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의 발언은 하수(下手)다. 돌로 유리창 깨고 도망가는 동네꼬마 맨발로 쫓아가 쌍욕 해대는 꼴이다.
2. 이정현 수석은 지난 22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소속 사제들의 시국미사에서 박창신 원로신부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자 즉각 다음과 같이 한마디 했다.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 흔들리는 지반 위에선 집이 바로 서 있을 수 없는 법이다.”
같은 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리 말했다.
3.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에서 활동했던 김용민(39)씨가 23일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막말을 한 것에 대해서도 시간 차 없이 반응했다.
“보통의 경우도 그렇게 말해선 안 되는 게 사람의 도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김씨의 다음과 같은 말 때문에 홍보수석이 잠시 기분이 상해 그 같이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야매(뒷거래를 뜻하는 일본어 ‘야미’의 오기) 정권 홍보수석이 신부님들을 향해 ‘저 사람들 조국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내 조국은 불법 부정선거가 자행되고, 그렇게 집권한 자들이 뻔뻔스럽게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후안무치도 유분수지,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들이 반성은커녕 큰소리치니 불법 정권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하긴 애비도 불법으로 집권했으니, 애비나 딸이나.”
4. 박 신부나 김씨의 ‘발언’은 인화성이 있는 게 분명했다. 성냥개비 화력으로 착화를 시도했다. 한데 고맙게도 청와대 비서실 수석이란 분이 발화를 시켜 준 것이다. ‘시골성당’ 신부와 ‘트위터 청년’ 얘기를 승지가 ‘엄중’하게 나서 사안을 키웠다.
5. 박 신부의 발언에 대해 정미경 새누리당 전 의원은 “신부님이 NLL 이 형성된 배경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듯 하다. 아니 그보다 박 신부의 발언의 진심이 무엇이건 간에 홍보수석이 먼저 나설 일은 아니다.
홍보수석이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앞서 나가 버리면 발화를 원하는 측이 되레 청와대가 돼 버리는 꼴 아닌가. ‘엄중’해야 할 수석의 발언 때문에 당장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들끓고 있다. ‘시골성당’ 신부가 한 수 위인 셈이다.
6. 김용민씨 발언에 대해서도 수석이 ‘개념’ 없이 나서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가 야당 대표도 아니고, 그렇다고 북한 김정은도 아닌 마당에 체면 손상해 가며 나서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김씨의 경력, 나이, 직위, 영향력 등 모든 걸 감안할 때 홍보수석의 개입은 청와대 자체를 코미디로 만드는 일이다.
7. ‘후설(喉舌)’이란 말이 있다. ‘목구멍과 혀’라는 뜻인데 조선시대 승정원(요즘의 대통령 비서실)을 가리켜 부르는 단어다. 시경(詩經)에 ‘왕의 명령을 출납하니 왕의 후설이로다’라고 한 데서 나왔다고 한다.
즉, 대통령 비서실의 한마디 한마디는 대통령의 목과 혀라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그 후설이 이처럼 즉각적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져 버린다. 왕이 한마디 했는데 그걸 어떻게 거둬 들이냐는 말이다. 후설에 따라 ‘붕당’이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러니 이 수석은 하수다.
8. 힘 쎈 붕당이 호랑이를 잡는 건 고사하고 고양이나 잡으려 나서는 격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