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아이돌 그룹의 팬덤 세계와 그 문화를 흥미롭게 조명한 책이 나왔다.
JYJ 그룹 팬덤의 활동을 현장감 있게 르포 형식으로 들여다 본 ‘JYJ 공화국’이 그것. 그동안 전반적인 팬덤 현상을 살펴본 책은 있었으나 이처럼 특정 그룹의 팬덤을 다각도로 분석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팬들을 위한, 팬들에 의한, 팬들의 나라’란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의 주인공은 스타보다는 팬이다. 스타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분석 대상도 독자도 저자도 모두 팬이다.
저자인 이승아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의 강단과 e스쿨을 통해 미국과 중남미 대학생들에게 한국의 대중문화와 한류를 가르치고 있다.
JYJ 멤버들의 데뷔 시절부터 10년 동안 그들의 활동을 관찰해 왔고 국내외 공연 현장과 팬사이트 회원들을 직접 취재하기도 했다. JYJ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그래서 종종 우호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씨는 “팬덤 밖에서 거리를 둔 채 피상적이고 비판적으로만 팬문화를 바라보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팬덤 안으로 들어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팬들의 집단행동 원리와 심리 등을 분석하는 서구식 방법론을 취했다”고 말했다.
JYJ팬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
이 책은 JYJ 멤버들이 홀로서기 위해 소속사를 벗어나 법적 소송을 벌인 2009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JYJ가 걸어온 과정을 시간 순으로 따라가면서 그동안 팬들이 어떤 시각에서 어떤 활동을 이어왔는지 추적한다.
저자는 팬들이 JYJ의 법적 소송을 돕기 위해 법원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업계를 상대로 탄원서와 진정서를 제출하고 더 나아가 고소 고발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모습은 팬덤세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고 진단한다.
JYJ의 방송활동과 음악활동이 제약을 받게 되자 모금 활동을 통해 신문-버스-지하철 광고를 내는 것은 물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부, 국가적 선거에서의 투표 행위 등 팬덤 내에서 공적 행위가 자생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JYJ 팬들은 팬으로서, 소비자로서,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등 새로운 모습의 팬덤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대중문화예술인을 위한 표준전속계약서를 공시하는 데도 팬들의 참여정신과 행동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저자는 JYJ 팬덤이 누구의 지시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팬 각자가 자신들이 믿는 가치와 자신들이 지지하는 스타를 위해 평등한 입장에서 자발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공화국이란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실제로 팬덤 내의 수많은 팬사이트들은 구성원도, 활동 양상도 서로 다르지만 큰 이슈가 생길 때면 서로 협력한다. 단순히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만 편드는 소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스타와 팬, 팬과 팬, 팬과 사회의 바람직한 관계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저자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인권과 자유 재점검 돼야”
팬덤의 내부 사정과 속얘기를 가십처럼 군데군데 보여주는 이 책은 한국사회와 대중문화계의 뒤틀린 현주소도 비판한다. 법적 소송이 ‘합의’란 형식으로 마무리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정명령을 내렸음에도, JYJ 멤버들이 대통령 해외순방 사절단과 국가가 주도하는 국제적 행사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방송 출연과 음반 유통이 여전히 제약을 받는 모순적인 상황,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묵인해주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인권과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서도 더 나아가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는 대중문화 한류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한국의 대중문화 시스템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은 수준으로 재점검돼야 한다”며 “대중문화를 떠받치는 세 개의 받침대, 즉 제작자와 스타와 팬이 각자의 자리에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줄 때 대중문화가 튼튼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