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민주당은 감사(敢死·용맹한 죽음)를 택하라!(1) - 결사대 감사의용단의 탄생
12월 초였다. 해풍이 세지는 않았으나 하늘이 어두웠다. 새벽 무렵만 하더라도 맑던 하늘은 흑산도 쪽에서 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어두워졌다. 금세 눈이라도 올 기세였다.
나철은 초가삼간 사랑방에서 기침했다. 군불이 시원찮았던지 오들오들 떨며 웅크려 잤다. 몸이 천근같았다. 두 손바닥을 비빈 그는 그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차가웠던 피부가 마찰열에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10년이라…10년…. 사해가 입헌군주제로 나아가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데 조선만 깊은 잠을 자는구나. 무능한 왕이 세상 돌아가는 줄 모르고 구중궁궐에 갇혀 이완용과 같은 간신에 놀아나다니…개화파라는 것들도 머릿속에 먹물만 들어 뭘 개화해야 하는지 모르고 사대부의 의(義)만 논하는구나.’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시중드는 석개가 문고리를 흔들었다. 유배지 지도의 안집 어린 처녀였다.
“나리, 들어가도 될지요.”
“들어오너라.”
석개는 무명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있었다. 석개가 문을 열자 이엉을 인 대문 너머 솔섬이 보였다.
“눈이 오려나….”
“나리 눈이 올 것 같아라우. 증도 소금 냄새가 나지 않은 걸 봐서 분명 그렇그만유.”
“허허 똘똘하구나. 그래 네 코는 소금 냄새도 맡느냐?”
“그람유. 해풍이 증도 쪽에서 불어야 날이 좋은디 오늘은 아니구만유.”
그러면서 석개는 목대야에 담긴 뜨거운 물을 방바닥에 놓았다.
“이럴 것 없다. 내가 나가 세수를 할 것이니 내일부터 필히 그러지 말거라.”
“아녀라우. 지체 높은 분이 마당에 나가 우찌 세수를 한당가요. 절대 안 될 일이구만유.”
조선은 석개가 얘기하는 데로 딱 거기 머물고 있었다. 개국 이래 지금까지 양반이란 자들이 제 손으로 세숫물 하나 떠 씻지 아니한 채 수백 년을 살았다. 자고 일어나면 죽은 자에 대한 예를 차리느라 산 자들이 죽어나고 있었다. 효종 10년(1659) 인조의 계비 조대비 상례를 두고 남인과 서인(지금의 여야) 간에 벌어진 복상 논쟁이 조선의 본질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250여년이 지났어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칠삭둥이 고종을 폐하고 근대적 정부를 세우지 않는 한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농민 전봉준이 사대부 김옥균을 이긴 것이다. 그것이 조선이 나갈 바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철은 왕을 폐하기 위한 무장 투쟁을 꾀했다. 역모였다. 그러나 그 무리는 결코 자신들의 최종의 적이 고종임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선 오적을 제거해야 풍전등화의 나라가 설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나철의 결사대 감사의용단(敢死義勇團)은 오적을 꼽았다.
내부대신 김동필(국무총리 격)
군부대신 조중현(국가정보원장)
법부대신 이재극(법무부장관)
학부대신 이완용(교육부장관)
참정대신 박제순(대통령 수석비서)
나철은 목대야를 들고 일어났다.
“석개야, 너는 다모(茶母)가 되거라. 언문도 배우고, 한학도 배우거라. 내 가르쳐 주마.”
‘한양이 불원천리이나 내 유배만 끝나면 반드시 네 놈들을 처단하리라. 조선은 더는 천자의 나라가 아니며, 더는 국왕의 나라가 아니다. 백성을 노예로 삼는 국왕이 어찌 국왕이며, 백성의 원성을 힘삼아 싸우지 않고 잇속 챙기는 개화파(야당)가 어찌 열린 자들이더냐. 감사(敢死·용맹한 죽음)만이 이 나라가 사는 일이로다.’
나철은 세수를 마치고 허리를 펴고 주먹을 쥐었다. 무안반도 바다 건너 지도(智島) 유배지의 아침은 여전히 어두웠다. 눈이 저 멀리 갯벌부터 내리고 있었다. 계속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가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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