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국민의 72%’가 “게임은 중독”, 그런데 말입니다…

[친절한 쿡기자] ‘국민의 72%’가 “게임은 중독”, 그런데 말입니다…

기사승인 2013-11-21 10:25:00

[친절한 쿡기자] 지난 19일 눈길을 끄는 기사가 하나 등장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최근 게임업계 최고의 논란거리인 ‘중독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일명 게임중독법)’에 반대하는 이들의 어깨를 축 늘어지게 만드는 기사가 하나 등장했습니다.

이날 이 기사를 다룬 거의 모든 매체가 제목을 ‘국민 72%, 게임도 도박·술·마약처럼 중독성’이라고 달았더군요. 요즘 트위터나 포털사이트에 기사 댓글을 보면 이 법안에 반박하고 반대하는 글들이 넘쳐나는데 참 의외였습니다. 기사 내용(설문조사 결과와 관련된 부분)을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여론조사 전문 업체인 리얼미터가 조사한 결과 ‘인터넷 게임도 도박, 알코올,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72.1%로 ‘지나친 생각’(20.8%)이라는 응답보다 많았습니다.

또 ‘본인 또는 주변에 도박·게임·마약·알코올로 고통을 겪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20.9%가 ‘있다’고 답해 5명 중 1명 이상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인터넷 게임을 중독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에 포함하는 것을 찬성하느냐’에 대한 질문에는 ‘찬성한다’(47.8%)가 ‘반대한다’(31.9%)는 응답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번 조사는 지난 13∼14일 전국의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입니다.


여기까지 입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여기서 요즘 한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유행어 한 번 써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읽으신 분들, 뭐 이상한 것 못 느끼십니까.

바로 ‘연령대별 응답’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겁니다.

게임은 정상적 생활에 지장을 주는 수준으로 빠져드는 사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부작용이 있으면서도, 엄연히 ‘문화 산업’ ‘문화 콘텐츠’로 범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다는 양면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게임은 세대별 관점 차이, 그에 따른 갈등과 논란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게임과 친숙하지 않은 높은 연령대는 전자인 부작용에, 젊은 연령대는 후자인 하나의 산업·콘텐츠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제까지 달나라에서 살다가 지구의 대한민국으로 이사 온 국민이 아니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상식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설문조사에서 ‘국민’이란 이름으로 전체 평균을 낼 땐 내더라도 연령대별로 좀 더 세분화된 응답 결과를 보여주는 건 당연합니다. 그래야만 중심을 이루는 메시지가 왜곡 없이 전달되고, 사람마다 해석은 다양하게 나올지언정 그 근거가 되는 정보만큼은 객관적 힘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얼미터에 해당 기사에 대한 원 자료를 요청해 받아 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자료를 보니 연령대별 결과를 보여줄 필요성을 더욱 확신하게 되더군요.

“인터넷 게임을 중독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에 포함하는 것을 찬성하느냐(원 자료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에 대한 질문에 이미 언급했듯이 ‘찬성한다’가 전체의 47.8%로 ‘반대한다(31.9%)’가 많았죠.

연령대별로 보면 20대에서 ‘찬성한다’가 31.3%, ‘반대한다’가 50.9%였습니다. 30대는 각각 39.2%·43.5%로 ‘반대한다’가 조금 더 높았습니다. 40대부터 확 기울기 시작합니다. 40대는 62.8%가 찬성하고 28.7%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50대는 각각 56.7%·23.5%, 60대는 46.7%·15.2%였습니다.

‘찬성한다’의 평균이 40·50·60대의 압도적 지지로 만들어졌다는 부연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국민의 47.8%’가 게임이 술·도박·알코올과 같이 법안에 포함되는 것을 찬성하고, ‘국민의 31.9%’가 반대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원 자료를 보니까 ‘잘 모름’이 20.3%나 되던데 이건 왜 무시해버리고 기사들에 내용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내용의 설문조사에서는 잘 모르겠다는 응답자의 비율도 꽤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연령대별 차이가 심하진 않았지만 “인터넷 게임도 도박, 알코올,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원 자료에서는 ‘게임으로 인한 중독을 인정하느냐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는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20대의 경우 ‘게임도 도박·알코올·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가 53.6%, ‘게임에 중독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생각한다’가 32.4%였습니다. 30대에서 각각 67.5%·27.1%로 그 격차가 좀 더 벌어졌고, 40대 79%·19.4%, 50대 82.7%·14.6%, 60대 76.0%·11.8%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국민의 72.1%’가 게임도 중독성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보니 이 설문조사는 단순히 국민의 몇 퍼센트가 중독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몇 명은 찬성한다고 하고 몇 명은 반대한다는 것만을 달랑 알려주고 끝낼 내용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좀 아시는 분들은 이미 예상하시겠지만 매체들이 처음 이렇게 보도한 매체의 기사를 그대로 따라 썼습니다. 하다못해 수신료 받는 KBS도 그대로 베껴 쓴 기사가 인터넷에 떠 있더군요. 만일 언론에서 원 자료를 받아 보고도 이런 식으로 전달했다면 그건 더 큰 그리고 무서운 문제입니다.

어떤 기사든지 같은 내용들이 여러 매체에 의해 하나 둘 쌓이면 사회적 여론이 되거나 여론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설문조사 기사를 보고 “누구 맘대로 국민의 72%라고 하느냐” “믿을 수 없다”는 등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네티즌들의 댓글이 꽤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잘못된 건 설문조사가 아니라 그 결과를 전달한 언론이었습니다.

이 설문조사 결과대로라면 국민의 72%가 게임은 중독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게임이 중독 법안에 포함되는 것에 국민의 47.8%가 찬성한다는 거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명색이 ‘국민의’ 평균이라면 그 배경도 같이 알려주는 게 맞는 전달 아닐까 싶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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