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하드윤미] 취집도 하는데 취직이 대수겠어요?

[친절한 쿡기자-하드윤미] 취집도 하는데 취직이 대수겠어요?

기사승인 2013-09-05 09:05:01

[친절한 쿡기자-하드윤미의 똥개훈련] 지난번 이야기 때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게 힘들어 ‘주부의 길’을 택한 '그냥 아줌마'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지요? 이번에는 사회진입이 어려워 가정으로 돌진한 순수 ‘취집족’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취직이 힘들어 취집한 여성들

처음부터 취집을 꿈 꾼 여성들은 많지 않을 거예요. 제 친구 수연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취직한 수연이는 회사에서 나름대로 인정받으며 잘 생활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입사한 지 만2년이 되었을 즈음 모임에서 만난 수연이의 얼굴엔 잿빛 구름이 뒤덮여 있었습니다. 일이 자기와 잘 맞지 않는다는 고민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엔 단순 행정 업무인 줄로만 알았는데 연차가 쌓일수록 사장님이 영업 실적을 요구하기 시작했답니다.

사무실 내에서 주어진 일은 잘 해내지만, 사람을 만나서 설명하고 무언가를 판매한다는 것이 수연이의 성격과 가치관에 맞지 않았습니다. 6개월간 고민하던 수연이는 결국 전공을 살려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겠다며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이 어디 전공한다고 덜컥 붙는 것이었나요? 회사에서 일한 시간만큼을 수험생 신분으로 살면서 모아놓았던 돈도 생활비며 학원비와 교재비로 다 까먹었지요.

만 3년을 꽉 채운 수연이의 공무원 시험 준비는 등 떠밀려 나간 선 자리에서 만난 지금의 남편 때문에 끝이 났습니다. 수연이 부모님은 마음이 무척 급하셨던 모양이에요. 여자가 나이는 먹지, 모아놓은 돈은 계속 써대지, 공무원 시험 합격은 요원하고 시간만 가니, 아예 시집을 보내버리자 생각하신 거죠.

처음에는 아직 쓸만한 나이라며 큰소리 떵떵 치던 수연이도 주변 친구들이 회사에서 잘 나가고 결혼해서 가정 꾸리는 것을 지켜보며 4년째 백수인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합니다. 공무원이 된다면 더 좋은 남자들 많이 만날 수 있을 텐데 생각하면서도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는 걸 보면 이 남자는 분명 좋은 사람일 거라고 확신했대요.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땐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있고 부모님이 하도 세뇌를 시키셔서 시야가 많이 흐려져 있었던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수연이는 선본 지 4개월 만에 5월의 신부가 됐습니다.

'그냥 아줌마,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아줌마가 된 수연이의 신혼은 핑크빛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기만 했습니다.

해본 적도 없는 살림을 살아야 하는 동시에 매일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해야만 했으니까요. 사실 4개월이면 한 사람을 알기에 얼마나 짧은 시간인가요, 그러니 결혼하기 전에는 절대 본 적 없었던 남편의 모습들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요. 남편과 서로 다른 성장환경과 생활습관 때문에 다투고 부딪히는 사이에 계획에도 없던 아이가 생겼습니다.

처음하는 살림 하랴 남편이랑 싸우랴 입덧 하랴, 수연이는 그 시절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해요. 힘들었다는 말로는 도저히 다 표현 못할 한(恨)과 울분이 응축된 고된 시간이었다고 회고하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과의 관계는 수많은 전투 끝에 정전의 상태로 서로 포기할 것은 포기한 채 하루하루 아이를 봐서 버티는 꼴이었지요.

아이 보느라 하루종일 에너지를 쏟아 붓고 나서는 남편과 냉랭한 저녁 시간을 보내야 하고, 집이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졌대요. 원래 살림이나 육아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쉽사리 인간관계에 뛰어들지 못하는 성격의 수연이는 인터넷 주부 카페 모임도, 놀이터에서 만나는 동네 아이들 엄마들과도 교류하고 싶지 않았답니다.

“생각해보니 그때 난 우울증에 걸려 있었나봐”

3년동안 한과 울분의 긴 터널을 지나온 수연이는 이렇게 자평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합니다.

“어찌됐든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다 아줌마 되는 줄 알았지.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아줌마더라.”

그냥 아줌마를 향하여

요새 수연이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에 문화센터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웁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퀼트도 배워볼 생각입니다.

지금은 뚜렷하게 진로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이거다 싶을 땐 열심히 배워서 공방이라도 창업할 계획이랍니다. 그때 정도면 아이도 어느 정도 컸겠죠.

유치원 하원한 후에는 베이비 시터에게 아이를 맡길 생각입니다. 살림과 육아보다는 조용히 앉아서 집중하며 할 수 있는 일이 자기에게 더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힘들어 허덕이며 만성 짜증을 달고 사는 엄마보다는 자기 일 열심히 하며 행복해하는 엄마를 아이도 더 좋아할 거라고 저는 수연이를 응원합니다.

수연이는 부쩍 밝아졌습니다. 남편과의 관계는 아직도 소원하지만 수연이는 둘의 미래를 낙관합니다. 그녀에게 에너지가 생겼으니까요. 이제 수연이는 그냥 아줌마가 다 되었습니다. 문화센터 한 군데 다니는 것만으로 말입니다.

모든 취집 여성이 수연이처럼 힘든 것은 아닐 테지만, 혹시 직장 대신 선택한 주부라는 직업이 잘 맞지 않으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그렇다면 다시 한번 사회로 발을 디뎌보세요. 취집도 한 마당에 취직이 대수랍니까.

김윤미 pooopdog@naver.com
김상기 기자
pooopdog@naver.com
김상기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