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이런 환장할 일이 없었다. 거년 12월 15일 중참을 누구와 먹었냐니? 지 놈들이 중참 한 끼 사주고 그런 소리한다면 톡 까놓고 얘기를 할 수도 있으나 주구장창 물어뜯기 바쁜 자들이 갓끈 떨어진 뒷방 노인신세가 됐다고 이리 무시하나 싶었다.
그렇다고 중참을 같이한 자들의 이름을 밝힐 수도 없었다. 저도 죽고 나도 죽는 패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속사정은 정작 따로 있었다. 경복궁 옆 중학천 계류에 있는 백송후원에서 주색잡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에 흉년이 계속돼 임금이 삼금(松禁, 牛禁, 酒禁)을 명한 기간이었다. 특히 공직자가 주금을 어길 경우 관직 박탈과 유배까지 이어지던 때였다.
어느 왕 때이던가 왕세자가 주금을 어겼다는 오해를 사 우물가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주금을 어기면 국법으로 다스렸다. ‘열 사람이 먹을 곡식을 한 사람이 마셔 없애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백송후원은 중학천을 따라 삼청골 외진 곳에 자리했다. 후원 뒤로 와룡산이 자리해 임금이 거하는 북악산 못잖은 경치를 자랑했다. 멀리 목멱산이 시원함을 더해줬다.
좌포도대장(서울경찰청장 격) 김상판은 이날 사헌부(국가정보원 격) 당상관 원국정, 영의정 김영도로부터 계류도회를 준비하라는 명을 받았다. 말이 계류회지 좌당 소북(小北)을 역모로 몰아 정권을 손에 쥐기 위한 대책회의였다.
김상판은 급히 포도부장을 시켜 계류회로 가는 안국동길에 개미 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도록 차단하라고 명했다. 행여 소북이 자신의 출행을 알기라도 하면 빌미 삼을까 우려해서였다. 포도부장은 사령을 동원 좌포도청(지금의 종로 3가 단성사 일대)에서 돈의문, 안국동길의 행인을 밀어냈다. 김상판으로선 영의정과 도승지 영감을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읍할 노릇이었다.
국정원장, 비서실장, 서울경찰청장 청와대 옆 백송후원서 비밀회동
김상판은 선조 때 벼슬길에 올라 곽산군수를 지내고 온성, 창성 부사를 지냈다. 주로 오랑캐가 출몰하는 변방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세월을 보내야 했다.
앞서 그는 강원도 간성군수직에 보해져 그나마 오랑캐 걱정 안하며 자리 좀 잡나 했더니 사간원 대신들이 “김상판은 분수를 알지 못하고 오직 백성 착취만을 일삼아 그런대로 살만했던 간성읍이 형편없어졌다. 게다가 그는 글도 제대로 못 알아보는데다 둔하기까지 하다”고 탄핵했다. 그 바람에 두만강 무넘이 수직군사나 지휘하고 있는 처량한 신세가 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운 좋게도 선조 말년 경상우병사에 임해져 고향 대구부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권력에 줄을 대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다시 변방으로 쫓겨날지 모른다. 오직 위만 보고 맹진한다면 포도대장쯤을 할 수 있을 것이야.’
그런 그에게 경상병사 보임은 날개를 다는 계기가 됐다. 그는 재빠르게 대북(大北)의 정신적 지주라는 김영도의 집을 찾아 수직 군사를 세워 호위를 했다. 김영도는 임진왜란 때 경상도 의병장으로 활약해 경상도 대북의 중심인물이 됐다.
그리고 대북의 영수 이이첨(1560~1623)에게도 찾아가 “김영도 영감께서 천거하여 인사를 드리러 왔다”며 인맥을 쌓았다. 이이첨은 임진년 광릉참봉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세조 능의 위패를 지켜 선조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했다.
서울경찰청장, 경상도 급부상 세력에 빌붙다
그러던 차에 광해군이 집권했다. 그러나 대신들은 광해군이 차남인데다 후궁 공빈김씨가 낳은 자식이라며 업수여겼다. 광해군은 이를 갈았으나 권신 세력이 강해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무력으로 제압하지 않는 이상 달리 수가 없겠어.’
이런 그에게 김영도는 실권 세력인 소북을 물리칠 수 있는 책사였다. 광해군이 김영도를 영의정으로 발탁하자 기호지방 중심의 권신세력은 “경상도 한데 것이 재상이 되는 것은 조선 사직을 망치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광해군은 천신만고 끝에 동의를 얻어냈다. 한데 이번엔 김영도가 김상판을 좌포도대장에 앉히겠다고 나왔다.
“아니 그자는 나와 일면식도 없는데다 문서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들었소. 그런 자를 앉혔다가 좌당들의 공세를 어찌 막아낸단 말이오.”
“김상판은 둔한 자이옵니다. 따라서 당근만 준다면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전하께선 임진년 세자 시절, 피난 도중에 김상판과의 작은 인연이 있사옵니다. 이를 대신들에게 칭찬하시면 될 듯 하옵니다.
그 일이란 김상판이 희천군수로 있으면서 피난하던 왕녀 아기와 궁녀 몇을 호종했던 것을 말한다. 김상판은 정작 한 번도 보지 못한 왕실 궁녀가 마음에 들어 수작한 것이었으나 그 궁녀가 안고 있던 아기까지 챙긴 꼴이 됐다. 관운은 이렇게 돌고 돌아 행운처럼 다가들었다.
서울경찰청장, 국정원장 지시에 여론 조작
결국 김상판은 좌포도대장이 됐다. 그리고 윗선의 얘기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됐다. 무인 최고의 자리에 오른 김상판은 무엇보다 그는 수하를 시켜 조금의 범죄 빌미만 있으면 닥치는 대로 잡아들인 후 뇌물을 바치면 풀어줬다. 그 뇌물은 또 윗선으로 올라갔다.
이에 대해 사간원 정원(正言)은 이렇게 적었다.
‘김상판은 역당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민간에 해를 끼쳤는데 자기가 풀어주고 자기가 구속하면서 문을 열어놓고 뇌물을 받아 큰 부자가 됐다.’
그럼에도 그의 권력질주는 왕의 비호 아래 계속됐다. 그 무렵 문경새재에서 은상(銀商)이 강도를 당해 은자 수백 냥을 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당은 모두 도망가고 주범 허홍인의 노비 덕남만이 체포됐다. 김상판은 즉각 형조에 이송하려 했다.
한데 원국정이 끼어들었다.
“이 미련한 사람아. 즉각 임금께 보고하게.”
그러면서 그는 밀서를 내밀었다. 그 은상 강도 사건에 전 영의정 박순의 서자 박응서, 전 경기감사 심전의 서자 심우영, 전 북병사 이제신의 서자 이경준, 평난공신 박충갑의 서자 이경준 등이 연루됐다는 것이다.
“대감, 하오나 혐의가 없사옵니다.”
“곰탱이 같은 놈, 그리 미련해 어디다 쓰겠누. 니 놈이 영의정 대감 아니면 그 자리 맞기나 한가. 머리가 안돌아 가면 냅다 힘이라도 쓰거라.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오가작통 동원해 민심 뒤바꿔
그제야 말귀를 알아들은 김상판은 덕남의 주리를 틀었다. 상것 하나 포도청에서 죽어나가는 것이야 빈대 한 마리 죽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모진 고문 끝에 덕남이 공소대로 뱉었다.
“박응서 일당이 역모를 꾀한 것이옵니다. 역모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상을 턴 것이옵니다. 그들은 여주 강가에서 무륜당(無倫黨)을 조직하여 광해군을 몰아내고 영창대군을 옹립하자 얘기하는 것을 내 귀로 똑바로 들었나이다.”
“옳거니, 옳거니!”
김상판은 노래를 불렀고, 덕남은 남은 숨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이른바 ‘계축옥사’ 즉, 칠서지옥의 시작이었다. 원국정과 김영도는 일곱 서자가 연루된 강도 사건을 소북 제거에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김상판을 백송후원에 부른 원국정이 말했다.
“자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듣게. 자네가 잘못하면 우리 모두 죽네. 서자 일곱 놈을 모두 잡아들이게. 그리고 죽지 않게 문초해 영창대군을 겨냥하게. 영창은 선조의 정궁 인목대비의 자식일세. 이미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어 있네. 인목대비(영창의 어머니)의 아버지 김제남을 정점으로 한 좌당이 권신 정권을 이루고 있네. 알아듣겠는가?”
영의정 김영도는 백송루 미닫이문이 닫힌 것을 확인하고 눈을 지긋하게 감고, 원국정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체 없이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팔도의 부사들에게 파발마를 보내 오늘 자시(밤 11시~새벽 1시) 넘기 전에 오가작통률을 가동하도록 해서 역모 사실을 알리고 각 향리마다 방을 붙이도록 하게. 오가작통 향회에 참석하지 않거나 투덜대는 자가 있으면 곧바로 체포 구금할 수 있도록 무장한 병사들을 보내게. 그렇게 한다면 민심은 일시에 우리 손아귀로 들어오네. 오늘 밤이 고비네. 좌당들의 공세가 만만찮아. 돈 궤짝은 준비해 놨네. 가져가게.”
두 사람은 먼저 일어났다. 백송후원 솟을대문까지 따라 나간 김상판은 그들이 눈에서 사라지자 허리를 폈다. 그리고 포도부장을 불러 엄명을 내렸다.
12월 15일 점심 후 그는 치마폭서 헤맸다
포도부장의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자 김상판은 머리를 올려준 기생 윤선을 불렀다. 이제 제법 나이가 든 윤선은 가체를 한 채 장죽과 생황을 들고 들어섰다.
“허, 고년 젊었을 때와는 색다른 멋이 있구나. 이년아 저고리 좀 그만 치올려 입어라. 젖가슴 다 드러난다. 방금 전에 나간 김영도 영감 삐죽 나온 네 가슴에 애간장이 타는지 눈을 떼지 못하시더라. 젖가슴까지 올라가 네 치마끈 풀어보고 싶은지 침을 꿀덕꿀덕 삼키는 것 애절해 못보것더구만. 불쌍한 영감. 입맛만 다시면 뭐하겠나. 돼야 말이지.”
“에고, 그러는 영감도 너무 과신하지 마시우. 듣자하니 연지방 연지후원 희정이라는 년에게 빠져 이년을 찾지 않는 것 다 아오. 초경 지난 애들 뭍으로 내던지면 숭어마냥 이리 튀고 저리 튀기만 하지 영감 몸을 감치기나 하는 줄 아시우. 노계에겐 그년들에겐 없는 게 있는 걸 왜 모르시오.”
윤선은 그러면서 피던 장죽을 내밀었다. 앵속이 다져진 장죽이었다.
김상판이 죽 빨자 일순 정신이 뭉실뭉실해졌다.
“이년이 육보시로 안되니 이리 수작이구나. 허허. 내 어찌 너를 이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 윤선이 두 손가락으로 딱 하며 소리를 내자 비녀 두 사람이 청주가 올려진 상을 낑낑대며 들고 들어왔다. 뒤이어 거문고를 든 악공이 윗목에 자리했다.
윤선과 악공은 눈짓을 나눈 뒤 ‘신촌가’를 불고, 뜯었다. 앵속에 혼미해진 김상판은 담홍포를 벗고 윤선에게 다가가 치마끈을 풀었다. 생황 소리가 귓불에 울려 열락이 깊어졌다. 그가 옥색치마를 올려 머리를 처박고 나아갈 때 거문고 소리가 끊기는 듯 하더니 미닫이문이 닫혔다. 악공이 나간 것이다.
윤선은 치마폭 속에서 자신을 탐하는 김상판의 간살에 몸이 후끈 달아올라 청주병을 들어 꿀꺽꿀꺽 마셨다. 넘쳐 마신 청주가 앵두 같은 입술 끝으로 흘러 치마를 적셨고 이어 흰 속곳에까지 스며들었다. 김상판은 그 속에서 어느 맛인지 분간하지는 못했으나 달지게 빨았다.
신시(오후 5시) 무렵 그가 백송후원을 나왔을 때 해가 인왕산 자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년, 색정 한번 대단허이. 일어나지 못할게야. 다시 앙탈 못부리겠지.”
김상판은 무장인 자신의 근력이 자랑스러운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포도부장 이놈이 팔도에 제대로 하명했나 모르겠군. 어서 돌아가야겠는걸.’
서울경찰청장, 토사구팽 당한 후…
이른바 계축옥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덕형 이항복 정협 신흠 박동량 이정구 김상용 황신 등 소북과 남인 인재들이 사사되거나 유배, 숙청되는 피의 참극을 불렀다. 영창대군은 강화부사 정항에게 살해됐다. 김제남 등 100여명은 주살됐다.
그 뒤로 김상판은 출세가도를 달렸다. 무엇보다 재물 욕심이 많았던 그는 죄인을 풀어주고 뇌물 받기를 그치지 않았다. 광해군 마저 염려할 정도였다. 그의 부당한 사법처리에 노비 20여명이 그를 습격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광해군은 “황공히 여기지 말라”며 그를 곁에 두었다.
1623년. 폭정에 시달린 백성과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반정공신들은 집권초반기 김상판을 삭탈관직 했다. 그리고 계축옥사가 있기 전 계류회의 때 누구를 만나 어떤 음모를 꾸몄는지 토설할 것을 추궁했다.
“포도부장들과 밥을 먹은 것은 기억나나 낮참에 누구와 먹었는지는 도무지 모르오.”
“원국정과 김영도를 만난 것을 하늘이 알고 있소. 게다가 주금 기간에 포도대장이란 자가 술을 마시고, 앵속을 빨다니…비단 그거 뿐이오? 주색과 치부 등 형언할 수 없는 죄목이 당신에겐 있소. 당신 손에 죽은 무고한 사람들이 무릇 몇이오?”
그 뒤로 한달 후 김상판은 참수되었다. 그 참수된 시신은 서소문 밖에 걸렸는데 원한 가진 자가 너나없이 칼을 들고 달려들어 시신을 조각냈다. 그 조각을 개가 물고 다녔다고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 작가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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