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스몰토크]친구누나 마루에서 잠자다 & 북한의 남한 음란물

[전정희의 스몰토크]친구누나 마루에서 잠자다 & 북한의 남한 음란물

기사승인 2013-11-11 14:25:00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 북한이 이달 초 강원도 원산을 비롯한 7개 주요 도시에서 80여 명의 주민을 무더기로 공개처형했다고 11일 중앙일보가 보도했습니다. 북한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를 통한 보도입니다. 그 인사는 최근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이 인사는 “공개 처형은 지난 3일 동시 집행됐으며 한 곳당 10여 명 안팎의 주민이 남한에서 유입된 드라마·영화를 보거나 음란물을 유통했다는 혐의로 처형됐다”고 전했습니다.

8명이 처형된 원산에서는 공안당국이 1만 여명의 주민을 신풍경기장에 집결시키고 처형 대상엔 흰 보자기를 얼굴에 씌운 후 기관총으로 난사해 죽였다고 합니다.

처형자 대부분은 성 문제와 풍기문란 사범입니다. 지난 7월 은하수관현악단 일부 단원이 음란 비디오를 만든 사건으로 집단 처형된 것과 관련 있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이 악단 출신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연루됐다는 소문에 공안 당국이 공개처형이란 강공을 택했다는 분석도 있고요.

2. 북한 소식은 언제 들어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입니다. 북한은 믿을 만한 소식통조차 없는 폐쇄 집단이죠. 척화비까지 세워가며 서구 열강을 막으려 했던 흥선대원군이 혀를 내두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아미노 요시히코는 “일본과 달리 한국이 기독교를 빠르게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성리학’과 같은 하나의 신을 모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한 문장이 기억납니다. ‘공자라는 신’ 공인 국가가 조선이었으니까요.

이러한 유일신주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급격히 세확장을 이뤄냈다는 겁니다. 북한은 평양이 ‘한국의 예루살렘’이었고 ‘평양대부흥회’ 등을 통해 기독교세가 급성장했던 곳입니다. 그러나 남북 분단이 되면서 김일성이라는 새로운 교주(종교)가 나타난 거죠.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가 내 손안에 있는 21세기에 북한을 공산주의라는 이념으로 똘똘 뭉친 집단으로만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종교 집단’이 맞다고 봅니다.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확신범 같은….

3. 저 역시 소식통에 의해 북한 소식을 듣습니다. 중앙일보 보도와 비슷한 얘기입니다만 북한 사람들이 요즘 가장 반겨하는 선물이 USB라는데 놀랐습니다.

“무엇에 쓸고?”

남한 드라마·영화 등을 다운 받아 몰래 몰래 본다는 거죠. 그러려면 새끼손가락만한 USB 저장장치가 필요한데 그걸 주면 입이 좌악 벌어진다고 합니다. 주고받기 편한데다 실용성이 높으니까요. 컴퓨터 보급률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도시 사는 웬만한 집은 낮은 급 데스크 탑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4. 1883년 미국을 다녀온 민영익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암흑계(조선)에 나서 광명계(미국)에 갔다가 다시 암흑계로 돌아왔다.”

1936년 나운규 주연 영화 ‘종로’의 주제가는 미국 대중문화를 타락의 기표(記標)로 삼습니다.

‘짜스(재즈)가 춤을 추는 종로 한복판/스카트 짧아져 에로 각선미/황금의 무덤 속에 순정을 묻고/싸구려 장사치가 사랑을 판다네’

또 6.25 한국전쟁 후 미8군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미8군 무대는 우리 대중문화의 본거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가수 최희준 패티김 김상국 위키리 등은 미국 인기가수 모창 등을 통해 스타가 된 이들입니다.

‘황야의 7인’과 같은 미국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면 다음과 같은 글귀가 화장실 벽에 낙서로 남아 있었죠.

‘나는 어제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그런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 혼자 마루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 누나의 치마를…’

5. 북한이 딱 이 수준입니다. 한국 드라마·영화 등이 유통되는 것도 문제인데 그 내용이 퇴폐적이고 타락적이라고 인식하는 거죠. 북한 주민은 욕망을 추구하는데 기득권을 지키려는 당조직은 온갖 명분 씌워 주민을 탄압하는 거죠.

6. 우리도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태생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겠으나 그 이전 세대는 욕망과 사상을 북한 못잖게 통제 받았었죠.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칼 맑스인줄 알고 그의 저서를 빼앗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요즘 사상 통제가 70년대 방식으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52% 국민이 투표로 선택한 일이니 어쩌겠습니까? 북한과 달리 우리는 우리 스스로 각자의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니 다수결주의에 승복해야 합니다.

7. 대중문화사 시각으로 보자면 이명박 정부 이후 남북교류 중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체 왜 인도적 지원과 문화예술 등 비정치적 교류를 막는 거죠? 인도적 교류를 통해 지원되는 물자가 북한군에 흘러 들어가고 궁극에는 핵무기 개발에 쓰인다는 건데…이러한 대북 정책 수준은 딱 1970년대 방식입니다.

8.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70년대 방식이라는 게 그대로 나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일제 워크맨을 가지는 것이 로망이었던 젊은이들 나옵니다.

더 뒤로 가 50~70년대 미군에서 흘러나온 마아가린으로 밥 비벼 먹으며 그 맛에 황홀해 하던 기억 도 있습니다. 마아가린 뿐이었겠습니까? 그들이 마셨던 코카콜라 캔 하나에 미국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했던 우리입니다.

서울 남대문시장 등 각 지역 큰 시장 마다 미군에서 흘러나온 제품 몰래 파는 도깨비시장 있었습니다. 그 물질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비루한 삶을 알게 됐습니다.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진 건 뭐 때문이죠? 한류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제품 팔려고 용쓴다 해도 머릿속에 굳어진 K-팝에 대한 동경은 훈육적 사상을 압도합니다. 남한 드라마나 가요를 들은 북한 주민이 그럴겁니다.



9. 북한 주민은 지금 예전 우리와 같은 비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물적 교류 건, 문화적 교류 건 그들과 오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스스로 무너집니다. 햄버거와 코카콜라에, 워크맨에 무너졌든 말이죠.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내가 보낸 노트 한 권이 북한군 병영일지로 쓰인다고요? 물론 쓰이죠. 하지만 물질은 인간의 욕망을 담고 있어 돌고 돕니다. 미국 제품 도깨비시장에 도는 것처럼 말이죠.

10. 남북교류가 활발할 때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한 대북 지원단체가 북한 어린이를 위해 노트를 지원했는데 북한 측이 받지 않더랍니다. 종이지질이 너무 좋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러면서 갱지 노트 없냐는 겁니다. 지원단체가 “있긴 한데 되레 친환경 용지여서 그것이 더 비싸다”고 했더니 굳이 그걸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그 노트를 받더니 이번에는 갱지 노트의 표지를 다 뜯어 낸 후 달라고 했답니다.

“왜?”

“광택 표지와 그림(애니메이션)이 너무 좋아 안된다.”

11. 북한 주민 총살형이 사실이라면 답답한 우리 정부입니다.

북한이 남북 관계 악화 속에서도 개성공단 만은 못 건드리는 이유를 그리 모르겠나요? 거기를 통해 북한 지도부가 원하는 재화를 챙길 수 있어서입니다. 교류도 안하면서 땅 내주고 재화를 챙길 수 있으니 그들로서야 바람직한 남북교류인거죠. 어찌 보면 개성공단은 북한 지도부만 살찌우는 식량창고 같은 겁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인도적 교류와 문화 교류입니다. 우리가 마아가린 맛에 반하고, 워크맨에 반해 굳건하게 세웠던 경계를 스스로 허물었듯 북한에 대해 ‘남한류’ 계속 보급할 통로를 가져 자연스럽게 그들의 경계를 허물어뜨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건 ‘자유의 맛’이죠.

12. 성인이 생겨나면 큰 도둑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큰 도둑이 성인이 지키는 도덕을 다른 의미에서 실천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어찌됐든 북한의 김일성, 남한의 박정희는 우리 현대사의 ‘거목’임에 분명합니다.

그 두 사람을 두고 오늘날 남북의 도둑들이 ‘다른 의미의 실천’으로 백성을 괴롭힙니다. 남과 북 일부 지도자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북한에 비해 우리가 조금 더 전향적일 뿐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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