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1 설특집 '단언컨대 백년의 전설', 콘셉트는 좋으나 내용은 영…

KBS1 설특집 '단언컨대 백년의 전설', 콘셉트는 좋으나 내용은 영…

기사승인 2014-02-03 16:46:01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 지난 1일 방영된 설특집 ‘단언컨대 백년의 전설’은 어젠다 설정이 빼어났습니다. ‘근·현대 한국백년’에 대한 세대 간 이해를 높이려는 기획 의도가 보입니다. 시작품(파일럿 프로그램)인 듯 합니다.

수백 년에 걸쳐 시민사회를 형성해온 서구와 달리 근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성장을 한 한국 사회. 그 ‘전설 같은 성장’을 통해 물질적 풍요를 누리긴 하나, 우리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2. 특히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 간에는 세대의 단절 현상이 뚜렷이 잡힙니다. ‘100년의 이해’ 없이 소통하기 힘든 구성원이 한 공간 안에 머물고 있는 거죠. 좁게는 가족 구성원이 그렇습니다.

3. 이 힘든 주제를 제작진은 토크쇼 형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채널의 ‘역사저널 그날’과 같은 재미있는 교양 포맷입니다. ‘썰전’(jtbc) 재해석 프로그램 같기도 하고요.

4. 이날 주제는 ‘배지(badge)’였습니다. 식민지배와 전쟁에서 벗어난 가난했던 한국인이 출세를 위해 목숨 걸고 얻고자 했던, 즉 아날로그 시대의 키워드가 배지였습니다. 그 출세는 성공이 보장되는 명문 학교를 들어가야만 가능했고 따라서 배지는 ‘신분’의 상징이었습니다.

5. MC는 가수 조영남, 김민정 아나운서였습니다. 게스트는 인요한(연세대 의대 교수) 강석진(정치평론가) 김태형(심리학자) 소효정(포항공대 교수) 임윤선(변호사)씨였고요.

6. 한데 이 프로그램은 어젠다 설정에만 성공했을 뿐 내용은 빈약했습니다.

‘경기고·서울대’라는 배지를 논하다 갑작스레 자동차·명품 핸드백·카폰·양주·성형·스펙 등을 현대적 의미의 배지라며 자료화면 등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김태형씨가 답답했던지 “명품은 배지가 아니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과시하려고 하는 것은 차별일 뿐이다. 배지는 (배지 단 사람에게) 존경심이 생겨야 진짜다”라고 정리합니다.

7. 앞서 사법연수원생이 배지의 힘을 보여주고자 경찰서에서 노상방뇨를 한 후 연수원 배지를 보여주며 힘자랑하는 사례, 명품이 과시욕만은 아니다라고 적극(?) 변호하는 사례, 한 바에서 벤츠 자동차 키를 보여주며 “내일 수술 있다”고 자랑하는 의사 사례 등을 소개한 게스트에 대해 김태형씨가 “일반화의 오류”라는 따끔한 지적을 하죠. 인요한씨도 배지 단 사람들의 사회적 책무를 등진 도덕적 결핍을 얘기합니다.

8. 전체적으로 일부 엘리트 게스트들의 ‘자기자랑’ 프로그램 같았습니다. 그들 얘기 듣자면 지나간 100년은 교복이 너무 입고 싶어 학교 간 친구에게 교복 빌려 ‘미8군 배지’ 달고 외출하는 해프닝을 벌인 ‘공돌이, 공순이’가 없었던 시대 같았습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의 저자 농사꾼 전우익 같은 인물이 게스트에 투입됐더라도 어설픈 프로그램에서 벗어났겠다 싶었습니다.

9. 연출의 깊이가 더 필요합니다. 손쉬운 출연자 섭외는 외눈박이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하지만 공영방송에 걸 맞는 괜찮은 콘셉트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브랜드와 욕망의 기호학을 보는 재미”라는 네티즌의 반응이 ‘개념’있어 보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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