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꾸야여관'(3)] 풋풋한 일본 여대생 같았던 '안녕' 양

[소설 '기꾸야여관'(3)] 풋풋한 일본 여대생 같았던 '안녕' 양

기사승인 2014-02-11 14:50:01

[전정희 소설 ‘기꾸야여관’(3)] 1973년 서울 종로 YMCA호텔

# 풋풋한 일본 여대생 같았던 ‘안녕’ 양

세이게이는 ‘안녕’ 양을 ‘남산’ 사람들이 보냈다고 판단했다. 남산 요원들은 청계천 빈민가를 드나드는 일본인이 눈엣가시였으나 달리 제재할 방법이 없자 그의 도덕성을 훼손하려 들었다. 여자나 밝히는 파렴치한으로 몰아 한국 입국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너도 기생관광을 즐기는 어쩔 수 없는 남자야’

세이게이는 이렇게 말하는 남산 요원 김택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능글능글한 40대 후반의 그는 툭 튀어나온 눈을 굴리며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세이게이 선생, 한국은 북괴와 대치 중입니다. 그 빨갱이 새끼들이 보고 좋아할 사진을 왜 찍으십니까? 재작년 완공된 삼일고가도로 같이 멋진 곳을 담아 보세요. 대한민국이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라이카 카메라를 뺏듯이 손에 쥐고 서울 사근동 한양대 건물을 뷰 파인더로 들여다봤다.

“선생, 대학 건물이 훌륭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뭐 하러 이런 판자촌을 담으십니까? 취미 참 독특하십니다. 술주정뱅이와 사기꾼들이 득시글득시글 한 곳이 저 곳입니다.”

며칠 전 청계천 뚝방에 서서 김택현은 그렇게 싫은 내색을 했다. 일본인의 신변보호를 한다는 명목으로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가 못할 경우 새로운 망원(網員)이 늘 그를 관찰했다.

청계천 슬럼가 송정동 출신인 ‘안녕’ 양을 세이게이 투숙 호텔 복도까지 데려다 준 것은 김택현의 망원인 건달 해태였다. 답십리 판자촌에서 양아치 노릇을 하고 있는 해태는 게으르긴 해도 독이 오르면 잔인하기 그지없어 누구도 쉽게 다루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의 말에 해태는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김택현의 지시에 응했다. 끄나풀이 된 것이 영광인 해태였다.

*

그 사이 ‘안녕’ 양은 몸에 타월만 두른 채 욕실에서 나왔다. 세이게이는 적이 당황하여 눈을 돌렸다. 욕실에선 더운 수증기가 쏟아져 나왔다.

“선생님, 너무 시원해요. 살 것 같아요. 정말 씻고 싶었거든요.”

그녀가 긴 생머리 끝을 흰 타월로 닦아내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여인이라기보다 풋풋한 일본 대학 1년생 같았다.

여인은 화장대에 앉았다. 그리고 핸드백을 열어 화장품을 꺼내 얼굴에 발랐다. 곧 드라이기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여인은 마치 부잣집 딸내미 마냥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불편한 세이게이는 괜스레 일어났다 앉았다를 번복했다.

그렇게 화장을 마친 ‘안녕’ 양은 목욕 가운을 들더니 큰 타월을 순식간에 벗어버렸다. 코카콜라 병같은 몸매가 드러났다. 세이게이는 시선을 방바닥으로 깔았다.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은 이상하세요. 아버지 같으세요.”

여인은 그러면서 침대 위에 누웠다.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마술을 부리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무릇 여인은 몸을 살짝만 틀어도 전혀 다른 모습의 요부가 된다. ‘여자 생명’만이 갖는 능력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던 세이게이는 커튼을 살짝 젖혀 종로의 밤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종로서점 뒤로 입시 학원 간판이 여기저기 눈에 띠었다. 종로서적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도쿄 키노쿠니야서점과 같은 한국 최대 서점이라고 했으나 키노쿠니야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아 보였다.

“선생님, 저는 졸려요.”

여인은 뭔가 종용하는 눈치였다. 화대를 받아야 하는데 이 남자가 움직이려 들지 않아 걱정되는 듯 했다.

세이게이는 정작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여권과 현금 등이 든 가방을 이 낯선 여자가 훔쳐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염려스러웠다. 그렇다고 침대 위에서 같이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 사이, 정말이지 잠깐 사이 여인은 잠이 들었다. 그녀로서는 백설공주와 같은 잠이었다. 세이게이는 탁자 앞 의자에 앉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새벽 4시. 야간 통해 금지가 풀렸다. 종로에서 택시와 차들이 질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세이게이는 ‘안녕’ 양을 깨웠다. 여인은 확 정신이 들었는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당황한 그녀는 새벽이 됐음을 깨닫고 세이게이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였다.

“당신은 남자가 맞습니까?”

여인은 그러면서 몸을 일으켜 세이게이를 안으려 했다. 그가 여인의 어깨를 눌러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 지갑을 열어 돈을 주었다.

“나는 당신을 꾸짖을 수가 없다. 하루 빨리 이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라. 신이 당신을 보호할 것이다.”

김택현의 미션은 실패했다. 그날 이후로도 세이게이가 한국에 들어와 YMCA호텔에 묵을 때마다 다양한 형태로 여인을 투입했으나 그때마다 거절당했다.

“아 쪽발이 새끼! 사람 환장하겠다. 뭐 저런 고자 같은 쪽발이 새끼가 다 있어. 저 병신을 확…”

김택현은 청계천 빈민을 선동하고 다니는 빨갱이 대학생들을 지원하는 사회운동가이자 목사인 세이게이를 옭아매지 못해 독이 바짝 올라 있었다. (계속)

전정희 jhjeon2@kmib.co.kr/ 국민일보 문화부장, 종교부장 등 역임. 인터넷 소설 ‘조선500년 익스트림’을 국민일보 쿠키뉴스에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민족주의자의 죽음’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공저), ‘TV에 반하다’ ‘아름다운 전원교회’ 등이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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