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벽보, 대학가 움직임 심상치 않다… 파문 일파만파, 저항-감성팔이 논란

‘안녕들 하십니까’ 벽보, 대학가 움직임 심상치 않다… 파문 일파만파, 저항-감성팔이 논란

기사승인 2013-12-16 09:08:00

[쿠키 사회]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한 장의 대자보에 대학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시작은 철도노조 파업, 밀양 송전탑 충돌 등 사회 이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은 평범한 대자보였다. 그러나 이 취지에 동감하는 대자보가 전국 대학으로 번졌고 같은 제목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10만명 이상이 찾아와 ‘좋아요’를 눌렀다. 글의 취지를 반박하는 대자보도 대학 캠퍼스에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지난 10일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처음 대자보가 등장한 지 닷새 만에 벌어진 풍경이다.

대학가는 지난 대선에서 극심한 보·혁 갈등을 겪은 뒤 대부분의 사회 이슈에 냉소와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예사로운 ‘안부’를 묻는 이 대자보에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는 이유는 뭘까.

◇‘안녕들 하십니까’ 급속 확산=“안녕하십니까?!”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 14일 오후 3시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 대학생 200여명이 모여들었다. 고려대는 물론 서강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에서 모인 학생들은 코레일 파업, 경제 민주화, 국정원 선거 개입 논란 등 다양한 사회 현안에 목소리를 높였다. 대자보를 처음 쓴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27)씨도 이날 집회에 동참했다.

그는 대자보에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4213명이 직위해제되고(현재는 7929명), 밀양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는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고 썼다. 13일엔 태평양 건너 미국 UC버클리 캠퍼스에서, 14일에는 경기도 성남 효성고등학교에서도 각각 ‘안녕들 하십니까’에 영향 받은 대자보가 나붙었다.

12일 열린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15일 오후 7시 현재 17만명을 돌파했다. 충북대 등 일부 대학에서는 ‘저는 안녕합니다’라는 제목의 반박 대자보도 잇따라 게시됐다.

◇‘좀비사회’ 저항 vs ‘감성팔이’ 불과=진보·보수 성향을 막론하고 관심이 쏟아지는 배경에는 대학생들이 직면한 불투명한 미래와 무한 경쟁의 피로가 놓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취업난과 과도한 경쟁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서로 안부를 묻는 형태로 문제의식을 표출한 것으로 본다”며 “청년들이 눈앞에 닥친 문제가 사회의 안녕과 밀접한 문제라는 걸 깨닫고 반문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대 심리학과 신성만 교수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혼자서만 안녕할 수 없는 존재”라며 “전체가 서로에게 소리 없이 무관심해지는 ‘좀비 사회’에 포함되지 않으려는 대학가의 몸부림이 반어법적 제목의 대자보로 표출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가시적인 억압보다 ‘좀비 사회’가 훨씬 더 무섭다”라며 “사회가 이들의 자연스러운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거 대자보는 학생회 등이 조직적으로 게시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영 08 현우’라는 개인이 나섰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계명대 사회학과 최종렬 교수는 “평범한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써내려 간 대자보의 진정성이 대학생 사이의 동료의식을 일깨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감성팔이’라는 비판도 있다. 주요 사회 이슈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감성적인 표현들로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보수단체인 자유대학생연합은 이날 “요즘 대학가에 퍼지는 선동적인 대자보에 반대하는 글을 올릴 대학생을 모집한다”고 글을 올렸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 박경신 교수는 “대자보의 가치를 실제보다 높게, 또는 감성팔이라며 낮게 평가할 것 없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해 사태를 바라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자보’, 전통적 공론장의 복원인가=인터넷이 아닌 대자보에서 논란이 촉발된 점도 관심을 끈다. 전문가들은 언론이 공론의 장 기능을 다하지 못한 데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대학생들이 전통적인 공론의 장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구대 언론학과 김성해 교수는 “인터넷 게시판의 결정적 단점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폐쇄적 공론의 장이라는 점”이라며 “최근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등으로 이마저도 신뢰를 잃게 되면서 새로운 돌파구로 대두된 것이 대자보”라고 전했다. 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는 “대자보 앞에서 옆 사람과 바로 토론을 벌일 수 있어 오프라인 미디어가 가지는 장점도 있다”고 봤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조성은 박세환 기자 suminism@kmib.co.kr
김상기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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