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선고에서 1심 법원은 “검찰이 최소한의 객관적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기소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유일한 유죄 증거였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1년 넘게 정국을 들썩였던 국가기관 대선 개입 수사와 공소 유지를 책임졌던 검찰은 결과적으로 ‘미흡한 수사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권은희의 진술’을 재판부가 받아들일지였다. 권 전 과장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관 17명 중 유일하게 ‘김 전 청장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직원 노트북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신청을 김 전 청장이 막았고, 분석이 끝난 하드디스크에서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ID는 빼고 보내도록 지시했다는 등 혐의는 다양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6일 “권 전 과장의 진술은 객관적으로 어긋나는 부분이 많아 믿기 어렵고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권 전 과장은 앞서 법정에서 “김 전 청장이 2012년 12월 12일 전화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증인으로 출석한 다른 경찰들은 법정에서 ‘김 전 청장이 그런 전화를 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경찰이 허위 진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권은희 한 명’의 진술보다 나머지 경찰들의 집단 진술에 비중을 뒀다. 여러 직책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로 다른 경찰들이 장시간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서울청이 수서서 수사팀에 하드디스크를 전달하면서 ID와 닉네임을 누락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며 “검찰이 권 전 과장의 진술만 지나치게 믿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국정원 여직원 입회 하에 압수 노트북의 분석 범위를 제한한 것도 무죄로 판단했다. 경찰이 압수수색이 아닌 임의제출 형식으로 노트북을 받았기 때문에 당사자 참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수서서가 국정원 게시글 검색 기준으로 제시한 100개의 키워드를 서울청이 4개로 줄인 것도 시간절약상 필요했고 실무상 문제가 없었다고 봤다.
2012년 12월 16일 대선 후보자 토론회 직후 진행된 ‘국정원 수사 중간수사 결과 발표’ 역시 법리상 문제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당시 경찰은 ‘노트북 분석 결과 문재인 비방, 박근혜 지지 글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ID가 발견된 사실은 경찰이 빼고 발표한 정황이 드러나 ‘허위 발표’ 논란이 일었다. 재판부는 처음부터 분석 범위가 게시글로 한정돼 있었기에 ID 미발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봤다. 당시에는 국정원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부분 경찰들은 국정원 대북 활동에 ID가 사용된 것으로 인식했다는 논리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만 “경찰의 중간수사 발표 내용이 시기와 내용면에 있어서 최선이었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중간수사 발표에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만 발표 내용에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는 점은 일부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