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여민정이란 신인 배우가 있다. 전북 완주 모 예술대학에서 뮤지컬과에서 학업을 마쳤다. 포털 등엔 스물셋이라고 표기 되어 있지만 “진짜 나이는 스물여덟이다”고 밝혔다. 방송나이라는 것이다.
배우를 꿈꿨던 그녀는 2011년 채널 CGV드라마 ‘TV방자전’을 통해 데뷔했다. 지상파 채널만 있었다면 쉽지 않은 데뷔였을 것이다. 연극배우가 됐건, 탤런트가 됐던 유명 연예인이 되고자 했던 그녀는 “열아홉 살에 출가(가출) 한 뒤 미용실 스태프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영화 ‘AV아이돌’ ‘시체가 돌아왔다’ ‘자가, 장미 여관으로’ 등을 통해 관객에게 섹시한 이미지로 다가들었다.
그녀는 지난달 18일 경기도 부천시에서 열린 ‘제17회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 참석, 레드카펫 행사 도중 드레스가 흘러내려 가슴이 노출되는 사고로 주목을 받았다. 이때 팬티까지 노출됐는데 ‘뜨기 위한 고의 노출’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여자가 스타 되는 것 참 쉽죠 잉~”
어쨌든 그녀는 떴다. 여민정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이다. 무명 배우의 한(?)을 벗게 됐다. 은밀한 부위 보여주고 스타가 된 셈이다. 여민정은 우리 사회 관음증을 너무나 잘 아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반칙’을 우리 미디어가 아무런 원칙 없이 유통 시켜준다는 것이다. 더구나 MBC라는 메이저 미디어 브랜드가 말이다.
MBC ‘컬투의 베란쇼’는 지난 29일 여민정을 출연시켰다. 영화제 노출사고에 대한 심정을 들어본다는 목적이었는데, 그녀는 이 자리에서도 보란 듯이 가슴 깊게 파인 의상을 입고 90도 인사를 했다. 당연히 가슴에 눈이 간다. 진행자 정찬우가 “방송이니까 인사할 때 손으로 가려달라”며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이날 여민정은 “원래 (흘러내리는) 그런 옷”이라고 밝혔다.
위 모든 것이 하위문화라고 치자. 배설 안하고 살 수 없듯 관음 또한 배설과 같은 욕망이다.
그 20대 여배우, 자신의 일과 관련된 중요한 승부를 ‘몸 보여주고’ 한판승을 거두었다.
PD, 실수 아닌 속이는 출연자쯤은 걸러내야
한데 그러한 반칙 승부가 케이블TV채널도 아닌 공영방송 MBC에서 버젓이 유통될 수 있다는 게 의아할 따름이다. ‘공영방송’이란 말은 지배적 구조 얘기이자 사회적 합의의 의미다.
그 얘기를 빼더라도 한국방송사의 장자 격이고 한국 미디어의 본령이고, 그 사회의 문화수준을 드러내는 영향력 있는 매체이면서 하는 행태는 잡스런 케이블 채널만도 못하다.
자, 방송관계자 즉 ‘선수’들 끼리는 알 것이다.
여민정을 출연시킨 제작진은 ‘컬투의 베란다쇼’를 찍기 위해 오리엔테이션과 리허설 등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행자가 “방송이니까 인사할 때 (가슴) 손으로 가려 달라”고 당부까지 했는데 그 여배우 혼자 다시 사고를 쳤단 말인가? 또 설령 그 여배우가 어떻게든 몸으로 다시 떠보려고 합의를 깨고 사고를 쳤다 하자. 편집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런데도 제작진은 그 이전 부천 레드카펫서 사고 친 내용까지 포함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선수끼리 하는 얘기로 모든 것이 ‘콘셉트(의도된 연출)’이다. ‘사고 친 화면+90인사 가슴’까지 지상파에 다시 돌려 시청률이야 높아졌을 것이다.
차라리 모피코트에 반대해 벗어라
하지만 여민정처럼 우리 사회도덕과 상식을 무너뜨리며 도발하는 20대 여배우의 몸을 ‘예술’이라고 열광할 사람 없다. 차라리 동물을 학살하는 모피코트에 반대해 벗었다면 이해가 되겠다. 여민정의 그 은밀한 부위의 도발은 어떠한 가치도 담겨 있지 않다. 연기자는 연기력으로 승부를 벌여야 한다.
‘컬투의 베란다쇼’ PD에게 묻고 싶다. 게이트키퍼와 PD저널리즘라는 용어를 아는지?
아니 적어도 그 PD가 보편적 가치만 반영하는 상식만 가졌어도 ‘쉽게 가려는 배우’를 밤 9시대 공공재에 싣지는 않았을 걸로 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실수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속이는 것을 도와서는 안 된다. PD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가늠할 줄 아는 방송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메이저 방송사라면 더욱이 말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