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하드윤미의 똥개훈련]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팬픽이 등장했습니다.

팬픽이란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쓰는 소설을 말합니다. 팬덤 픽션의 준말인 것이지요. 보통 아이돌 스타의 팬들이 자신의 스타를 주인공으로 삼고 다른 아이돌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만듭니다. 주된 내용은 사랑과 우정 이야기이고, 동성연애나 다소 수위 높은 장면도 등장하지만 대부분 흥미 위주의 가벼운 스토리입니다. 물론 진실이 아닌 가상의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정치인들 팬픽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안티팬들이 해당 정치인의 정책이나 개인 비위 등을 비꼬아 비판할 목적으로 작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인 팬픽은 패러디와 풍자의 하나로 분류됩니다.

최근 등장한 이 의원 팬픽 역시 이 의원과 정반대의 정치 성향을 지닌 '일베저장소'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본 글 보다는 이 의원 관련 포털 사이트 뉴스의 댓글을 통해 많은 이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이 의원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김재연 의원이 삼각관계로 등장하는 짧은 글인데, 서로 말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는 풋풋한 연애감정이 주 내용이고 이번 이 의원 사태에 대한 풍자도 간략하게 들어갑니다.

헌정 사상 최초로 내란음모혐의를 받은 국회의원이라 그런지 이 의원을 향한 날 선 비판이 일베 뿐만이 아닌 일반 네티즌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듯 보입니다.

정치인 팬픽의 시초는 허경영 전 대선후보였습니다. 민주공화당 총재로 제 15대, 16대, 17대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나섰던 허 전 후보는 특이한 공약과 행보로 대형 팬덤을 형성했습니다. 신드롬에 가까웠던 그의 인기는 팬픽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는데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과의 러브 스토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박 대통령의 팬픽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대표 팬픽은 지지자에 의해 씌어져 박 대통령이 신격화되어 등장할 정도의 내용지만 일반 네티즌들 사이에서 풍자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정치인 팬픽의 최고봉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팬픽입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 전 대통령, 박 대통령이 삼각관계로 등장합니다. 내용은 길지 않지만 아이돌 팬픽에 준하는 대사와 감정 묘사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팬픽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 역시 아직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아이돌 팩픽과 마찬가지로 한번 읽고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정치인 팬픽입니다만,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매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헌정 사상 초유의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는 우리 국민의 정서가 이런 팬픽에 묻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김윤미 pooopdo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