작한 것은 장원서 동기였던 유 소저 때문이었다.

유 소저는 그와 같은 장원으로 단정한 처자였다. 그러면서도 서책을 놓지 않아 정아나로부터 미움을 사기도 했다. 유 소저가 책을 읽고 있을 때 정아나는 늘 분을 바르고 있었다.

어느 날 세자 광해군이 능소화에 반해 장원서에 들렀다. 마침 온실에서 꽃을 가꾸고 있던 유 소저가 궁궐 담에 의지해야 필 수 있는 능소화 전설을 자분자분 광해군에게 들려줬다.

“능소화는 궁녀 같은 처량한 꽃이 옵니다. 어디 기댈 때가 없으면 절대 홀로 설 수 없는 담쟁이 꽃이 옵니다.”

광해군은 유 소저의 박식함에 반해 그날 하루 시강도 마다하고 그녀와 화원에서 놀았다. 그리고 훗날 유 소저는 왕비 문선군부인 유씨가 됐다.

정권 바뀌자 출세욕 불태우며 ‘독설’

정아나는 바로 이 시점부터 헤살헤살 거렸다. 그날 온실 당직은 정작 자신이었으나 내수사 별좌가 그에 반해 비단과 잡화 등을 빼돌려 우마차에 실어 놓고 정릉골에 유회(데이트)를 가자하여 유 소저와 당직을 바꾼 것이다.

미모로 보나, 태생으로 보나 분명 왕비 자리는 자신의 것이었는데 한 순간 놓치고 만 회한이 컸던 정아나였다. 그러면서도 왕비인 유 소저에 대한 인정할 수 없는 질투심이 하늘을 찔렀다.

그가 강추태를 사실상 유혹 한 것도 질투심의 발로였다. 강추태의 아버지 강자헌이 광해군의 계모 인목대비의 복심이었기 때문이다. 인목대비는 광해군 즉위로 몰락한 당파 소북의 구심점이었고 정세 상 인목대비가 언젠가는 실권을 잡으리라는 확신에서 강추태를 안은 것이다.

하지만 강추태는 이미 혼인을 했고 첩도 두엇이나 됐다. 머리는 명석하다는 평판이었으나 쉼 없는 한량질로 성균관 출신 제 동기들에 비해 출세를 못하고 선공감 한직에 머물러 있었다. 사행원 일행이라는 것도 허울이 좋아 그렇지 사신 일행이 거침없이 나갈 수 있도록 잡부들 데리고 임시 다리를 놓거나 거두는 일이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저주로 집권당 주목 받아

그리고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광해군을 비롯한 대북파가 일시에 제거됐다. 대왕대비인 인목대비는 능양군을 왕으로 앉혔다. 그가 인조 임금이다.

왕비 폐비 유씨는 인목대비의 철저한 복수에 따라 광해군과 함께 강화도에 위리안치된 후 화병으로 죽었다. 그 소식을 듣던 날 정아나는 방문을 닫고 혼자서 홍, 홍, 홍 거리며 웃었다.

“이젠 두고 봐. 귀인 되는 일이야 일도 아니지. 귀인 되고 난 후 정비(正妃)되어 내 세상을 만들거야. 임금이 곧 부를 거야. 강추태에게 전향(향수)을 구해 달라고 해야겠어.”

그러나 인조는 정비 인렬왕후 한씨와 혼례를 한 후 장렬왕후 조씨, 귀인 조씨 등을 잇달아 얻었다. 정아나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정아나는 애가 달아 인목대비 처소에 매일 꽃을 갈아 대며 성은의 기회를 노렸다.

“궐내 너 같은 미인이 있다는 걸 왜 몰랐을꼬.”

인목대비가 어느 날 화과(花果)를 어루만지며 그리 말했을 때 정아나는 당장이라도 성은을 입을 것 같았다. 그날 정아나는 삼청골 약수터 아래 계곡에 들어가 뒷물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매번 그 뿐이었다. 인목대비는 정아나가 입 안의 혀처럼 군다는 것을 알았으나 정작 그를 인조에게 닿게 할 생각은 없었다. 홍, 홍, 홍 거리며 새는 웃음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무엇보다 강추태와의 염문을 알고 있는 터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정아나는 헛된 생각에서 놓여나질 못하더니 나중에는 독기를 품기 시작했다. 장원서 여인들이 승정원(요즘의 대통령 비서실) 관원들과 잠을 자려고 기를 쓴다는 소문을 냈다. 더구나 자신이 장원에서 별제(別提)로 승진하지 못하자 경쟁자인 신소식이 제조(최고 관리)에게 성상납을 한 후 별제가 됐다고 흥분했다.

결국 이러저런 일로 세월은 지나 정아나는 나이만 들어갔다. 주변의 시선도 따가웠다. 정아나는 이를 이기지 못해 장원서의 비리를 내부 고발한 것처럼 모양새를 잡은 후 궐을 떠났다.

몸은 시들고 입만 살다

그리고 외명부 여인들 뒤치다꺼리를 하던 정아나는 자기 인생이 꼬인 것이 광해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광해군에 대한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광해군은 폐비 유씨와 폐세자 내외가 사사된 후 강화도와 태안, 제주 등으로 유배지를 옮겨 다니며 연명하고 있었다.

“광해란 인간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종자였다.”

“다른 사람은 잘도 죽는데 왜 그 인간은 아직도 멀쩡히 살아 삼시 세끼 잘도 먹는가.”

“명나라는 우리 부모와 같은 국가인데 오랑캐(후금, 훗날 청나라)를 섬기자니…광해는 정신병자다.”

“광해는 후금의 사주를 받은 좌당(좌파)이었다.”

그의 독설에 집권당 소북은 ‘똑똑한 여자’라고 치켜세웠다. 정적 대북파를 잡는데 그녀의 독설은 좋은 여론의 도구가 됐다. 그녀가 외명부 잡일이나 하기에는 아까우니 내명부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얘기가 소북 사이에 나왔다. 그럴 경우 귀빈 같은 높은 지위는 힘들겠으나 숙원 정도는 넘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한편 강추태는 인조반정 후 사간원(미디어 격) 사간을 노렸으나 “색이 고운 여자는 아무데서나 옷을 벗을 수 있어야 한다”는 성희롱 발언을 앞뒤 없이 하고 다녀 원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정아나와의 내연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꽃이 졌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다만 두 사람은 입만 살아 시정잡배들이나 열광할 발언만 쏟아내는데 재미를 느끼고 살았다. 존재의 이유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 작가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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