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꾸야여관'(2)] 1973년 서울 종로 YMCA호텔 '안녕' 양

[소설 '기꾸야여관'(2)] 1973년 서울 종로 YMCA호텔 '안녕' 양

기사승인 2014-02-10 08:51:00

[전정희 소설 ‘기꾸야여관’(2)]

# 1973년 종로 YMCA호텔 ‘안녕’양

세이게이가 프론트에 도착했을 때 직원은 내려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맞았다.

“저는 한국어 선생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내보내 주세요.”

프론트 직원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세이게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개의 일본인이 기생관광을 즐기고, 한국 젊은 여인을 보면 사족 못 쓰는데 이를 내치는 일본인을 처음 본 것이다. 희한한 인물이었다.

“네…저희들은 잘 모르는 일입니다만, 보통 한국어 선생님들을 원하셔서…”

직원은 유난스런 일본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면서도 자신들이 올려 보내지 않았다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어찌됐던, 그 ‘안녕’양을 내보내 주세요.”

*

세이게이가 다시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나 방에 다다랐을 때 여인은 등을 문 옆 벽에 기대고 서 있었다. 슬픈 듯 했다.

“곤방와(안녕)?”

밤인사를 받은 세이게이는 난감했다. ‘안녕’양의 슬픈 눈망울이 그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을 갓 넘겼을 나이였다.

“선생님, 저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 통금이 지나서 갈 데가 없어요. 부탁입니다.”

세이게이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손짓으로 방을 가리키고 호루라기 부는 입 모양을 한 것으로 보아 통금을 얘기했으리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세이게이가 문을 열었을 때 여인은 혹시 못 들어가게 할까봐 그와 동시에 들어섰다. 그녀에게서 나프탈렌 냄새 같은 향이 코끝을 스쳤다.

방안에 들어서자 ‘안녕’ 양은 갑작스레 편안한 자세로 침대 위로 가서 앉았다. 침대가 출렁하자 “어머”하며 놀라며 소녀같은 쑥스런 웃음을 지었다. 여인은 세이게이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심을 했다.

“어, 디, 살아요?”

세이게이가 서툰 한국말로 물었다.

‘안녕’양은 환한 미소를 짓더니 “청계천이요. 청, 계, 천”하고 답했다.

세이게이 마음이 쿵하고 울렸다.

‘슬럼가 청계천 여인이라니….’

그녀의 고단한 삶이 한 순간 읽혀져 애써 눈을 외면했다.

“선생님, 저는 씻고 싶어요.”

‘안녕’양이 욕실로 들어가자 그는 도대체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안녕’양은 세이게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콧노래를 불렀다.



‘…세상은 밝아오고 달마저 기우는데

수만리 먼 하늘을 날아가려나~~아~

가엾은 작은 새는 남쪽하늘로

그리운 집을 찾아 날아만 간다’



한국어가 서툰 세이게이에게 하늘, 남쪽, 새, 집 등의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맑지만 슬픈 노래라고 생각했다. 집이 없는 여인이었다. (계속)

전정희 jhjeon2@kmib.co.kr/ 국민일보 문화부장, 종교부장 등 역임. 인터넷 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을 국민일보 쿠키뉴스에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민족주의자의 죽음’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공저), ‘TV에 반하다’ ‘아름다운 전원교회’ 등이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2@kmib.co.kr
전정희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