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대선 투표장서 피자 돌린 교수에게 "행위아닌 생각이 범죄다" 판결"

"법원, 대선 투표장서 피자 돌린 교수에게 "행위아닌 생각이 범죄다" 판결"

기사승인 2013-09-22 15:05:00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투표소 주변서 피자 돌리면 범죄?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교내 부재자투표소 주변에서 학생들에게 피자를 나눠 준 교수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70만원의 선고 유예가 확정됐다.

대전지법 제11형사부(이종림 부장판사)는 이같은 지난해 12월 13일 자신의 아내 등을 시켜 교내 대통령선거 부재자투표소 인근이자 투표참여 독려 캠페인이 진행되는 곳 주변에서 학생들에게 피자 45판를 나눠준 혐의로 기소된 충남대 이 모(56) 교수에게 이같이 선고 유예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투표를 하게 하거나 하지 않게 할 목적은 미필적 인식만 있으면 족하다”며 “이 교수가 교내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 분회장으로서 민교협 차원의 피자 제공행사를 계획했다가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개인 차원에서 피자를 제공한 점 등에 비춰보면 투표를 하게 할 목적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어 “다만 이 교수가 학생들의 정치·사회적 무관심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그들에 대해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주의 부족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점, 피자 제공행사가 부재자투표소로부터 1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진행된 점, 선거의 공정성에 끼친 영향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해보면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어휘 장난’하는 판결

재판부가 말하는 ‘미필적 인식’이란 뭘 말하는 걸까? ‘미필적 고의’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미필적 인식’이란 말은 생경하다. 따라서 사전적 정의 ‘미필적 고의’에 기반해 ‘미필적 인식’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미필적 고의’란 ‘어떤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심리 상태’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골목에서 질주하게 되면 사람을 치어 죽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것과 같다. 사고가 나도 할 수 없다며 질주한 경우다. 당연히 처벌 받아야 한다.

이에 빗대 ‘미필적 인식’을 설명하자면 한 마디로 똑 떨어지지 않는 애매한 ‘어휘 장난’이다. 쉽게 말하면 피의자의 인식, 즉 ‘사물을 분별할줄 아는 교수라는 자가 그 따위로 생각하는가, 따라서 당신의 앎(생각) 자체가 범죄이다’인 셈이다.


따라서 판사의 ‘미필적 인식’은 ‘골목에서 질주하면 사람이 다쳐 죽을거야’라고 알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범죄가 된다는 논리다. 이번 판결문을 보면 ‘인식’이 처벌 받은 것이지 ‘행위’가 처벌 받은 것은 아니다. ‘미필적 고의’는 행위를 담보로 하는데 ‘미필적 인식’은 앎을 담보로 한다는 판결이다.

인식이 처벌 받는 사회는 무서운 사회

‘인식’이 처벌 받는 사회는 무서운 사회다.

판사가 말한 ‘미필적 인식’은 아마도 법철학에 기반, 피의자의 내면까지 배려(?)한 후 법의 인식론으로 닿아 나온 듯싶다.

판사는 ‘피의자라는 사물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여 따져 보니 그의 앎이 법이 추구하는 가치에 반한다’고 봤던 듯 하다. 따라서 판사는 판사 자신의 주관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세상 사람들이 ‘보편 타당하다’ 라고 생각하는 기준을 잡아 ‘미필적 인식’ 위반이라고 했고 그것은 죄라고 보았을 것이다.

인식 처벌, 후진적 판결

판사는 왜 당당하게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결내리지 못한 것일까?

‘인식’이란 법철학적 용어다. 법철학이란 주관적 세계관에 입각한다. ‘행위가 범죄다’라고 논리적으로 말해야 한다. ‘앎이 범죄다’라고 한다면 후진적 판결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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