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국무총리 “일본은 쪽발이 아니다. 해동제국이다""

"[전정희의 시사소설] 국무총리 “일본은 쪽발이 아니다. 해동제국이다""

기사승인 2013-11-26 10:58:01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 국무총리 “쪽발이 아니다. 해동제국이다(1)”]

서슬 파랗던 대검 부장, 늙어 입만 살아

“영감, 오늘 제가 귀한 그림책 하나 보여 드리려고 준비했습니다.”

박설례가 주릿대 치마를 앞으로 끌어 올리며 일어섰다. 얹은머리 뒤통수가 예뻤다. 귀도 훤히 드러나 배냇솜털이 남아 있는 듯도 했다.

‘저것이 미천하게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딱 안방마님감 아닌가. 어디 하나 야무지지 않은 것이 없어.’

영의정(국무총리 격) 정하동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침을 꼴깍댔다. 설례는 그 무렵 유행 복식인 자색 주릿대 치마에 분홍빛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한데 주릿대 치마는 뒤태가 드러나는 옷이어서 두어 달 전 조정에서 색기 흐르는 옷이라며 규제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치마를 입는 이들이 대개 첩이나 기녀였으므로 양반들 가운데 은근히 규제를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하동 또한 규제하자는 유림의 소를 마땅치 않게 여겼다.

“대감, 치마 겉자락이 반 바퀴 쯤 배 위에 닿도록 끌어 올린다고 양반네들의 체면이 손상된답니까? 끌어 당겨 입다 보면 속옷 살짝 드러나고 그 모양이 이쁘지 않습니까? 양반님네들 헛기침 하며 속옷 아래 드러난 발목 침 질질 흘리며 훔쳐보면서 정작 요사스럽다고 하다니요. 뒤에선 온갖 해괴한 체위를 다 요구하는 그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조선의 양반들은 너무나 엉큼합니다. 고상한척 혼자 다하고 종년이나 건드리고 나 몰라라 합니다.”

정하동은 괜히 물었다 싶었다. 그가 수해 전 전라도 나주 수령으로 있을 때 비녀 구월이를 건드렸다가 임신한 것이 적발돼 파직 위기까지 몰린 적이 있었다. 구월이가 만삭이 되어 동헌 뒷마당 우물에 몸을 던져 죽었기에 망정이지 그리 되지 않았다면 꼼짝 없이 남인(야당)의 탄핵에 몰려 지리산 자락 평사리로 낙향 할뻔 하였다.

어쨌든 주릿대 치마 규제는 “나라가 여인네 속옷 단속까지 하느냐”는 주모와 기녀 등 여인네들의 거센 입심에 밀려 시행되지 못했다.

설례는 사방탁자 서책 사이에서 한 권을 끄집어냈다. 예전 같았으면 허리를 숙인 설례의 엉덩이만 보고도 그대로 달려들어 치마끈을 풀었겠으나 늙고 쇠하여 숟가락 들기도 어려워지자 모든 욕망이 입으로 쏠려 군소리가 많아진 정하동이었다.

“어이, 자네 그 방뎅이 좀 더 뒤로 빼보소. 흠벅지네.”

정하동이 끙 소리를 내며 연신 입맛을 다셨다.

뒤돌아선 설례는 서책을 그의 코앞에 내밀었다.

“이것이 왜 놈 춘화유.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왜놈들 것이니 보고 기운 좀 내시우.”

“어허 이년이 샛서방이라도 생긴 게야. 왜 이리 속 뒤집는 소리는 하는 게야.”

“샛서방 뒀다 무슨 경을 치려고 그러것수. 이년 본부인도 아니면서 평생 수절할 생각하니 한 숨이 절루 나우.”

정하동은 왜나라 것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예전 정력 왕성했을 때 설례가 ‘왜놈, 왜놈’하면 버럭 화를 내며 “무식한 것 같으니라구, 왜놈이 뭐냐? 해동제국이야. 해동제국!”이라고며 언성을 높였다.

“대감, 훈도시(남자의 국소를 가리는데 쓰는 아주 좁고 긴 천으로 일본 남자들의 옛 속옷)차고 남해안 곳곳에 출몰해 조선 아녀자 겁탈하는 것들인데 무슨 해동제국입니까. 참 속 없으십니다.”

설례가 앞 뒤 안가리고 이런 말을 했다가 정하동이 “에라 이 무식한 년아!”라며 던진 목침에 맞아 이마가 터진 적이 있었다. 그는 그 무렵 형조 참판(대검찰청 부장 격)을 하고 있었는데 그 권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가 육조 거리를 나서 안국방 집으로 향할 때면 그 서슬에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서책을 받아든 정하동은 한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조선 춘화와 달리 남근이 두 배는 컸다.

‘역시, 세련됐어. 커야지 암. 그것이 작으면 재미가 있나.’

사실 정하동은 어려서 항거왜인 속에 커서 왜놈 문화에 익숙했다. 그의 아버지 정 역관은 개항장 가배량(지금의 고성군)에서 왜관 무역을 통해 큰 돈을 벌었다. 하동 쌀과 콩을 가배량으로 가져와 이문을 남겼다. 정하동은 몽정을 시작하면서 왜놈 춘화를 몰래 몰래 보았고 그때마다 성인이 되면 벚꽃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서 왜년 안아보겠다고 다짐했다. 계속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가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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