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시사소설] KTX 수서철도, 정부와 친일재벌이 진보에 내던진 ‘고깃덩어리’

[전정희의 시사소설] KTX 수서철도, 정부와 친일재벌이 진보에 내던진 ‘고깃덩어리’

기사승인 2013-12-29 15:15:00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 500년 익스트림’]

민주당은 용맹한 죽음을 택하라!(4)- KTX 수서철도, 정부와 친일재벌이 진보에 내던진 ‘고깃덩어리’

그해 12월 초. 나철은 순종 즉위에 따른 특사로 유배 해제가 되었다. 10년 유배형이었다.

그는 바로 서울로 올라와 감사의용단(항일 애국 테러조직) 동지 오혁을 만났다. 두 사람은 사동(지금의 인사동) 파전집 사랑방에서 막걸리를 놓고 앉았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이렇게 건강하게 만나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네. 일본 놈들이 남도 지방 쌀수탈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들었네. 목포까지 호남 철도를 놓아 나주평야와 호남평야 소출을 목포와 군산항을 통해 내가겠다는 음모를 꾸미고 있어. 이완용와 조중현이가 그 철도부설 이권에 끼어들어 엄청난 이문을 취하고 있다네. 모리배도 그런 모리배가 없네.”

앞서 그해 7월 이토 히로부미 통감은 고종의 헤이그밀사 파견을 핑계 삼아 고종을 퇴위시킬 것을 이완용과 조중현에게 지시했다. 그들은 이토의 익숙한 사냥개가 되어 고종을 압박했고 고종은 그달 18일 황태자에게 국사를 대리시킨다는 조칙을 발표했다. 순종 즉위였다.

<<철도건설 이권, 친일권력이 친일재벌로 가는 선로>>

“나야 한양과 떨어져 있어 자네처럼 소갈증에 시달리지는 않았네만 자네와 동지들이 기둥뿌리 흔들리는 나라 꼬락서니 지켜보며 얼마나 놀랐겠나? 더구나 나라를 일본 놈들에게 신탁하자는 ‘근대적 향촌 자치안’ 규약을 통과시키면서 향안을 위조하고 신탁통치 찬성 수결(선거 부정 격)을 강요하는데도 울분만 토로할 뿐 나서는 자가 없으니….”

“최근 대한자강회(민주당 격)에서 ‘쌀수탈를 위한 호남철도 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대한문 앞(시청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이끌고 있네. 남궁억이 대한협회를 설립하고, 안창호와 이갑 등이 신민회를 조직하는 등 민중 계몽에 나섰고….”

“대한자강회 회장에 친구인 김성규가 선출됐다는 소식 들었네. 유배지에 찾아왔기에 한 번 만나기도 했고…. 글깨나 읽었다는 이들의 사고가 딱 그 정도일세. 향안 위조를 통한 신탁통치 반대가 본질이어야 하는데, 친일 5적이 내던진 ‘호남철도 부설안’에 휩쓸려 자신들 잇속을 챙기고 있네. 호남 지주들은 벌써 철도 노선을 놓고 세력 싸움을 하고 있네. 나라 망하는 건 관심도 없어. 지금 대한자강회 지도부들이 누군가? 대개 온실 속에서 자란 호남 지주 자식들로 대개 신학문한 이들일세. 그들이 동학당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일세. 지지하는 척 하며 뒤로 빠지는 이들이네. 그들은 판세를 본 후 처신하려는 전형적인 먹물들이네.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어.”

<<“철도 건설을 놓고 지주들은 벌써 잇속 계산하고 있네”>>

“맞는 말이네. 그러니 민중 계몽을 통한 점진적 국력 회복은 굴 밖 이리떼에게 자식새끼 하나 둘씩 내 던지는 꼴이나 다름없네. 불 섶을 등에 지고 다함께 이리떼에게 달려들어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오혁이 말을 마침 즈음 나철이 막사발에 든 막걸리 한 잔을 마시다 말고 밖의 인기척에 귀를 쫑긋했다. 그러더니 술잔을 살그머니 내려놓고 대나무살문을 갑작스레 열어 젖혔다. 홑집을 개조해 외양간과 헛청 등을 없애고 술손님을 받으려 꾸민 구조의 술집이었다. 때문에 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사랑방이 있었기에 누구라도 엿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술집 주인의 업저지(주인집 젖먹이 아이를 업어 주고 종일 놀아주는 아이)였다. 나철은 오른쪽 팔꿈치를 머름에 의지하고 문들 닫았다. 그들은 관아의 요시찰 인물이었다.

주위를 살핀 나철은 개다리소반을 옆으로 밀어 놓더니 오혁에게 귀엣말을 했다.

한참을 듣고 난 오혁이 고개를 주억거렸고, 두 사람은 눈을 맞추며 뭔가를 다짐했다.

<<철도건설 놓고 진보세력 사분오열되다>>

주막을 나선 나철과 오혁은 청진동과 다동을 거쳐 대한문 앞으로 갔다. 이날은 ‘쌀수탈 호남철도 부설 반대 조선민중 2차 궐기대회’가 열렸다. 벌써 수천여명이 대한문 앞으로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흰 물결이 원구단과 대한문 사이를 뒤덮은 것이다.

한데 각반을 차고 완전무장한 일본 헌병이 기마대를 앞세워 골목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근대식 복장을 한 대한제국군도 군중과 대치하는 일선에서 수상하다 싶은 백성을 검문하고 있었다. 군부대신 조중연이 왕실 경호대까지 이끌어 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원구단 기단석에 올라선 한 중년 신사의 대중연설 소리가 두 사람의 귀에 까지 들렸다.

“구습을 타파하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일본이 경부선을 놓은 것은 우리보다 더 많이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양 학문을 외면할 때 저들은 철도 놓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이라도 신학문을 받아들이고 언문을 깨치고, 실업을 장려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든 뒤 저들을 내몰아야 합니다. 저는 철도 건설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 모인 여러분처럼 그것이 쌀수탈을 목적으로 하기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선 대중은 구습을 타파하고 모범 농촌을 건설해야 합니다. 우리 신민회 회원이 되어 주십시오!”

여기저기서 “옳소!”하는 호응이 들렸다. 일부에선 “뭔 소리여, 향촌을 뒤 엎으려는 철도 건설에 찬성한다는 얘기여? 불상놈들이 따로 없네 그려. 너희 같은 놈들이 이완용과 똑같은 매국노여”하는 소리도 들렸다. 조선은 이토와 친일 5적이 던진 고깃덩어리 한 조각을 놓고 개떼처럼 붙어 쌈질하는 꼴이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시사소설가
jhjeon@kmib.co.kr

[계속]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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