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정보기관, 선거인명부 조작…국민 테러 싹트다

[전정희의 시사소설]정보기관, 선거인명부 조작…국민 테러 싹트다

기사승인 2013-12-27 16:45:00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

민주당은 용맹한 죽음을 택하라!(3)- 정보기관, 선거인명부 조작…국민테러 싹트다

유배지의 밤이 깊었다.

석개는 달빛에 의지해 참빗으로 머리를 빗었다. 앞이마 한 가운데로 빗을 대 좌우로 가른 석개는 귀밑머리를 땋아 세 가닥으로 나눈 뒤 서로 엇걸었다. 석개는 이날 낮 수리잡 물가 창포를 꺾어 끓인 물로 머리를 감았다.

‘왜 이리 진정이 안될까. 나리께서 나를 뭐라 하실까.’

그녀는 땋은머리를 봉긋한 가슴 앞으로 넘겨 홍색 댕기를 맸다. 옥양목 속속곳을 입은 채였다. 그리고 곱게 접어놓은 속치마를 들어 치마조끼에 머리를 들이밀어 입었다. 새끼손톱만한 유두가 옥양목에 닿은 때 저도 모르는 신음이 나왔다. 달빛이 세살문 창에 비쳤고 뒤꼍에선 풀벌레 소리가 나는 밤이었다.

<<봉긋한 가슴에 닿은 댕기>>

석개가 나철의 방 문고리를 잡고 살그머니 밀었을 때 나철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자고 있었다. 무명 속곳을 입은 채였다. 방안에서 책 향이 났다.

석개는 심호흡을 하고 그의 머리맡에 앉아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콧날이 반듯했고, 인중의 골이 분명했다. 짙은 눈썹은 기개가 엿보였다. 사내였다.

석개는 노랑저고리 고름을 조심스레 풀었다. 가슴이 쿵쿵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 갑사향낭에서 사향냄새가 났다. 오늘을 위해 읍내 장에서 어렵게 구한 향낭이었다.

여인의 옷 벗는 소리가 멀리 파도소리와 섞여 퍼졌다. 그럼에도 나철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꿈이라도 꾸는지 연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저고리를 벗자 석개의 좁은 어깨가 달빛에 반짝였다. 석개가 바스락 소리를 내며 모로 자는 나철의 품에 기어들었다. 사내의 가슴에 석개의 코가 닿았을 때 석개의 심장은 터질 듯 뛰었다.

‘소녀의 상사가 눈물이 되어 적삼에 향기를 없앴습니다. 이토록 병 깊은 저를 어찌해야 할런지요. 꽃을 봐도 설운 마음이 되살아나고, 제비 소리를 들어도 묵은 시름이 생깁니다. 밤마다 님 그리는 꿈을 꾸다가 이리 들고 말았습니다.’

석개는 저도 모를 눈물을 사내의 가슴에 흘렸다. 그리고 사발 같은 석개의 가슴이 사내의 가슴에 닿았을 때 사내가 움찔했다.

<<나리의 품에 있고 싶어 봄빛을 이겨냈습니다>>

“그리웠더냐?”

나철이 석개를 살포시 안으며 말했다. 눈을 뜨지 않고 나지막이 말했다.

석개는 부끄러워 더욱 사내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나철의 손이 자연스레 석개의 잘록한 허리에 얹어졌다. 석개의 속곳에 뜨거운 기운이 닿았으나 석개는 들떠 알지 못했다. 정신이 몽롱하였고, 무릉도원에라도 들어선 것처럼 달콤했다.

그렇게 달빛이 세살문에서 기우는데도 두 사람은 서로를 탐하지도, 그렇다고 놓지도 못했다.

“조금만 있다가 일어나거라. 쪽머리 추수리면 네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리, 그저…소녀 나리의 품에 이리 있고 싶어 봄빛을 이겨냈습니다.”

“안다….”

나철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여인의 달작한 입김과 창포향이 사내를 요동치게 했다. 그대로 몸을 눈을 뜨고 몸을 튼다면 두 남녀가 구렁이처럼 뒤엉켜 혼절할 밤이 될 듯싶었다. 석개는 이제 바들바들 떨었다.

“네게 맞는 사내가 반드시 있다. 정드는 것이야 살구꽃 실버들이 긴 둑을 이루었다만 내 너를 물가에 내놓고 싶지 않구나. 나로 인하여 네가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조선의 자객(테러리스트)이다.”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나리께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제게 배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도 감사의용단이 될 것이옵니다.”

<<민심을 조작하는 자들>>

나철은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석개를 안아 앉혔다.

“고맙구나. 내 어린 몸으로 나라를 걱정해주니.”

나철은 석개의 가녀린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검고 검은 석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와락 껴안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또 누르며 말했다.

“나라가 없는데 정인이 있을 수 있겠느냐? 민심을 조작하여 일본놈들 손에 나라를 팔아넘기려는데 원앙 두견처럼 살 수 있겠느냐? 이제 이완용이란 자가 군부대신 조중현(국가정보원장 격)을 움직여 양민들까지 향안(선거인명부 격)에 올려 ‘근대적 향촌 자치안 가부 수결’을 진행하고 있구나. 그 자치안이라는 것이 일본 신탁통치를 말하는 것인데 ‘근대적 향촌 자치안’이라는 이름으로 민심을 조작(국정원 선거개입 격)하는 것이다. 때려죽일 놈들이 아니더냐. 무단으로 향안에 올리고, 군사력을 동원해 가(可)수결을 강요하는 썩은 나라가 되어 버렸으니 이를 어쩔꼬.”

석개는 제가 한 행동이 부끄럽다기 보다 그를 돕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석개가 댓돌을 밟으며 제 방으로 돌아간 것은 새벽이었다. 나철은 석개의 저고리를 입히며 골진 가슴을 보았으나 동요하지 않았다. 석개는 그의 손길이 가슴을 스칠 때 비로소 들뜬 마음을 거두었다. 그의 살이 자신의 가슴을 닿은 것이다. 그것으로 됐다. 석개에게 더 깊은 연정이 쌓인 밤이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가 jhjeon@kmib.co.kr[계속]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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