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습니다. 한국농구연맹(KBL)이 16일 ‘고의 충돌’ 파문의 장본인인 애런 헤인즈(32·서울 SK·오른쪽 사진)에게 2경기 출장정지, 500만원 벌금이라는 ‘징계 같지도 않은’ 징계를 내리는데 그쳤습니다. KBL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교훈’을 우회적으로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번 헤인즈의 징계 내용과 가장 많이 비교되고 있는 국내 사례는 2002년 ‘최명도(당시 SK 빅스·현 구리 KDB 위너스 코치)-김승현(당시 동양 오리온스·현 서울 삼성)’과 2008년 ‘김성철(당시 인천 전자랜드·현 안양 KGC 코치)-기승호(창원 LG)’ 사건인데요.
일단 2002년에 최명도(3경기 출장정지, 벌금 500만원)가 김승현(1경기 출장정지, 벌금 100만원)에게 주먹을 휘두른 사건은 이번 헤인즈 파문에 대입할만한 사례가 아닙니다.
당시 두 선수는 리바운드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승현은 최명도가 리바운드한 공을 가로채기하려다 팔꿈치로 최명도의 목을 쳤고, 이에 격분한 최명도가 김승현을 오른주먹으로 가격한 겁니다.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른 최명도가 징계를 받아야하는 건 마땅하지만 무방비 상태로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충격을 가한 이번 사건과는 성질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승현도 ‘구타를 유발했다’는 이유로 출장정지와 벌금 징계를 받았고, 팬들 사이에서는 김승현을 두고 ‘가해자냐, 피해자냐’라는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죠. 경기 후 오히려 김승현이 최명도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하려 했지만 번호를 몰라 문경은(당시 SK 빅스·현 SK 감독)에게 전화를 해 사과했다고 밝혔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습니다.
2008년 김성철이 기승호를 팔꿈치로 가격했던 사건이 이번 사건과 비교할만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일이 KBL이 미약한 상벌규정과 더불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례라고 판단됩니다.
동영상을 찾아보면 당시 김성철의 행위는 헤인즈와 마찬가지로 무방비 상태에 있는 선수를 향한 폭행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성철은 팀이 54 대 71로 크게 뒤진 4쿼터에 같은 팀 서장훈에 대한 도움 수비를 들어가려던 기승호에게 다가와 난데없이 팔꿈치로 얼굴을 강하게 쳤습니다. 충격을 받은 기승호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반칙으로 김성철이 받은 2경기 출장정지에 벌금 300만원의 징계는 이번에 헤인즈가 비슷한 수준의 징계를 받은 결정적 근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NBA의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면 얘기는 틀려집니다.
지난해 4월 LA 레이커스의 메타 월드피스(현 뉴욕 닉스·왼쪽 사진)는 2쿼터에 덩크슛을 성공시킨 후 세리머니를 하며 백코트하는 과정에서 상대 팀인 오클라호마 시티의 제임스 하든(현 휴스턴 로케츠)과 부딪히자 뿌리치듯 한 동작으로 그의 얼굴을 팔꿈치로 쳤습니다.
NBA는 월드피스에 대해 7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습니다. 7경기 출장정지는 NBA에서도 팔꿈치 관련 사고 중 역대 최고 징계였고, 국내 같으면 거의 한 라운드(9경기)를 못 뛰는 수준이죠. 여기에 월드피스는 징계 기간 동안 연봉을 받지 못해 약 30만 달러(약 3억5000만원)의 경제적 손해까지 봤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NBA는 커미셔너(최고 책임자)인 데이비스 스턴이 “하든이 뇌진탕으로 고통 받고 있다. 우린 선수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성명까지 발표하며 심각성을 각인시키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KBL 한선교 총재가 솜방망이 처벌에 재가만 내린 후 침묵하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물론 프로 리그에서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2경기 출장정지, 500만원 벌금이 징계의 취지인 ‘또 이랬다가는 정말 큰일 나겠구나’라는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수준인지는 의문이네요. 오히려 ‘거슬리는 녀석 있으면 확실히 조져놓은 다음에 벌금 몇 푼 내고 며칠 푹 쉬면 된다’는 모럴헤저드만 확산시킬까 우려스러울 정도입니다.
최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주자의 홈 충돌 금지를 추진하는 등 ‘선수 안전’이 세계 스포츠계의 중요 이슈입니다.
우리나라 KBL도 ‘경기장 내 난폭행위 및 위협행위 중 선수 간 몸싸움에 대해서는 최소 1경기 이상 출전정지, 제재금 100~300만원을 부과한다’는 상벌 규정의 실효성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