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꾸야 여관'(1)] 1973년 서울 종로 YMCA호텔

[소설 '기꾸야 여관'(1)] 1973년 서울 종로 YMCA호텔

기사승인 2014-02-07 18:07:00

[전정희 소설 ‘기꾸야여관’(1)]

# 1973년 서울 종로 YMCA호텔

‘똑똑똑’

베니어합판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런 노크였다.

60촉 전구색 전등이 오래됐는지 한두 번 깜빡거렸다. 세이게이 모토유키(淸溪 基之)는 순간 긴장했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지 1시간은 된 것 같았다. 설핏 잠들었던 세이게이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조용했다.

“다레뎃스까?”

“…”

호텔 복도는 조용했다. 종로의 밤거리는 통행금지 직전 귀가하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가 이제는 개미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았다. 가로등만 빈 도로 위를 비추고 있었다.

“…저기”

여인의 목소리였다. 앳된 음색이었다.

세이게이는 그제야 좀 안심이 됐다. 한국 중앙정보부(KCIA) 요원이 아닐까 지레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러나 자물쇠 고리를 걸어 한 뼘 정도만 열었다.

“안녕?…”

어색한 인사였다. 여인은 잠시 세이게이와 눈을 맞추더니 이내 깔았다. 이마가 반듯하고, 코가 오뚝했다. 희고 작은 계란형 얼굴이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한국어 교사입니다. 들어가도 될지요?”

“강고쿠고노 센세이(한국어 선생)?”

“네…”

세이게이는 고리를 풀고 문을 열었다. 여인은 붉은 나일론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저는 가이드를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뭔가 잘못 찾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알아듣지 못하는지 눈만 껌뻑 거렸다. 제대로 보니 얼굴 화장이 짙었다. 흰 블라우스 단추 하나가 풀어져 있었고 값싼 향수 냄새가 세이게이의 코를 스쳤다.

세이게이가 문을 닫으려 하자 여인은 당황해 하며 말했다.

“세이게이 선생님. 저는 한국어 교사예요. 저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부탁이에요.”

그러면서 여인은 낡은 문을 잡았다. 빨간 매니큐어를 발랐으나 손마디가 굵었다. 세이게이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불쾌했다. ‘남산(중앙정보부 약칭)’ 사람들이 흘렸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함께 프론트로 가보죠.”

세이게이는 재빨리 문을 잠갔다. 여인이 울상이 됐다. 그가 복도를 따라 프론트로 향했을 때 여인은 따라 나서지 않았다.(계속)

전정희 jhjeon2@kmib.co.kr/ 국민일보 문화부장, 인터넷뉴스부장, 종교기획부장, 종교부장 등 역임. 인터넷 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을 국민일보 쿠키뉴스에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민족주의자의 죽음’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공저), ‘TV에 반하다’ ‘아름다운 전원교회’ 등이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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