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옛말에 ‘둔한 자는 장수하고, 예민한 자는 요절한다’고 했습니다.
2. 새누리당이 20일 대전 서구을 당원협의회위원장에 이재선 전 의원을 임명했습니다. 15·16·18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 전 의원은 옛 자유선진당 최고위원과 옛 선진통일당 최고위원,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이 서구을 위원장 자리는 ‘철도파업’으로 ‘지명도’를 높인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지난 16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를 만나 자신의 측근을 위원장에 인선해 달라고 건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최 사장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이 지역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바 있습니다. 최 사장은 지난해 10월 코레일 사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서구을 당협위원장으로 있었고 이후 이 자리는 비어 있었죠.
3. 결론적으로 최 사장은 측근을 통해 서구을을 직·간접적으로 관리하려다 실패한 셈입니다.
그때 황 대표가 기자들에게 “(최 사장이) 자기 지역구였으니까 정치 좀 하고 싶은데 돌봐달라는 그런 얘기지”라고 말해 최 사장의 청탁(?)이 드러났습니다. 즉각 야당과 민주노총, 시민단체가 “철도 파업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무 공기업 수장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만 좇고 있다”며 사퇴를 촉구했었죠.
4. 최 사장 얘기가 알려졌을 때 ‘유리천장’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참 야심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 철도민영화에 반대했다가 코레일 사장이 되자 찬성으로 급선회한 것에서도 야심가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죠.
그런데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한 ‘철도파업’ 문제가 정치권의 수습으로 간신히 봉합되자마자 지역구를 챙겼습니다. 황우여 대표가 최 사장을 내치기 위한 고단수 ‘흘리기’가 아니었으면 드러날 일도 아니었죠. 최 사장이 처세에 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티즌은 "처음에는 신선한 이미지로 괜찮은 인물인줄 알았는데…" 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결국 최 사장은 이날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주어진 임기 3년간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5. 구한말 L모라는 고위 관료도 처세에 달인이었습니다. 시류 변화를 읽는 안목이 탁월했죠. 그는 조카에게 “앞으로 미국이 승(勝)할 테니 너는 영어를 배워 둬라”고 했을 만큼 멀리 내다 봤습니다. 앞서 그는 요즘으로 치자면 국제학교에 해당하는 신식교육기관 ‘육영공원’을 졸업하는 기민함을 보였습니다. 권력자 흥선대원군과는 사돈 간이었고, 개화파든 수구파든 가리지 않고 인맥을 쌓았죠.
6. 두 사람의 인맥관리 노력을 크게 탓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제 몸과 제 가문만 위한다면 지도자로서 결격 사유가 크다는 거죠.
7. 최 사장이 노-사 간 벌어진 뒷수습에 충실하고, 때가 되서 코레일 사장을 그만 둔 후 당원협의회위원장 도전에 나섰다면 그의 ‘스펙’으로 보아 무난했을 겁니다. ‘흥선대원군’ 눈에도 든 분이이었으니까요. 더 나아가 ‘여성’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때가 되면 심지를 펼치기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8. 도리를 버리고 욕망을 따르니 모양이 우습게 됐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