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계몽주의 야당, 약탈당하는 아내에게 슬기롭게 피하라?

[전정희의 시사소설] 계몽주의 야당, 약탈당하는 아내에게 슬기롭게 피하라?

기사승인 2013-12-15 17:46:01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민주당은 용맹한 죽음을 택하라!(2)- 계몽주의 야당, 약탈당하는 아내에게 슬기롭게 피하라?



석개는 영민한 아이였다. 나철이 언문을 가르친 지 1개월 만에 글을 읽고 썼다.

“나리, 제가 한 말이 이렇게 재미난 것이었습니까?”

“어허허. 석개가 참으로 똑똑하구나. 어찌 그리 용하더냐. 이걸 한 번 읽어 보거라. 내가 눈이 침침해 읽을 수가 없구나.”

나철은 독립신문을 내밀었다. 깨알을 부어놓은 듯 촘촘한 한글이 흰 종이 위에 수북했다.

“‘우리 신문은…빈, 부, 귀천…에’”

석개는 작은 입을 오무려 더듬더듬 읽어나갔다.

‘우리 신문은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이 신문을 보고 외국의 물정과 국내 사정을 알게 하려는 뜻이니 남녀노소 상하귀천 간에 우리 신문을 격일로 몇 달간 보면 새 지식과 새 학문이 생길 것을 미리 아노라’(독립신문 창간사)

“그만 하면 됐다. 앞으로도 더 정진하여 물 흐르듯이 읽거라. 내가 얼마든지 책을 줄 테니 공부를 게을리 말아야 한다.”

석개는 더듬긴 하나 정확히 읽어 나갔다. 나철은 자신이 후학을 위해 간략히 썼던 ‘조선역사’ 두루마리본을 석개 앞에 내놨다. 신라기, 고려기, 본조기(조선) 등으로 나뉜 그의 역사두루마리는 본조기에 이르러 국왕의 역년과 간지를 함께 표시해 두었다.

“근디 나리, 우리 아버지가 목포에 갔다가 들었다고 하는 디라. 나라가 왜 놈들 손에 망하게 생겼다고 하더구먼유. 나주평야 쌀이 전부 철선에 실려 왜놈에게 간다는디유. 쌀을 빼앗긴 농민이 의병을 일으켜 관군에게 목숨을 잃었다고도 하구요.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것 구먼유.”

나철은 끙 소리를 내며 허공을 바라다보았다. 일본의 마수가 지방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었다. 삼남 곡창은 토지측량을 한다는 명분 하에 약탈이 진행되어 야금야금 일본 지주들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일본 토지측량회사(훗날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지방 관아 수령을 앞세워 토지 측량을 해주고, 재편된 농토를 통해 무등록된 나라 땅을 잠식해 나갔다. 그러면서 수령들의 입을 막기 위해 뇌물을 주었고, 신원보증서를 써주며 수령 자식의 일본 유학을 권했다. 친일파 육성을 위한 의도적 유학 권유였다.

나철이 유배 중인 지도는 비록 섬이긴 하나 쌀농사를 지을 만큼 넓었다. 그곳에도 측량기사들이 설치고 다녔다. 그들이 가는 곳엔 벙거지를 쓴 나졸들이 따랐다. 동네 아이들이 측량기기가 신기한 듯 와와 소리를 지르며 따라다녔다.

나철이 유배를 온지도 5개월이 흘렀다. 그간 석개는 조선통사도 뗐다. 글이 들어가자 석개의 얼굴은 어딘지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걸음걸이도 호들갑스럽지 않고 점잖았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건 나철에게 세숫물을 단 한 번도 빼지 않고 바치는 일이었다.

“네 고집도 대단하구나”하고 포기했던 나철이었다.

그런데 석개의 가슴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등잔불 아래 책을 읽고 있는 나철의 그림자라도 보기 위해 공연히 마당을 오가곤 했던 것이다. 그를 대할 때면 가슴이 벌렁거렸다.

그녀는 세필을 들어 마음을 진정시켰다.

‘가물 거리는 등잔불에 님 그림자 흔들리네. 창에 달빛이 하얗게 들어가나 내 마음은 들어가지 못하니 이 괴로운 심사 누구에게 하소연 하랴’

석개는 이렇게 적어 나가다 제 설움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마르지도 않은 먹글씨에 떨어진 눈물이 번졌다. 석개의 상사는 날이 갈수록 커졌다.

어느 날이었다. 무안감리를 지냈던 김성규가 나철을 찾아왔다. 단발하고 흰 두루마리에 걸친 김성규는 잠자리 난경을 끼고 있었다.

석개가 그를 나철에게 안내하자 반갑게 껴안는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향반으로 각기 전라도 보성과 장성의 지주 출신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바람 앞에 촛불 신세인 조선에 대한 시각이 달랐다. 나철은 자신의 땅을 팔아 4만냥을 마련 ‘오적’ 제거에 앞장서다 잡혀 이곳까지 유배 온 강경파였다. 반면 김성규는 대한제국 개화 관료 출신으로 계몽운동에 힘을 쏟았다. 그는 대한자강회(민주당 격) 호남지회장을 맡아 식산흥업과 교육진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두 사람은 무거운 대화를 나눴다. 석개는 툇마루에서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이보게. 학부대신 이완용이 ‘새역사교본’(새역사교과서 격)을 찍어 서당에 뿌리고 있네. 일본에서 인쇄되어 제물포로 들어온 교본이네. 임나일본부설 등을 미화하고, 강화도조약이 이뤄짐으로써 조선이 근대화의 길로 가고 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책이네. 내부대신, 군부대신 등이 총 동원되어 일본의 영도 아래서만 조선이 청나라와 러시아를 몰아내고 자주독립을 할 수 있다고 난리를 치네. 새역사교본을 통해 역사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순종 임금을 협박한단 말일세.”

“천추의 한이네. 네 그 오적들을 주살하지 못하고 이리 잡혔으니…”

1907년 3월. 나철의 감사의용단은 폭탄이 장치된 선물 상자를 을사오적에 보냈으나 이를 눈치 챈 박제순이 이완용 등에게 연락, 주살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야 말로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일이라며 ‘참간장(斬奸狀·간악한 사람을 죽일 때 그 까닭을 적은 글)’까지 함께 보낸 터였다.

“보시게. 을사오적들은 지금 합방을 위해 민중의 뜻을 묻는 근대적 조사를 한다는 명분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네. 조선 민중 열에 아홉이 합방을 원한다는 결과로 몰아가고 있어. 군부대신 조중현이가 군인을 동원, 가가호호 다니며 지장을 받는다는 게야. 백성 열에 일곱은 언문도 모르니 조중현의 여론조작에 놀아나네. 그러니 백성을 계몽하지 않으면 조선은 곧 국권을 빼앗길 걸세. 자네의 애국을 위한 심정은 알겠네만, 지금은 길게 보고 민중 계몽에 앞장서야 하네. 개화파들은 다 조선 민중 계몽의 길로 들어섰네.”

“그런 얘기 하려면 돌아가게. 개화파들은 대체 정신이 있는 갠가? 도적이 안방에 들어와 노략질을 일삼는데 자식새끼들 모아 놓고 도적맞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라고? 몽둥이 들고 맞서야 할 판에 무슨 널린 시래기 같은 소리인가. 여론조작이 공표되면 곧바로 병합 아닌가? 이러다 제 아내 겁간 당해도 슬기롭게 피하는 법 가르치겠네 그려.”

“어허, 이 사람 비유도 참…”

“그리 모르겠는가. 여론을 조작해 나라를 팔아먹으려 하는데 개화파들은 웬 한가한 계몽인가. 개화파가 광화문 앞에서 상소(노숙투쟁)한다고 오적들이 눈 하나 꼼짝 할 것 같은가?그 시간에 힘을 합쳐 무장 투쟁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사대부 의식으로 그저 붓이나 쥐고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이들이 개화파들이네. 그들 수는 교활한 이완용이가 다 읽고 있네. 상대가 안돼. 원 좌당이 좌당다워야지.”

김상규는 나철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나철과 그의 항일 비밀결사를 대한자강회로 끌어 들이려는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나철이 동의만 하면 그를 자신이 설립한 장성 선의의숙 교장으로 영입해 친구의 목숨을 보호하려 했던 김상규였다. 계속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가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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