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무대로 돌아온 '뮤지컬 대세' 한지상… “인기? 잘 모르겠어요”

[인터뷰] 연극 무대로 돌아온 '뮤지컬 대세' 한지상… “인기? 잘 모르겠어요”

기사승인 2014-01-08 10:40:01

[쿠키 문화] 지난해 배우 한지상(31)은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스칼렛 핌퍼넬’, ‘보니앤클라이드’ 등 7편의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면서 데뷔 10년 만에 집중 조명을 받았다.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는 그의 숨 가쁜 행보는 지난달 21일 시작한 연극 ‘레드’ 무대로 이어졌다. 지난 2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대기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요즘 ‘뮤지컬계 대세’로 통한다. 인기를 실감할까.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길거리에 맨 얼굴로 자유롭게 다니고 있어요.(웃음)”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3년 연극 ‘세발자전거’로 데뷔했다. 하지만 특유의 카랑카랑한 철성(鐵聲)에, 성량도 그리 큰 편이 아니라 프로 배우로서의 시간을 뮤지컬 무대에서 주로 보냈다. 연극 ‘레드’로 4년 만에 연극 무대에 다시 선다.

“스토리에 음악, 안무까지 뼈대가 만들어져 있는 뮤지컬은 거기에 의지할 수 있어 든든하죠. 하지만 연극은 (보조) 음향은 물론 마이크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배우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들어야 해요. 오래간만에 서는 무대이지만, 처음부터 연극으로 시작했기 때문인지 부담은 별로 없었어요. 연극과 출신 배우들이 그렇듯 연극 무대는 고향 같은 곳이에요.”

사실 이번 무대는 그에게 그다지 유리한 조건(?)이 아니다. 이 작품은 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가 1958년 미국 뉴욕 시그램 빌딩의 ‘포시즌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를 의뢰받고 작품을 완성했다가 계약을 파기한 실화를 토대로 한다.

로스코를 찾아온 가상의 인물 켄과 로스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 세대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지만, 결국 또 다른 아버지 세대가 되어 밀려날 수밖에 없는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11년 국내 초연 당시 로스코 역을 맡았던 강신일과 켄 역의 강필상이 다시 무대에 섰고, 한지상은 이번에 켄 역할로 처음 합류했다.

대한민국 연기자 중 발성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배우 강신일과 펼치는 2인극인데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말이 ‘소극장’이지 높은 천장 때문에 배우들에겐 쉽지 않은 공간이다.

그는 “발성은 사실, 제 업보라고 생각해요. 발성이나 그런 것에 승복하고 싶지 않아요. 기술적인 것보다 저만의 진심이면 통하리라 믿어요. ‘자기 자신을 감동시키지 않으면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던 대학교 1학년 때 교수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고 있어요.”

게다가 현대 화가들과 미술 사조, 여기에 다양한 철학과 인문학적 내용을 담은 어려운 대사를 속사포처럼 쏟아내야 하는 역할이다. 그는 결코 쉽지 않은 이 작품에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미술을 다루고 있지만 이 정도 깊이의 철학과 인생을 다루는 작품은 오래간만인 것 같아요. 인생을 세세히 들여다보는데, 뭐랄까,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미분해서 쪼개고 쪼개서 들어간다고나 할까요. 미술 이전에 인생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듯해요.”

작품은 특히 밀어내고 또 밀려나는 예술가의 삶을 적나라하게 다룬다. 한지상이 극에서 내뱉는 대사들 역시 그렇다. 그런 ‘부침’에 배우 한지상은 준비가 돼 있을까.

“밀려났다가 밀려오는 그런 반복에 익숙한 편이에요. 사실 요즘 조명을 받고 있다고 말하지만 전 크게 인지하지도 못하겠고 막 동요되지도 않아요. 저는 계단 밟듯이 차근차근해 왔거든요. 올해 한 일곱 작품도 한 작품씩 최선을 다해서 해왔던 것이지 대박을 터뜨리고 그런 건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그는 특히 이번 작품의 파트너인 강신일에 대해 큰 신뢰감을 감추지 않았다. “매번 저를 다르게 봐 주시고 제 말을 들어주시고 다르게 뱉어주시는 강신일 선생님의 매일 다른 그 에너지를 보면서 매일 다른 공연을 기대하게 돼요.” 그는 특히 영화 ‘공공의 적’에서 강신일이 설경구와 보여준 호흡을 인상적으로 봤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두 배우가 나눴던 호흡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무대에서 제 대사와 에너지도 섬세하게 받아주시고 저를 존재하게 해주는 강 선생님의 배우적인 인자함 덕분에 제가 마치 설경구가 된 듯한 기분이에요. 연극 ‘레드’는 켄이 2년 동안 성장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전 연극이 진행되는 5주 동안 한지상이란 배우의 성장으로 보고 싶어요. 1월 26일 마지막 공연 때까지 차근차근 성장하고 싶어요.”

연극을 마치면 그는 오는 3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조력자 앙리 뒤프레 역을 맡아 다시 뮤지컬 무대에 선다. 특별히 도전하고 싶은 배역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없다”고 답했다. 대신 “어떤 배역이든 자기화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답을 이어갔다.

“관객들에게는 좋게 말하면 기대와 예상, 나쁘게 말하면 고정관념, 선입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정서가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제 노래 스타일이 관객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어요. 대다수의 뮤지컬 배우들은 아우르는 스타일인데, 제 노래는 송곳에 대비할 정도로 철성이거든요. 그런데다 좀 쉽게 쉽게 부르니까 브로드웨이 스타일에 익숙한 관객들은 저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차근차근 해오다 보니 결국 내 답도, 내 스타일도 인정해주신 것이겠죠. 그래서 자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의 향후 계획을 물었다.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고, 또 운명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을 개척해나가는 현명함을 발휘하고 싶어요. 전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 앞자리에서도 ‘잘 안 들린다’며 짜증을 낼 정도로 조용조용히 말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배우가 됐을까요. 그건 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될 것이냐는 여지는 저에게 맡겨 주신 것 같아요. 제가 앞으로 만들어가야겠죠. 저는 허황하게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작품 하나하나를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렇게 30대를 마무리하고 또 40대로 넘어가면서 다음 행보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배우 한지상은 10년 만에 쏟아지는 언론의 조명과 팬들의 환호에도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은 채 꿋꿋하게 걷고 있는 듯했다. 지난 10년간 자기만의 길을 걸어오면서 인기와 유명세의 허망함을 체득한 듯, 조용하지만 자기가 할 말은 조근조근 다 하는 모습. 배우 한지상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이유 없는 선택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김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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