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출항 80일을 넘긴 ‘홍명보호’가 표류하고 있습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향해 이제 막 돛을 올렸는데 안개와 암초를 만나 헤매는 꼴입니다. 당장 이렇다 할 해법이 없으니 전망도 밝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의 영원한 라이벌 일본은 상황이 어떨까요. 든든하게 정비를 마치고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팀”이라는 찬사까지 얻었습니다. 홍명보(44) 감독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홍 감독님, 2014년은 이상 없죠?”
홍 감독은 6월24일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홍 감독은 여론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등에 업고 있었습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독일을 ‘신형 전차군단’으로 개조하고 4강까지 끌고 간 요하임 뢰브(53) 감독을 보면서 홍 감독을 떠올린 축구팬이 많았고 그 가운데 일부는 홍 감독이 뢰브 감독과 같은 지도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죠.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아시아 사상 첫 4강 진출을 확정한 승부차기 마지막 골의 주인공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올스타 출신인 홍 감독에 대한 여론의 신뢰는 적어도 선임 과정으로만 보면 대표팀 감독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축구대표팀 감독은 역시 ‘독이 든 성배’인 걸까요. 홍 감독이 크로아티아와 친선경기를 치른 지난 10일까지 정확하게 80일간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자 여론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7월 동아시안컵에서 호주와 중국(이상 0대 0 무), 일본(1대 2 패)을 상대로 단 1승도 빼앗지 못한 홍 감독은 지난달 14일 페루와의 경기까지 무득점 무승부로 끝냈죠. 두 달간 한 골을 넣고 3무1패로 부진하다 지난 6일에서야 아이티를 4대 1로 격파했지만 나흘 만에 크로아티아와의 대결에서 1대 2로 무릎을 꿇어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아이티를 상대로 거둔 유일한 승리도 편파판정 논란에 휘말리고 말았죠.
‘홍명보호’의 현재 성적은 1승3무2패입니다. 초반 부진이 계속되자 여론의 일각에서는 내년 6월 개막하는 브라질월드컵 본선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여전히 홍 감독에 대한 응원이 대부분이지만 곳곳에서는 “홍 감독님 2014년은 괜찮은 거죠. 불안합니다”, “월드컵까지 1년도 남지 않았는데 골을 넣을 선수를 찾지 못한 건 문제가 심각합니다”라는 의견도 잇따랐습니다. “승리의 요인을 설명하는 인터뷰 형식의 제약회사 광고를 너무 빨리 찍었네요”라는 글도 보이더군요.
홍 감독에게 주어진 선결 과제는 스트라이커 발굴입니다. 키 플레이어 부재와 수비 조직력 붕괴 등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는 현재의 대표팀에서 골을 넣을 선수가 없다는 점일 겁니다. 골키퍼가 막고 수비수가 저지하고 미드필더가 기회를 만들어도 공격수가 골을 넣지 않으면 이길 수 없기 때문이죠. 문제는 해법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마 홍 감독의 머릿속은 골 결정력 향상에 대한 구상으로 가득할 겁니다. 홍 감독은 크로아티아와의 경기를 마친 뒤 공격수에 대한 깊은 고민을 꺼내 보이면서 “이 문제가 언제 풀릴지 모르겠다”고 털어놨습니다. 아직 차출하지 않은 선수들 가운데 공격 자원인 스트라이커 박주영(28·아스날)은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키 플레이어인 미드필더 기성용(24·선덜랜드)은 SNS 막말 파문의 여파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아 지금 홍 감독의 머릿속은 아주 복잡할 겁니다.
“그것도 하필 숙적 일본이 잘해서…”
여론의 불안감은 사실 우리의 영원한 숙적인 일본의 선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평행선을 그리며 나란히 달리다 앞으로 치고 나간 경쟁자는 내 앞의 다른 누구보다 눈에 띄기 마련이죠.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일본의 상황을 지켜보는 건 기자나 축구팬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국과 일본이 같은 시간에 축구대표팀 경기를 하면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에는 일본 경기의 관련 키워드가 요동칩니다. 한국이 크로아티아와 싸우는 순간에는 ‘일본 가나’가 오르내렸죠.
한국과 일본의 팽팽한 균형은 남아공월드컵을 기점으로 깨졌습니다. 현재 일본은 한국보다 앞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남아공월드컵 9위로 아시아 출전국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일본은 같은 해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와 다음해인 2011년 1월 도하 아시안컵에서 모두 정상을 석권하며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일본은 남아공월드컵 이후 한국과의 전적에서도 2승2무로 우세합니다. 한 번의 무승부도 도하 아시안컵 4강에서 연장전까지 120분간 2대 2로 비긴 공식기록이고 경기에서는 일본이 승부차기(3대 0)로 이겼으니 사실상의 전적은 3승1무인 셈입니다.
월드컵 직후인 2010년 8월부터 지휘봉을 잡은 알베르토 자케로니(60·이탈리아) 감독의 지도력은 베테랑인 엔도 야스히토(34·감바 오사카)부터 팀의 중심인 하세베 마코토(29·뉘른베르크)와 혼다 케이스케(27·CSKA 모스크바), 젊은 카가와 신지(24·맨체스터 유나이티드)까지 고른 연령분포의 스타플레이어와 조화하며 ‘강한 일본’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원정에서 프랑스를 1대 0으로 격파하고 올해 2월 라트비아를 3대 0으로, 이달에는 과태말라를 3대 0으로, 아프리카의 강호 가나를 3대 1로 물리친 일본의 선전은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닙니다. 지난 6월 아시안컵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한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과 이탈리아, 멕시코를 상대로 3전 전패를 당했지만 이탈리아와 벌인 2차전의 경우 전반전까지 2대 1로 앞서다 후반 난타전 끝에 3대 4로 져 세계 축구팬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일본은 가나대표팀의 제임스 이피아(54) 감독의 지난 9일 발언처럼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가장 큰 보폭으로 세계 수준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일부 우리나라 축구팬이 ‘홍명보호’를 일본과 비교하며 조바심을 내는 이유는 아마 이런 상황을 부정할 수 없어서일 겁니다.
한국이 ‘아시아 최강’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브라질월드컵에서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할 겁니다. 남아공월드컵을 기점으로 일본이 그런 것처럼 말이죠. 브라질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274일입니다. 오는 13일이면 정확하게 개막 9개월 전입니다. 선수도 발굴해야 하고 표류하는 배의 방향도 잡아야 하는 홍 감독의 마음도 축구팬만큼이나 다급할 겁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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