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서 뒤로 밀린 북한 이슈…오바마 국정연설서 실종

워싱턴서 뒤로 밀린 북한 이슈…오바마 국정연설서 실종

기사승인 2014-01-29 19:00:01
[쿠키 지구촌] 북한 문제가 미국 워싱턴에서 뒤로 밀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며 수차례 강조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에서는 실종됐다.

신년 국정연설에서 사라진 ‘북한’

28일 저녁(현지시간)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오바마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은 북한 문제가 얼마나 워싱턴에서 ‘후순위’로 밀려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가진 신년 국정연설의 거의 대부분을 미국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국내 문제에 할애했다. 대외정책은 이란 핵협상과 시리아 내전 등이 그나마 비중있게 처리됐다.

아시아중시정책 등 아시아 문제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떠오르는 강국으로 미국이 요즘 부쩍 경계하는 ‘중국’은 2번 거론됐는데 그마저도 한번은 투자자들에게 ‘중국보다 미국에 투자해달라’고 호소할 때 사용됐다.

특히 핵개발 등 북한 문제는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한국이나 일본이라는 단어도 사용되지 않았다. 워싱턴 외교가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전략적 인내’가 실제는 ‘전략적 방관’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대외정책 우선 순위에서 북한 문제가 뒤로 밀린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돼 왔다.

2012년 봄 갓 출범한 북한 김정은 정권이 미국과의 ‘2·29합의’를 뒤엎고 장거리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대북 ‘관여(engagement)’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는 ‘북한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상대’라는 신뢰의 위기가 주요한 원인이다. 글린 데이비스 6자회담 미국대표 등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죽은 말을 몇 차례나 반복해서 살 수는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아울러 미국이 북한의 3차 핵실험 결과 등에 대한 치밀한 정보수집과 분석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 수준과 미사일 기술이 ‘가까운 시일 내’에는 북한이 공언하는 것만큼 미국에 실제적 위협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장성택 처형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스위스 다보스포럼 연설 등을 통해 ‘통일은 대박’이라며 한반도 통일 문제를 자주 언급하지만 미국 외교정책에서 북한 이슈의 비중이 변화할 가능성은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 보다는 북한 문제와 관련, 한국 정부가 대북 정책 주도권을 쥐는 한편 북한에 대해 중국이 영향력을 적극 행사하는 식의 방안을 미국이 은연중에 바라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신년 연설에서 북한 이슈 ‘생략’은 앞으로도 3년간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 비핵화 등 북한 문제가 오바마 행정부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할 것임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의 경우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첫해 국정연설 바로 전날 3차 핵실험을 하자 “북한 정권은 국제 의무를 준수함으로써 안전과 번영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도발 행위는 자신만 더 고립시킬 것”이라는 내용을 국정연설에 담았다.

현지 외교소식통은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를 담보하기 전에는 미국 정부가 쉽게 협상에 나서기 어려운 국면”이라면서 “워싱턴 외교가에서 외면받는 북한 문제 속성의 단면이 이날 국정연설에도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美 중산층 살리기 승부수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 문제에선 ‘중산층 살리기’ 카드를 또 한번 내세우며 미국인들 마음잡기에 나섰다. 집권 2년차를 맞아 새 정책을 내놓기보다 일자리 창출, 실업자 지원, 최저임금 인상, 소득불평등 해소 등 기존 정책에 대한 실행 의지를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특히 “의회가 당파적 교착상태에서 벗어나 경제적 기회를 회복하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미국인 가족들의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 의회의 승인 없이 언제 어디서든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이 최저임금 인상, 장기실업자 구제 등을 추진하는 데 발목을 잡으면 행정명령을 통해서라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11월 중간선거 표심을 의식한 승부수란 평가다. 집권 민주당 표밭인 중산층 및 저소득층을 끌어안는 어젠다를 내세워 현재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원을 공화당에 내주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또 중산층 살리기란 자신의 정책 구상을 실현하면서 조기 레임덕(권력누수)도 막으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이를 반영하는 듯 그의 연설에서 일자리(38회), 고용 또는 실업(17회), 경제(11회), 기회(10회), 평등 또는 불평등(8회), 중산층(5회), 공정(3회), 최저임금(3회) 등의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공화당은 “대결의 정치”라고 반발하고 있어 미 정국이 연초부터 냉각될 전망이다.

워싱턴=국민일보 쿠키뉴스 배병우 특파원, 백민정 기자 bwbae@kmib.co.kr
배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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