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스몰토크] 청와대 비서실, 영조임금과 이조판서의 사례에서 배워라

[전정희의 스몰토크] 청와대 비서실, 영조임금과 이조판서의 사례에서 배워라

기사승인 2013-10-18 17:48:01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

청와대가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관련 국민일보 10월 4일자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17일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습니다.

국민일보는 기사에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약후퇴 논란을 빚은 기초연금과 관련해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를 묵살했고,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은 진 전 장관을 배제한 채 직접 복지부에 지시해 수정안을 만들고 마치 진 전 장관이 동의한 것처럼 허위보고를 했다는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거죠.

2.

옛날 얘기 하나 할까요? 조선시대엔 임금이 신하를 부를 경우 승정원을 통해 패초(牌招)를 보냈다고 합니다. 승정원은 요즘으로 치자면 청와대 비서실입니다.

패를 받은 신하는 보통 참석 여부를 기입해 본인이 직접 궐문 밖에 와서 바쳤답니다. 패를 받은 관원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응했습니다.

그런데 영조 때 이조 판서 이병상은 50여 차례나 패초를 어긴 모양입니다. 이에 화가 난 대제학 정형익은 이조 판서인 이병상이 대제학을 겸직하는 것은 기강과 체모에 어긋난다고 사람을 바꿀 것을 건의했습니다. 임금의 소명을 어긴 것은 고금에 없는 일이라고 신료들이 비난했겠지요.

이병상은 대제학에서 물러나도록 하겠다고 상소합니다. 이에 영조가 비답(가부의 대답)을 내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경은 참으로 지루하게 소명을 어기는구나. (경이 그만 둔다고 하나) 내뜻이 정해진 이상 백 번을 어긴다 한들 어찌 바꾸겠는가? 그러나 경의 그런 뜻을 알고서도 줄곧 강요한다면 이는 예로써 신하를 부리는 뜻이 아니다. 일의 체모를 약간 손상하더라도 군신 간에 마음이 서로 막히지 않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겸직한 대제학은 지금 우선 바꾸어 주겠다.

아! 내가 경에게 이와 같이 간곡하게 하였는데, 경이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모름지기 이러한 마음을 헤아려 본직을 오래 비워두지 말고 속히 나와서 공무를 행하라.”

3.

영조는 이병상에게 이조 판서는 그대로 하라고 합니다.

당시 신하가 임금이 부름에 응하느냐 마느냐 하는데 기준이 되는 것은 ‘신하의 도리’와 ‘처신의 도리’였다고 합니다. 즉 신하가 자신이 처한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 관계에 따라, 또는 개인의 처한 상황에 따라 임금의 부름에 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했다는 얘기죠.

인재를 어떻게 든 쓰려는 임금의 ‘간절한 마음’, ‘신하된 도리’와 ‘처신의 도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신하. 이것이 300여년 임금과 신하가 서신으로 입장을 나눈 내용입니다.

이때 승정원은 뭐했냐고요? 그 군신 간에 나눈 국정운영 대화를 모두 ‘승정원일기’를 통해 기록했습니다. 국정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묵묵히 도리를 다한 거죠.


4.

그런데 전자우편과 스마트폰이라는 뛰어난 소통 환경에 처해 있는 오늘의 청와대는 비서실이 그 소통의 목을 좁게 하고서 교통 정리를 합니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 퇴진 사건도 ‘항명’인지, ‘축출’인지, ‘합의’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관이 대통령을 만나는데 비서실이 끼어들어 ‘정리’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비서실 수석이 차라리 장관하는 것이 낫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난 의사 전달만 하는, 옛말로 승지일뿐”이라고 했는데 그 얘기가 실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승지가 ‘첨삭’하기 시작한 권력은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걸 알겁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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