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비주류 중진인 유승민 의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국회 국방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29일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KTX 수서발 자회사 설립은 그 정책 자체가 잘못”이라며 “개인적으로 경쟁보다는 수서발 KTX 사업을 코레일에 주고, 대신 박근혜 정부 5년간 코레일 임금 동결, 임직원 5% 감축 등을 제시하는 게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말 경쟁을 시키겠다면, KTX 수서발 자회사에도 다른 적자 노선을 주고 공정한 상황에서 경쟁을 시켜야지, 수서발 KTX 노선은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노선”이라며 “(박근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대통령을 잘못 이해시키고 있다”고 했다. 유 의원은 당·청 관계에 대해 “새누리당 의원들도 고민을 많이 한다”면서 “그런데 저 위쪽(청와대)과 다른 생각을 갖거나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전혀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라고도 했습니다.
2. 올 한 해 ‘공안 과잉’ ‘정치 실종’에 대한 단면이 유 의원의 얘기에 담겨 있습니다.
유 의원의 지적 중 제일 중요한 대목은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잘못된 정책으로 대통령을 잘못 이해시키고 있다”입니다. 대통령이 철도정책이나 철도경영의 디테일까진 다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보고 올라온 내용을 중심으로 판단을 하는 거죠. 당연히 국민 편의를 기준으로 판단할 겁니다.
한데 코레일 사장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철도 파업의 근본적 문제는 철도 노조원에게 있다’ 라는 뉘앙스로 보고해 버리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게 마련입니다. 철도 파업은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식민치하에서도 말이죠.
노조는 철저히 이익집단입니다. 사단법인도 자신들의 이익과 상충될 때 머리 띠 두르고 나오는 세상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권리입니다. 한데 그 권리를 귀족노조 운운해 가며 옥죄어 무장해제 시키려 한다면 참으로 아마추어 정부입니다.
3. 박 대통령이 ‘공기업 개혁’ 입장을 밝혔을 때 국민 대개가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첫 작품이 ‘KTX 수서발 민영화’이고 노조를 상대로 한 일이 될 줄 몰랐습니다. 일의 선후가 잘 못됐다고 봅니다.
공기업 중 직원 평균 연봉이 8000만원인 회사가 있답니다. 또 공공기관 부채가 500조원을 육박한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업무추진비를 펑펑 쓰고, 퇴직금 누진제를 실시하는 등 자기 멋대로 운영해왔죠.
그렇다면 공기업 개혁은 누구를 대상으로 먼저 해야 합니까? 공기업 임원부터 해야죠. 그러면 당연히 노조의 기득권 저항이 수그러듭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화이트 칼라부터 해야 합니다. 코레일과 같은 회사, 즉 철도노조원 대개는 엔지니어입니다. 예를 들어 KBS 등 화이트 칼라 비중이 높은 공기업부터 했다고 가정해 보죠. 그렇게 되면 개혁의 힘은 탄력을 받아 구석구석까지 미칠 겁니다. ‘권력형 공기업’ 개혁 사례를 먼저 보여줘야 합니다.
정부 고위 관료의 자녀 중 철도 기관사가 있거나, 철도승무원 있다는 얘기 못들어 봤습니다. 반대로 국책연구기관이나 국공립 대학엔 적잖을 겁니다.
4. 이 얘기 그만하고 철도노조 파업을 놓고 유 의원 얘기 더해 보죠. 유 의원 얘기가 비합리적이고 몰이성적인가요? 누가 봐도 돈 벌리는 KTX수서발 민영화하고, 나머지 부분을 가지고 흑자내란 얘기죠? 또 이 조그마한 땅 덩이에서 공공성 높은 철도를 자회사로 쪼개 운영할 만큼 시장성이 높나요? 우리와 1대 1 비교가 안되는 일본과 미국 등의 사례를 들이대며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5. 30일 국회가 이 문제와 관련한 소위에 합의했습니다. 정부관계자들이 대통령 앞에서 보고하기 급급해 로드 맵 마련해 놓고 밀어붙이려고만 하지 말고 무엇이 국민, 노조, 정부가 살 수 있는 최적의 수인지를 계산해 내야 합니다. ‘5년간 코레일 임금 동결, 임직원 5% 감축’ 등과 같은 현실적 대안 말입니다.
그런데 유 의원 제안에 국토부는 즉각 반박자료를 내고 “수서발 KTX 자회사는 철로 사용료를 코레일보다 20% 이상 더 내기 때문에 코레일이 불리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했다죠? 그러면 국민은 수서발 철도요금을 20% 이상 더 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시장 논리대로 움직이는 게 민영회사이니까요.
정부가 민영 회사에 압력 넣어 요금 못 올리게 하겠다는 걸 믿어 달라는 게 정부 측 요지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뭐 하러 민영화하나요? 유 의원 말대로 임금 동결하고, 임직원 감축하는 게 되레 정답 같습니다. 민영화하면 코레일 사장과 같은 자리가 또 하나 생기고, 코레일 조직 규모에 준하는 화이트 칼라 책상이 또 생겨 일자리 창출에 기여는 하겠군요. 그러기엔 너무나 비효율적입니다.
6. 철도 파업은 당장 국민이 불편합니다. 그러나 국민도 ‘빨리빨리’ 해결하는 것을 정부의 능력으로보지 말아야 합니다. 협상 기간이 길어지니 국민의 뜻이 모아지고, 국민의 뜻에 정부 그리고 사측과 노측이 눈치를 보고, 정치권도 대안을 내놓습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색이 깊어지고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넓어집니다.
7. 정부에 대고 빨리빨리 해결하라는 주문은 소통하지 말라는 주문과 같습니다. ‘불통’을 국민이 부추기는 거죠. 오늘 국회 소위 구성이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해결 실마리가 될 것 같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