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이렇게, 이렇게 쥐고 쓰거라.”
공주향교(충남의 국립대학 격) 훈장 이교학은 열일곱 처녀 명희의 섬섬옥수를 잡았다. 세필을 쥔 명희 손을 덧잡고 ‘성은’이란 언문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방바닥에 한지를 펴고 그 위에 ‘성’자를 쓰던 명희는 아무런 생각 없이 훈장이 이끄는 데로 붓을 움직였다.
‘성’이란 언문이 완성되자 훈장은 바로 한문 ‘性’자를 썼다.
“훈장 어른 이것도 언문이옵니까?”
명희의 질문에 그는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궁금한 게냐?”하고 물었다.
“예 어른, 저는 빨리 언문을 배워 흥청이 되고 말 것이옵니다. 기녀(흥청)만 되면 멋진 옷도 입고, 돈도 많이 벌수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오호 장한지고! 그렇다면 이 글자를 모르면 안 되느니라. 내 친히 가르쳐 줄 것이니 다시 한 번 써보자꾸나.”
그러면서 교학은 달항아리 엉덩이 치켜 올린채 학구열에 불탄 명희의 뒤로 가서 제대로 손을 쥐었다. 자그마한 명희의 몸은 교학의 도포자락 안으로 쏙 들어온 형국이 되었다. 큰 수캐가 암캐를 배아래 둔 듯했다.
뒤에서 명희를 안은 교학의 가쁜 숨이 명희의 귓불을 간질였다.
“아이, 훈장 어른. 이상하옵니다.”
명희가 간지럽다는 듯 고개를 빼려했다.
“뭐가 이상하다는 게냐? 성(性) 자를 배우려면 좀 참거라.”
“그냥 떨어져 가르쳐 주셔요. 자꾸 더워지옵니다.”
“으허허. 요망한 것. 바로 그것이 ‘성’ 자이니라. 더워지는 것이 성 자니라. 성은을 입으려면 이처럼 더워져야 하느니라. 누렁이 흘레붙는 것 보았느냐?”
그러면서 교학은 두툼한 입술로 명희의 귓불을 물었다. 귀밑머리부터 땋은 댕기머리는 반대편 귓불로 넘어가 있었다.
“아…”
명희가 정신이 혼미한 듯, 붓을 놓고 이마를 한지에 박았다. 그러자 노란 저고리가 아래로 쏠리면서 치마끈이 드러났다. 그 사이로 드러난 사발 엎어놓은 듯한 가슴이 탐스러웠다.
명희는 와중에도 훈장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자그마한 소리로 대답했다.
“우리집…아…앙, 누렁이가 개똥이네 암컷과 붙어 있는 것을 봤습니다만 망측해 눈을 돌렸사옵니다. 아…아…”
그와 동시에 교학의 손이 명희의 다홍치마를 열었다. 흰 속곳이 그를 더욱 열락에 빠뜨렸다. 누렁이가 침을 질질 흘리며 암컷 뒤에서 덮친 형세였다.
“권력자의 흥을 돋구는 학자돼야”
이교학은 이날 오후 수업을 마다하고 읍성으로 들어가 질청 아전과 운평선발을 위한 점고를 하고 있었다.
이교학은 훈도 겸 채홍사였다. 앞서 연산군은 팔도 향교에 미인을 선발해 궁궐로 올리라는 ‘운평(運平) 교지’를 내렸다. 이를 맡은 자에겐 벼슬을 주었는데 그 벼슬 이름이 채홍사였다. 덕망 있는 훈장들은 혀를 차며 연산군의 교지를 무시했으나 팔도마다 서너명쯤의 훈도는 채홍사를 자원했다. 교학이 그 한 명이었다.
“훈장 어른, 읍내 반반한 것들은 교방에 모아 놓았습니다만 이런 잔치를 향교가 꼭 해야하는지요? 관기를 올려 보내도 맞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아. 지금 시국이 어느 땐가? 북방의 야인과 남방의 왜구가 들끓어 연산 임금께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수척해지셨네. 국사로 지친 옥체 보전을 위해서 흥을 돋울 흥청(興淸)을 우리가 올려 보내는 것이 봉녹 받는 신하의 당연한 도리 아닌가? 자네는 언제까지 읍성 구실아치나 할텐가? 이번 일이 잘되면 자네도 경아전(중앙공무원 격)으로 가는 길이 열리네.”
교학이 아전 서가놈을 위하는 척 구실을 댄 것은 정작 자신의 속셈을 보이는 짓이었다. 공주 미인이 임금의 성은만 입는다면 자신은 성균관 대사성(서울대 총장 격)도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 무렵 연산은 자신에게 쓴소리를 한다하여 사간원(언론)과 성균관을 폐했다.
그녀의 음탕한 눈빛이 교학을 자극했다
이교학은 그날 이후 사나흘에 한 번씩 명희를 불렀다. 그날 흘레 자세로 성 자를 배운 명희는 노골노골해져 있었다. 누우라면 눕고, 벗으라면 벗었다. 망측하다며 외면했던 양물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명희의 음탕한 눈빛이 교학을 더 자극했다.
명희는 공주목사 신보수의 서녀였다. 음기가 성했던 명희는 신보수의 부탁에 따라 교학에게 언문을 단독으로 배우게 됐다.
“너의 미모면 명나라 천자도 반하겠다. 그러하니 네가 방중술을 배운다면 성은도 입을 수 있을 것이야. 서녀만 아니었다면 숙원(종4품)도 무난할 텐데 아깝구나. 그러니 흥청이 된 후 왜어(倭語)를 익혀 역관이 되도록 해라. 내가 삼포(왜인의 왕래를 허가한 포구로 부산, 진해, 울산을 말함) 훈장을 할 때 사귄 우두머리 왜관 오바리시를 잘 아니 그 놈 잡아타고 왜국 왕비가 되거라.”
명희는 이교학의 제안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꿈을 꾸는 것 아닌가 볼을 꼬집어보았다.
이교학이 서재에서 후배위로 명희를 농락할 새 밖에서 사동이 이교학을 애타게 찾았다. 사동의 귀엔 “저 죽어요”하는 여인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이 이상하였으나 감히 저 같이 무식한 것이 훈장 서재 문을 열어볼 수도 없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댔다.
그때 인기척을 알아챈 교학이 저고리를 열어젖힌 채 미닫이문을 열었다.
“훈장 어른, 목사 어른께서 뵙자 하옵니다. 속히 등청 하소서.”
목사란 얘기에 교학이 흠칫 놀랐으나 명희가 발그레한 얼굴로 별 일 아닐 것이란 눈짓을 했다.
“알았다고 전해라. 후딱 갈 것이니 그리 알거라.”
그러고도 한 식경 더 명희와 놀아난 교학이 훈장입네 하고 흑관을 머리에 얹고 향교를 나섰다. 공산성 자락으로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사실 그는 머리에 흑관을 쓸 자격이 없었다. 여말선초 왜구가 지리산 남원 운봉까지 밀고 들어와 노략질을 해댈 때 태조 이성계가 왜구들을 물리친 적 있었다. 그런데 패잔병들이 퇴로가 막히자 울릉도를 거쳐 달아나려고 백두대간을 탔는데 그 도주과정에서 문경 새재에 이르게 됐다. 그들은 화전민을 약탈하며 도주했고 그 우두머리가 희양사 시주에 나섰던 여염집 여인을 겁간했다. 여인은 아이 하나 점지 해달라고 백일기도 나온 읍성 양민이었다. 교학의 피는 그 절반이 왜구였다.
“새 교과서 각 학교 배포해 강제 역사교육해야”
“이 훈장, 자네가 전하를 좀 지켜줘야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임금이 큰어머니인 월산대군 부인 박씨를 겁탈하지 않았나. 이 때문에 사림들로부터 이만저만 고역을 치루는 게 아닐세. 성은이 꼭 아래로만 내려가는가? 적백모(嫡伯母)도 아닌데 임금이 백모를 취했기로서니 그게 무슨 흠인가. 명 황제의 전하면 조선의 천자인데 그 천자가 여인을 취할 때 경국대전 보고 취하느냔 말일세.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형님,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제가 형님 만나려고 문경에서 이 멀리 공주까지 온 것 아닙니까? 당연히 조선은 임금의 나라입니다. 어떻게 세운 조선인데 사림 그 잡것들이 지존을 흔든단 말입니까? 백성의 나라라뇨? 그런 생각하는 놈들은 시뻘건 놈들입니다. 또 사해 어느 나라도 임금이 건드리지 못하는 여자는 없습니다. 제가 새 경국대전(역사교과서 격)을 집필해 강상의 도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그 경국대전을 서원(당시 사림 중심의 사립학교 격)에 배포해 강제 역사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사직이 천년을 갑니다.”
“그러려면 뭔가 설득력 있는 춘추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제가 동래향교(부산)에 있을 때 왜나라 법도를 공부했사옵니다. 거기 법도에 따르면 천황이 나라를 이끄는데, 그 천황은 제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도 혼인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 화란(네덜란드)이라고 하는 도깨비 같이 생긴 오랑캐들이 있사온데 그들이 성경이라 하는 책을 지니고 다닙니다. 그 책에 형수를 취하는 문장이 있다 하옵니다. 이것을 경국대전에 적용해 사해의 법도임을 강조하면 됩니다.”
신보수가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옳거니 옳거니! 경국대전의 강상의 윤리 부분을 바꾸면 되겠네. 자네가 그리 바꾸어 훈구대신(집권당)들 앞에서 밝혀주게. 전하도 크게 기뻐할 것이야. 역시 자네는 우리 시대의 사표일세.”
그 후 신보수가 이조판서에게 ‘이교학 판 경국대전’을 올렸다. 판서는 곧 바로 이를 연산군에게 봉헌했다. 연산이 말했다.
“비로소 율령이 제대로 서는구려. 더구나 장악원(국립국악원 격)을 폐하고 채홍사들이 뽑은 흥청을 위한 연방원을 세우도록 법으로 규정한 대목은 정말 마음에 드오. 이교학이란 자는 공자 이래 최고의 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오. 과인이 오늘 흥청망청 놀지 않을 수 없소. 흥청들 대기시키시오. 크하하.”
흥청망청 쓴 새 역사교과서 곳곳에 오류
새 경국대전은 그렇게 각 급 학교에 강제 배포됐다. 이전의 역사책은 모조리 폐기됐다. 그러자 참외문신(參外文臣)을 비롯한 생원·진사 교도들이 ‘신 분서갱유’라며 격분했다.
특히 공주향교 학장 김일손은 이교학을 대놓고 다음과 같은 상소를 올렸다.
‘신이 훈도를 두루 시험하여 보니 훈도 하나는 한 경전에도 능통하지 못하므로 스승이 교생을 가르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생이 도리어 스승을 가르치게 되니, 진실로 탄식할 일입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뇌물 청탁으로 말미암아 훈도의 직을 얻어서 군역을 면하기 때문입니다.’(실록 ‘연산군일기’)
또 사간원서 해직된 정랑 한 사람은 “이교학이 사초를 왜곡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생도만도 못한 문장력으로 쓴 ‘신 경국대전’은 앞뒤 안맞는 문장이 천여곳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사해는 급변하게 변하고(사해는 빠르게 변하고)’ ‘임금은 흥청에서 해마다 많은 자식이 쌓였다(임금은 흥청에게서 해마다 많은 자식을 얻었다)’ 등의 비문이 다반사였고, ‘사해가 둥글다는 것을 통해 명나라 중심의 사해관에 비판적이었다’ ‘곧장 향교를 나온’처럼 이해 안되는 문장 또한 부지기수였다.
이교학의 경국대전은 삼포 왜인 우두머리 오바리시를 통해 교토에도 전해졌다. 왜는 조선이 자신들의 법 덕정령(德政令)을 베끼었다며 좋아했다. 더는 조선이 상국이 아니니 삼포 우두머리들은 이교학을 좌장으로 그 세를 확장해 나가라고 격려했다.
그 무렵 명희는 흥청이 되어 연방원에서 기예를 배웠다. 이교학의 자문에 따라 게이샤가 배우는 가부키학습에도 열을 올렸다.
이교학은 이제 연산군의 경연에도 나서게 됐다. 그리고 경연이 끝나면 연방원 밀실에 들어 신명희의 가부키를 혼자서 즐겼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가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