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프로농구의 ‘오심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의 오심은 지난 2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고양 오리온스와 서울 SK의 경기에서 나왔습니다. 오리온스는 프로농구연맹(KBL)이 오심이었다고 인정한 4쿼터 종료 5분55초 전 포워드 김동욱의 속공 파울, 종료 4분 24초전 가드 이현민의 공격자 파울로 흐름을 내주며 결국 69대 78로 역전패했습니다. KBL 심판위원회가 스스로 오심을 인정했고, 해당 심판들에게는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오리온스는 25일 재경기 요구 거부의 근거가 된 KBL 경기 규칙의 개정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여전히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KBL도 나름대로 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오리온스의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KBL의 ‘오심의 역사’에 오리온스가 항상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건 오심으로 이득을 본 ‘요행의 역사’가 아닌 피해를 당한 ‘눈물의 역사’였고, “왜 자꾸 우리만 참아야 하느냐”는 깊숙한 곳의 억울함이 이번 사건으로 폭발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리온스와 TG의 챔피언결정전 5차전이 열린 2003년 4월 11일은 KBL 역사의 지워버리고 싶은 날일지도 모릅니다. 경기가 진행되는데 시간이 멈춰버린 걸 심판 3명이 모두 모르고 있었던, 어디 가서 ‘프로농구’라고 하기도 민망한 희대의 오심이 일어난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리온스가 76대 70으로 앞선 4쿼터 종료 1분16초 전부터 타이머가 15초 간 멈춘 상태에서 경기가 진행됐고, 오리온스는 78대 78로 동점을 허용하며 연장전에서 97-98로 석패했습니다. 이후 분석 결과 만일 이 15초가 정상적으로 흘렀다면 오리온스가 78대 76으로 승리했다는 결론이 나왔고, KBL은 잘못을 인정하고 재경기 선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오리온스는 대승적 차원에서 그냥 패배를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오리온스 정태호 단장은 재경기 포기를 전하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렸고, 오리온스의 ‘대인배 행보’에 많은 농구팬과 언론이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오리온스는 1년 후 다시 ‘뒤통수’를 맞습니다.
2004년 3월 18일 오리온스와 LG의 6강 플레이오프 3차전. 심판은 승부처인 4쿼터 종료 12.5초 전 오리온스 바비 레이저의 팁인을 ‘실린더룰(링 위에 가상의 실린더를 그려놓고 그 안의 공은 건드릴 수 없다는 규칙)’ 위반으로 판정했습니다. 이 때는 오리온스가 3점을 앞선 상황이라 이 슛이 정상 판정돼 득점으로 인정됐다면 오리온스가 이기는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오심으로 노카운트 판정됐고, 오리온스는 종료 직전 강동희에게 동점 3점포를 얻어맞으며 연장에서 81-84로 졌습니다.
오리온스는 1년 전 ‘사라진 15초’ 사건을 넘어가준 터라 재경기를 요청하며 강경하게 나왔습니다. 하지만 KBL은 이를 거부하고 해당 심판들에게 중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렇게 두 시즌 연달아 입은 상처가 겨우 아물어 갈 때쯤, 오리온스는 또 ‘희생양’이 됩니다.
2007년 1월 14일 오리온스와 모비스의 경기. 4쿼터 종료 1.2초가 남은 상황에서 모비스의 가드 양동근이 성공시킨 레이업이 버저비터로 인정돼 모비스가 87대 85로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경기 후 종료 부저가 울린 상황에서도 공이 양동근의 손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오리온스는 재경기를 요청했다가 이틀 뒤 취소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빗대 얘기해보면 쉬울 것 같습니다.
어떤 잘못을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미안하다. 일부러 그럴 의도는 아니었으니 이번엔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고 말합니다. 한 번이면 상대방도 그럴 수도 있다며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똑같은 잘못을 두 번, 세 번 되풀이하면서 똑같은 말을 합니다. 이해하고 참아주던 상대방이 안 되겠다 싶어 나름의 요구사항을 얘기하려고 하면 차분히 듣기는커녕 “왜 나를 오해하느냐”며 따집니다.
이런 사람하고 상대하고 싶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잘못한 사람이 해야 할 행동과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KBL이 계속 상대하고 싶은 ‘쿨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