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일본 춘화보는 국무총리 전 상서…"의병을 토벌·소탕했다니요?""

"[전정희의 시사소설] 일본 춘화보는 국무총리 전 상서…"의병을 토벌·소탕했다니요?""

기사승인 2013-12-03 10:59:00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국무총리 “일본은 쪽발이 아니다. 해동제국이다(5·끝)”

다음날. 선유사 장기렴이 이끄는 토벌대가 일본헌병대를 양평 두물머리에서 맞았다. 그 수가 2000명이었다. 그들이 중참을 마치고 일어설 즈음 전령 하나가 지평 쪽에서 달려왔다.

“선유사 나으리. 반란군이 내분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하옵니다. 김백선이가 항명을 이유로 효수됐다는 첩보이옵니다. 유인석과 그 도당은 제천성으로 들어가 진을 치고 있사옵니다.”

참령 장기렴은 진퇴를 고민했다. 그가 아는 의암 유인석은 지행일치의 유학자였다. 유인석이 이끄는 의병을 토벌한다는 것은 곧 조선의 보수적 사상가를 죽이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수구 꼴통)과는 근본 자체가 다른 선비가 유인석이었다.

‘복수보형(復讐保形 : 抗日守舊)의 기치를 내건 그는 비록 김백선을 처단할 만큼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으나 패망으로 치닫고 있는 조선의 등불 같은 존재였다. 그가 토왜(土倭) 방을 붙이고 의병을 모아 충주 제천 단양 영원 평창 등 중부지역 친일 수령들을 처단해 나갈 때, 고종이 밀지를 보내 작금의 상황을 애석해 했다는 얘기마저 돌았다.

그러나 장기렴의 손엔 친일파 영의정(내부대신·국무총리) 정하동이 ‘토벌령’의 쥐어져 있었다.

‘작금의 중원지방 반란은 해동제국과의 선린을 방해하려는 양민 및 상것들의 난동이며, 이 주모자는 유인석이니 그들을 토벌하고 괴수 유인석은 항일죄로 효수하라.’

결국 관군 2000여명과 다케다가 이끄는 일본헌병대 2000명은 지평을 지나 제천성으로 향했다. 그 소식은 살처럼 빨리 제천성 의병들 귀에 들어갔고 불과 하룻밤이 지나자 1000여명이었던 의병이 300명으로 줄었다. 모두 줄행랑 친 것이다.

그리고 제천성에 토벌대가 닿았을 때 성문은 닫혀 있었고 성 안에는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토왜’라고 쓴 군기만 포루 위에 흩날리고 있었다. 무혈입성이었다.

장기렴과 다케다가 나란히 성문 앞에 이르자 홍예석 아래 성문에 격문이 붙어 있었다. 유인석의 초서체였다.

‘친일 내부대신 정하동은 만고의 역적이로니 너를 처단치 못함을 심히 원통해 하노라. 네 일찍이 지리산 자락서 태어나 친일 아비 역관을 통해 왜색에 물들더니 그들의 물적 지원에 힘입어 뇌물로 승승장구하였고, 끝내 민씨일족의 세도정치에 기대어 내부대신이 됨으로 너로 인해 나라가 망국의 길로 가는구나.

네가 근자에 삼전도의 굴욕보다 더한 강화도조약이 고종 임금의 긍정적 인식으로 체결됐다 하고, 네가 수탈해 왜놈에게 바친 쌀을 수출했다 하고, 가배량 등 왜관에 들어오는 왜놈 사채를 조선으로의 자본진출이라 하고, 끝내 우리 의병 봉기마저 소탕하고 토벌했다고 하는 천박한 역사 인식을 가진 바, 그것이 과연 조선의 재상으로서 할 소리인가? 천자문을 막 뗀 아이도 너와 같은 소리를 아니할 것이다. 네가 과연 왜놈 종자가 아니고서야 백성 앞에서 망언이 가당키나 한가.

나와 우리 의병은 오늘 네가 끌어들인 왜놈 헌병대에 의해 눈물을 머금고 조선을 떠나간다. 하지만 서간도(만주)에서 끝까지 친일세력인 너희와 싸워 국권을 회복할 것이다. 너희의 그같은 친일 행위는 너희 손에 죽은 항일 의병의 저주에 너희 가계 묻힐 때마다 수렴(무덤 안에 물이 괴어 송장이 해를 입는 일)을 입으리니 내 반드시 그 끝을 보고 말리라.

오호, 내 오늘 원통하여 체모를 깎아 양서와 중원지방에 묻고 조국을 떠나노라. 토왜 못한 한이 온 백성에 미치어 조선이 다시 서기를 바라며 우리는 백두대간을 지나 서간도로 향하노라. 정하동, 이완용 등 친일 수구세력을 청산할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을 곡하노라.’


열흘 뒤. 첩 박설례의 안방에서 유인석의 격서를 받아든 정하동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중늙은이가 상것들과 패거리 짓더니 일찍이 노망을 했구먼. 뭐라 수렴? 강원도 감자바위 주제에 글깨나 읽었다고 끝까지 조정을 능멸하다니. 양서와 중원은 반란의 종자들이야. 미우라에게 요청해 헌병대 주둔 병력을 늘려야 겠어.’

정하동이 그런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 설례가 주릿대 치마를 걷어 올리며 들어섰다.

“아니 영감, 뭔데 그리 눈을 떼지 못하고 보우? 왜놈 춘화라도 새로 입수한 게유? 영감은 세상 돌아가는 꼴 몰라서 좋겠수. 세상 사람들이 영감을 보고 뭐라 하는 줄도 모르고 왜놈 춘화에나 빠져 있으니. 에구, 세상 어찌 돌아가는지…의병끼리도 상것이라고 죽였다니 이제 조선은 고자의 나라가 되려나 보우.”

설례의 잔소리에 정하동은 움찔하여 유인석의 격서로 사타구니를 가리며 자신의 불알을 만져 보았다. 낙지대가리처럼 축 쳐진 불알이 애달피 붙어 있듯 했다. 그해가 병신년이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가 jhjeon@kmib.co.kr

<국무총리 “일본은 쪽발이 아니다. 해동제국이다” 1~2편은 아래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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