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애국보수 김백선, 집권세력에 토사구팽 당하다

[전정희의 시사소설] 애국보수 김백선, 집권세력에 토사구팽 당하다

기사승인 2013-12-02 10:27:00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국무총리, “일본은 쪽발이 아니다. 해동제국이다”(4)

그 시각. 유인석을 창의대장으로 한 제천 의병은 충주성 전투에서 용맹함을 보여준 후 내분을 겪고 있었다. 가흥나루(충북 충주시 가금면 가흥리) 전투에서 참패한 후 지도부 간에 책임을 놓고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었던 것.

가흥나루는 수운(水運) 의존도가 높은 조선에서 세미를 모으는 조창으로 교통 및 군사 요충지였다. 이에 따라 일본은 동학당을 막는다는 이유로 비밀리에 가흥 조창에 일본군을 주둔시켰다.

“300명의 의병이 40여명의 일본군 하나 때려잡지 못한 건 신지수, 이범직 부대가 제대로 매복과 협공을 못했기 때문 아니오? 진격 명령을 내렸는데도 소리만 쳤지 포루로 달려드는 이가 하나 없는 군대가 뭔 군대요? 그것도 전열에 앞서 나가야할 양반님네들은 죄다 대열 끝에서 달려드는 척 시늉만 내고 말이오.”

“뭐라? 시늉?”

신지수가 발끈했다.

“이놈이 반상이 무너졌다고 함부로 막말을 하는구나. 너 또한 단발령을 속으로 즐기는 것 아니냐?어디 감히 양민 주제에 사대부를 농락하려 들어. 네놈이 동학난 때 포수대로 용맹 좀 떨쳤다고 양반이라도 된 줄 아느냐? 상것은 천하가 뒤집어 져도 상것일 뿐이야!”

그러자 이범직도 신지수를 거들었다.

“네가 이끄는 의병이야 농투성이여서 달리고, 찌르는데 이골이 났겠지만 이쪽 의병들이야 대개가 사서오경만 읽던 분들이다. 따라서 전법(戰法)에 통달해 너희를 지휘할 위치 아니냐? 한데도 지체 높은 양반보고 천것의 사병이나 하라니! 강상의 도가 이리 무너졌더냐?”

김백선은 팔척장신이었다. 얼굴도 험상궂었다. 노기가 서려 사천왕상이 됐다.

“이런 시러배놈들을 봤나! 왜적과 목숨 걸고 싸우는데도 반상이 있다더냐? 내 참 더러워서. 상것들 목숨은 두개라도 된 줄 아느냐!”

분을 참지 못한 김백선이 창을 들어 막사 안에서 광목천에 휘두르자 유인석 신지수 이범직 등 지도부가 동시에 몸을 낮췄다. 창끝은 막사를 대각선으로 그었다. 막사 밖에서 지도부의 언쟁을 듣던 하급 참령들이 후다닥 흩어졌다. 칼바람이 막사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날 오후. 불에 탄 충주읍성(충주시 성내동) 군기고 잔해 앞에 김백선이 포박된 채 꿇려 있었다. 상투가 잘려 산발한 채였다.

유인석은 융복 차림이었다. 그는 의병에 쫓겨 달아난 충주목사 의자에 앉아 호통을 쳤다.

“군이 제 아무리 명령에 의한 집단이라 하여도, 조선은 반상과 문무가 분명한 성리학의 나라니라. 존화양이를 우리가 괜히 외치겠느냐? 따라서 반상과 문무의 엄격함을 어긴 너를 군율에 의해 처단하지 않으면 우리의 척양(斥洋) 의지가 급격히 흐트러지는바 아픈 살 도려내는 심정으로 효수를 결정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심정을 알아주기 바란다.”

동학농민전쟁 때 지평(현 양평)에서 포수대를 조직, 동학무리를 토벌했던 김백선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 지평 토벌 때에도 김백선은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단지 문벌이 변변치 않다 하여 함께 토벌대로 나섰던 사대부 맹영재가 그 공로로 지평군수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조선말 지독한 왕당파(요즘 해병전우회 격)의 한사람인 의병대장 김백선은 그렇게 신분의 벽에 막혀 이용만 당하고 일본군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슬로 사라진 것이다. 계속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시사소설가 jhjeon@kmib.co.kr

<국무총리 “일본은 쪽발이 아니다. 해동제국이다” 1~2편은 아래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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