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쓰면 오래 믿고 쭉~ 간다더니… 162일 만에 깨진 박근혜 인사공식

한번 쓰면 오래 믿고 쭉~ 간다더니… 162일 만에 깨진 박근혜 인사공식

기사승인 2013-08-06 01:29:01
[쿠키 정치]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정무·민정·미래전략·고용복지 수석비서관을 전격 경질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대대적 개편에 정치권 등에서는 허를 찔린 반응이 나왔다.

집권 162일 만에 단행된 청와대 인사에는 무능과 인사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현 참모진으로는 더 이상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대통령의 판단이 깔렸다는 평가다.

이번 개편은 2008년 6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광우병 촛불시위를 계기로, 취임 117일 만에 비서실장과 수석 거의 전원을 교체한 것에 견줄 정도의 파격적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박 대통령은 새 비서실장에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하고, 두 달 이상 공석이었던 정무수석에는 박준우 전 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를 발탁했다. 또 민정수석에 홍경식 전 법무연수원장, 미래전략수석은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대표, 고용복지수석에 최원영 전 복지부 차관을 내정했다.

김 전 장관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박 대통령을 도왔던 원로그룹 ‘7인회’ 멤버다. 교체된 허태열 비서실장에 이어 측근을 다시 임명하며 청와대 친정체제를 유지했다. ‘여의도 정치’와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먼 정무수석 탄생은 또 다른 ‘박근혜식 정치실험’이다. 대야(對野)관계는 새누리당에 맡기고 청와대 정무팀에게 전혀 새로운 기능을 맡기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 인사의 하이라이트는 발탁 배경보다는, 떠나는 참모들의 교체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 실장과 수석 4명이 전격적으로 바뀔 만큼 외부로 공개된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브리핑에서 “약 5개월여 동안 새로운 국정철학에 맞게 정책기조와 계획을 세우면서 많은 일을 해온 대통령이 하반기 보다 적극적인 정책 추진과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인선을 결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마디로 5명 모두 대통령의 뜻에 따라 교체됐다는 얘기다.

곽상도 민정수석의 경우 검찰개혁 등과 관련해 부처 장악력이 도마 위에 올랐고 최순홍 미래전략수석과 최성재 고용복지수석은 박 대통령의 핵심 어젠다인 창조경제 및 일자리 창출에 있어 기대 이하의 능력을 보였다는 지적이 청와대 안팎에서 제기된다. 허 실장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조정해야 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부 참모들은 특정인맥의 인사문제에 개입해 대통령의 눈 밖에 났다는 관측도 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2기 청와대 참모진을 통해 보다 강력한 국정운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 수석은 “장관 교체는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 2기 참모진 보니…PK 약진, 관료 출신도 9명으로 확대

박 대통령이 꾸린 2기 청와대에서는 서울대 출신들이 약진했고, 1기 때 강세였던 성균관대 라인이 쇠퇴했다. 출신 지역으로는 부산·울산·경남(PK)이 가장 많았고, 관료 출신은 더 늘었다. 평균연령은 60대로 여전히 ‘고령 청와대’의 면모를 유지했다.

1기 청와대 주요 참모진(3실장·9수석)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3명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을 비롯해 6명이 박 대통령을 보좌하게 됐다. 특히 5일 발표된 참모 5명 가운데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경북대)을 제외한 4명이 서울대를 나왔다.

반면 1기 때 5명으로 가장 많은 청와대 고위 참모를 배출했던 성균관대 출신은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2명만 남게 됐다. 이남기 전 홍보수석에 이어 허태열 비서실장, 곽상도 민정수석이 물러나면서다. 박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은 최순홍 미래전략수석이 빠지면서 한 명도 남지 않게 됐다.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였던 출신 지역은 2기로 넘어오면서 다소 편차가 생겼다. PK 출신이 4명으로 3명 중 1명꼴이 되면서 다수를 점하게 됐다. 서울은 3명으로 경기지역까지 합치면 수도권은 4명이다. 호남 2명, 강원과 충청은 각각 1명이었다. 박 대통령의 출신지이면서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 출신은 곽상도 민정수석의 퇴진으로 0명이 됐다.

7명이었던 관료 출신은 9명으로 증가했다. 이날 합류한 윤창번 미래전략수석과 기존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이정현 홍보수석을 제외하면 전원이 관료 출신이다. 게다가 윤 수석이 국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식정책연구원장을 역임했고, 이 수석은 국회의원 출신이며 유 수석이 23회 행정고시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 참모 12명 전원이 공직을 맡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 연령은 60.7세로 1기보다 0.4세 젊어졌지만 50대가 주로 포진했던 역대 청와대와 비교해 여전히 연령대가 높다. 2008년 6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 2기 청와대는 평균 57.9세였다. 여성은 1기 때와 마찬가지로 한 명도 여성 대통령을 보좌하지 못하게 됐다.

무슨 일 있었기에… 朴 대통령, 전격 경질 “왜?”

박 대통령이 5일 단행한 청와대 인사는 시기뿐만 아니라 폭과 범위에서도 ‘전격(電擊)’이었다. 지난주 짧은 경남 저도행(行) 이후 나머지 휴가를 청와대에서 보냈던 박 대통령은 철통 보안 속에 소리 소문 없이 경질 인사를 준비한 셈이다.

그동안 청와대 안팎에서는 몇몇 수석들에 대한 교체 소문이 무성했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비록 5개월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업무 추진 능력과 성과에서 의문표가 찍힌 참모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곽상도 민정수석은 몇 주째 증권가 ‘찌라시’ 등에서 “경질이 기정사실화됐다”는 내용이 오르내렸다. “검사장 승진을 하지 못한 채 검사직을 내려놓은 이력 때문에 검찰 최고위급 인사들이 그를 너무 만만하게 본다”는 루머가 돌고, “검찰 개혁을 주문하는 박 대통령 의중과 다르게 곽 수석이 해놓은 개혁 성과가 전무하다”는 말도 있었다.

하도 교체설이 도니 청와대에선 “원래 그 자리가 검찰 대기업 정치권 경찰이 다 흔드는 자리 아니냐. 교체설은 다 설일 뿐”이라는 해명이 나오기도 했다.

또 검찰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수사 과정에서 조율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가 “원 전 원장의 정치개입 혐의는 공소유지가 어렵다”는 소신을 지녔음에도, 검찰이 원 전 원장을 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하도록 방치(?)했고 결국 국정원 국정조사와 민주당 장외투쟁의 발단이 됐다는 것이다.

최성재 고용복지수석은 지난달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 및 돌봄시설 점검 결과를 보고했다가, 박 대통령으로부터 “그동안 개선방안을 추진했을 텐데도 위반사항과 지적사항이 줄지 않아 참 답답하다”는 질책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이 새 정부 최고의 정책”이라는 메시지를 입버릇처럼 던져왔음에도 그동안 새로운 일자리 방안 실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경질 사유로 여겨진다.

최순홍 미래전략수석은 ‘창조경제’ 구체화 작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곱지 않은 시각이 있어왔다. “창조경제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라는 지적이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조차 나오는데도, 그는 단 한번도 창조경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허태열 비서실장은 새 정부 초반 거듭된 인사파동과 불협화음, 그리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정국에서의 대처 잘못 등으로 옷을 벗게 된 것으로 관측된다. 허 실장은 지난 3월 인사파동이 불거졌을 때 ‘대독(代讀) 사과’ 논란을 야기했다. 인사검증 실패와 공기업 인사 중단 등도 교체 배경으로 꼽힌다. 결단성 있게 일을 처리하지 못해 무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가 하면, 반드시 전해야 할 민심을 제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었다.

민주당 홍익표 전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 파문 등에 대해서도 온건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면서 박 대통령과 ‘주파수’가 맞지 않다는 말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왔었다.

‘한번 쓰면 오래 믿고 쭉~’ 박근혜 인사공식 깨졌다

박 대통령은 취임 5개월이 갓 지난 5일 청와대 인선을 전격 단행하면서 ‘한 번 믿고 쓰면 오래 맡긴다’던 기존 용인술에 변화를 예고했다. 향후 인사에서도 전격 경질이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개각설과 일부 청와대 수석비서관 교체설이 돌았지만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감안했을 때 뜬소문에 불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올해 하반기부터는 정부 출범 직후부터 호흡을 맞췄던 청와대 1기 참모진과 초대 장관들을 중심으로 업무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입을 모았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인사할 때 세 번은 기회를 준다. 경고, 격려를 통한 재신임, 그 다음이 마지막(경질)이다”고 밝힌 적이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성재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박 대통령으로부터 공개 질책을 받은 직후였다.

이 관계자의 발언은 경고를 받은 해당 인사들이 다시 신임을 받고 업무에 매진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최 수석은 재신임을 받을 기회도 없이 물러났고, 박 대통령의 용인 공식은 깨진 셈이 됐다.



박 대통령의 변화에 전조는 있었다. 지난달 10일 언론사 논설실장·해설위원장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인사 문제가 화두에 오르자 “(전문성·능력을 지닌) 그런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닐 수가 있다.

기회가 되면 적합한 자리로 변경을 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 정부 들어 임명된 인사 중 기대에 못 미치는 사례가 있다고 시인했던 것이다.



관건은 향후 장관 인사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이 전격 경질 카드를 꺼낼지 여부다. 아직은 정부 각 부처의 수장들에 대해서는 더 기회를 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과의 오찬에서 역대 정권에서 장관들이 너무 자주 바뀌었다는 지적에 대해 “일을 마치기도 전에 또 새로 임명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박 대통령이 취임 첫해 하반기에 들어가면서 청와대 참모진은 물론이고 장관들에게도 ‘마냥 믿고 맡기지만은 않겠다’는 서슬 퍼런 신호를 준 것은 확실해 보인다. 특히 이미 1차 경고를 받은 박근혜정부 경제팀과 고용복지팀, 업무 성과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 창조경제 관련 부서(미래창조과학부·미래전략수석실) 등을 예의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지연되고 있는 공기업 인사에 대해서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기업 인사에 대해 “순차적으로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창호 유성열 기자 procol@kmib.co.kr
김철오 기자
procol@kmib.co.kr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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