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하드윤미] ‘그냥 아줌마’ 얼마인줄 아세요?

[친절한 쿡기자-하드윤미] ‘그냥 아줌마’ 얼마인줄 아세요?

기사승인 2013-08-17 03:15:01


결혼 앞둔 친구의 질문

[친절한 쿡기자-하드윤미의 똥개훈련] “나 결혼해”

다음달 결혼을 앞둔 친구가 며칠 전 저희 집에 놀러왔습니다. 어느 날 문득 생각나서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더니 곧 결혼한다는 거예요, 글쎄. 그래도 학교 다닐 땐 꽤 친했는데 결혼하는 걸 내가 먼저 물어봐서 알아야 하는 거였어? 어쩜 이럴 수 있니, 너! 우편으로 달랑 청첩장만 받기엔 뭔가 서운해서 집으로 불러들였죠. 전날 예비 신랑 예복을 맞추느라 오후 내내 분주했다며 까칠한 얼굴로 그녀가 왔습니다.

만나서는 대뜸 그래요,

“나 회사 그만뒀어!”.

결혼 앞두고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랄 예비 신부가 평일에 놀러온다는 거 보고 저는 이미 짐작했지요. 일이 많이 바빠서 몸과 마음이 축날 즈음 남자친구와 결혼 얘기가 나왔고, 혼기 꽉 찬 결혼인 만큼 임신과 출산도 급한 문제여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두 달 전 퇴사했다고 합니다.

“퇴사하는 거 예비 신랑이랑 합의한 거야?”

“그럼!”

“신랑이 대인배인 걸?”

“신혼집 대출금에 생활비를 생각하니 결혼하고 나면 맞벌이에 집착하게 될까봐 차라리 지금 어서 그만두라고 하더라.”

그러면서도 고민인 눈치입니다. 이대로 사회와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한 모양이지요. 어쩌면 우리 집에 선뜻 온 것도 선배 주부인 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힌트라도 얻을까하는 마음이 없진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질문과 답변들도 오고 갔고요.

“남편과 아이를 잘 챙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 없을까?”라는 친구의 물음에 딱히 명쾌한 답을 주지는 못했지만 이제서야 정답이 떠올랐어요.

“야, 그거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여자의 일생

열심히 사회생활 하던 여성들이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를 위해 집으로 들어옵니다. 사회생활을 준비하던 여성들 중 일부도 취직이 힘들어 결혼해서 '취집' 합니다. 그들은 전업주부로 살면서 남편을 챙기고 아이를 낳습니다. 첫 아이 키우기 너무 힘들고 정신없어요. 첫 아이가 좀 크면 금세 둘째가 태어납니다. 어른들 말씀이 애들은 키울 때 연달아 낳아서 키우는 김에 어영부영 키워야 한다고 하십니다.

주변 다둥이 엄마들도 터울이 많아지면 힘들다 노래합니다. 그래서 능력껏 연년생, 혹은 두세살 터울로 둘째를 낳습니다. 개중에 둘째 생각 전혀 없다가 뒤늦게 다둥이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도 서너살이 되면 어린이집에 갑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이제는 ‘엄마’가 된 여성들은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 유치원 친구 엄마들 모임, 학교 친구 엄마들 모임도 나갑니다. 산후조리원 동기들도 몇 년 째 계속 봅니다.

언젠가부터 가슴 한쪽이 허전해져 옵니다. 아이들 키우면서는 정신없이 사느라 문득문득 드는 서운함도 애써 외면하며 지냈는데,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같이 회사를 다니던 입사동기들은 벌써 차장이 됐습니다. 그들 중에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첫째 둘째 나이도 비슷한데 같이 사는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시는 덕에 걱정 없이 일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엄마들 모임하며 드나들던 식당에 붙은 ‘직원 구함’이라는 문구에 유난히 눈길이 갑니다. 인터넷 취업사이트에 접속해서 우리 지역 일자리를 검색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쥐꼬리만한 월급에 포기하고 맙니다. 내가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월급이 얼마였는데, 하고 생각합니다. 괜찮은 자리가 있어 이력서를 써보려하지만 최근 5년의 빈칸을 보니 막막해집니다. 중학생 이상되면 엄마 손길보다 학원비가 더 필요하다더라, 남편도 밥 해주는 아내보다 돈 벌어오는 아내를 좋아한다더라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또 마음이 급해집니다.

나도 기술을 배워서 누구처럼 공방을 내볼까, 동네 치킨집이 망한 자리에 카페를 차려보면 어떨까 생각은 많지만 당장 아이들 학원비도 막막한데 창업에 쏟아 부을 자금이 있을 턱이 있나요. 기술 배우려면 수강료도 드는데 그 돈이면 아이 영어학원 더 좋은데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막상 기술 배우다가 또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돈은 어쩌나요, 수강료 환불도 안 해주잖아요.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생각만하다가 잠을 설칩니다. 또 아침이 밝아오고 아이가 나를 깨웁니다. 엄마 오늘 학원에서 놀이공원 간댔잖아, 일찍 깨워달랬지!

경제적인 무능력함에 대한 실망감, 자기 계발의 기회가 부족해 성취감을 느낄 수도 없고, 행동반경은 지나치게 좁아서 사회적으로는 고립감도 느낍니다. 전업주부가 처한 총체적 난국, 그 시점에 던지는 ‘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저는 유쾌하게 답합니다.

“우린 그냥 아줌마야!”

그냥 아줌마

올해 초에 중앙일보에서 같이 일하던 선배의 러브콜을 받은 적이 있어요. 언론홍보 부서에 와서 일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지요. 선배에게서 일을 많이 배우기도 했었고 평소 존경하던 인생 선배였기에 아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언제나 걸리는 것은 육아 문제였지요. 양가 부모님께는 차마 육아를 부탁드릴 수 없는 처지였고, 사실 살짝 말씀도 드려보았지만 거절하시더군요.

아이가 아직 어려서 기관에만 하루 종일 맡길 수도 없고 결국 베이비 시터를 알아보는데, 이거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가사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아이만 봐주는 베이비 시터였는데, 저녁 시간에 야근 추가 비용, 아이 유치원 픽업 추가 비용, 간단한 청소나 집안일만 부탁해도 추가 비용! 입주 도우미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어요. 베이비 시터를 소개하는 업체 사이트에 여러 개 가입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는 사이 전 깨달은 것이 있었어요. 나, 상당히 비싼 아줌마구나!

남편한테 무심한 듯 얘기했어요.

"나 상당히 비싼 아줌마더라. 새벽 같이 일어나서 아이 도시락 싸고, 밥 먹여 유치원 데려다주고, 청소 빨래 요리 설거지 다 하고, 오후에 다시 아이 데려와서 책 읽어주고 놀아주고,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주말에 당신 챙겨주고. 그것 뿐이야? 양가 대소사 챙겨야지 명절에 일도 하지. 심지어 쉬는 날도 없어. 이거 다 추가 비용으로 계산하면 나 엄청 비싼 아줌마야!"

며칠 베이비 시터 알아본다고 신경 쓰던 남편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기고만장 했지만, 연봉 제의 과정에서 축출 당했지요. 베이비 시터 월급 줄 것까지 고려해서 엄청 고액의 연봉을 요구 했거든요. 제 얘기 듣고 선배도 황당했을 거예요.

“얘는 공백도 긴데 뭘 믿고 이렇게 당당해?”라고 하셨겠죠. 어쩌면 연봉 제의하면서 저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겠지요.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는 와중에 ‘그냥 아줌마’의 가치를 깨달은 사건이었어요.

이야기 하다보니 자화자찬으로 마무리인데,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이 남아있어요. 아줌마 되고나니 왜 이리 수다가 늘지요? 다음에 계속 이어서 들어주실 거죠?

김윤미 pooopd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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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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