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받는 우등생 10%, 들러리 90% 졸업식’은 가라

‘상 받는 우등생 10%, 들러리 90% 졸업식’은 가라

기사승인 2014-02-14 22:13:00
[쿠키 사회] ‘달팽이는 느려도 늦지 않는다’ ‘왕관을 쓰려는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포기는 배추를 세는 단위다’….

14일 오전 11시 서울 성수초등학교 졸업생 116명은 졸업장과 함께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운동선수, 연예인, 교사, 아나운서 등 자신의 꿈에 꼭 맞는 격언이 미색 화선지에 수려한 붓글씨로 담겨 있었다. 특별한 졸업선물을 기획한 사람은 이 학교 하민수 교장. 과거 미술대전이나 교원미술실기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서예에 조예가 깊은 하 교장은 “아이들이 앞으로 넓은 세상에 나가 꿈을 펼치고 도전하게 될 텐데, 어떤 일에도 자신감을 갖고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에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단상에서 내려와 둘둘 말린 화선지를 엄마와 함께 풀어보던 장유경(13)양은 “교장선생님께서 제 꿈이 배구선수인 걸 아시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란 말을 적어주셨다”며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라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는 글씨를 받은 조은지(13)양은 “장래희망이 교사인데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졸업 시즌을 맞아 ‘상 받는 우등생 10%, 들러리 90% 졸업식’의 틀을 깬 새로운 형태의 졸업식이 등장하고 있다. 국민의례와 교장선생님 훈화, 동창회장의 상장 수여, 그리고 그저 가만히 서있다 오는 학생들로 이어지는 천편일률적인 졸업식 풍경이 졸업생 개개인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1인 맞춤형 졸업식’ ‘참여형 졸업식’으로 변모하고 있다.

올해 처음 학급별 졸업식을 택한 용인 상현초는 졸업식 장소의 대명사인 ‘강당’을 과감히 버렸다. 색다른 졸업식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교사들끼리 회의를 하다 최세정 교장이 “강당을 버리자”는 아이디어를 내 학생 중심의 학급별 졸업식을 하게 됐다. 전교생이 함께 모여 듣던 교장 훈화는 축하메시지가 담긴 영상편지로 대체하고, 우등상 대신에 담임교사가 직접 제작한 ‘맞춤형 상장’이 수여됐다.

6학년 1반 김준형(13)군은 ‘위 어린이는 웃기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친구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선물하여 건강한 우리 반 만들기에 이바지하였으므로 이 상장을 주어 칭찬합니다’라고 적힌 ‘우리 반 비타민상’을 받았다. 다리 다친 친구를 업어서 집에 데려다주곤 했던 박승민(13)군이 ‘세상의 소금상’을 받을 때는 졸업식에 참석한 학부모들로부터 큰 박수가 쏟아졌다. 독도 관련 UCC를 만들었던 학생에게는 ‘독도사랑상’, 회장 선거와 국제중 입시에 모두 떨어졌지만 끊임없이 목표에 도전하던 학생에게는 ‘무한도전상’이 수여됐다.

6학년 부장교사 윤경남(35)씨는 “기존 졸업식은 상을 받는 소수의 학생과 축사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전교생 모두 참여하기엔 무리가 있었다”며 “학급 특성과 분위기가 묻어나는 맞춤형 졸업식을 진행하니 학부모 참여도는 물론 ‘계속 이렇게 하자’는 호응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김수현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