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쇼트트랙 종목에서의 첫 금메달을 러시아에 안겨 준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29)는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 됐다. 15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남자 1000m 결승에 출전한 안현수는 ‘클래스의 차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면 한국팀은 조해리, 김아랑 신다운 등이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잇달아 패널티 판정을 받으며 상대적으로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안현수의 눈부신 활약은 그가 귀화를 선택해야 했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빅토르 안에게 직접 축전을 보냈고 박근혜 대통령은 “안현수의 러시아 귀화가 체육계 부조리 때문이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 같은 책임론은 과거 불거진 쇼트트랙계의 파벌 문제와 구타 사건을 재차 주목하게 만들었다.
안현수는 2010년을 전후해 부상으로 인한 부진과 소속팀의 해체, 그리고 파벌 갈등으로 힘겨운 시절을 보내다가 2011년 러시아 국적을 선택했다. 당시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빙상연맹과의 갈등’을 귀화의 주요 이유로 밝혔다. 이후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에이스였던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 된 가장 큰 이유로 ‘파벌 싸움’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2001~2002 시즌> 전명규(한체대) vs 비전명규(비한체대) 파벌의 등장
쇼트트랙 파벌 싸움의 시작은 199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한국 쇼트트랙의 ‘금밭’을 일군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이 있다. 전 부회장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시작해 15년 동안 국가대표팀 지도자로 있으면서 한국 쇼트트랙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았다. 감독으로 부임할 당시 여자선수들까지 구타했다는 구설이 돌았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가 감독 시절 획득한 메달이 780여 개에 이른다.
전 부회장은 김기훈, 전이경, 김동성, 안현수 등 자신 및 자신의 제자가 키운 에이스 선수들이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다른 선수들을 희생시키는 철저한 팀플레이를 강조했다. 이 때문에 과거 해외에서는 한국이 쇼트트랙 강국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국내에서도 종종 ‘에이스 밀어주기’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금메달을 딸 한 명을 위해 다른 선수들이 외국 선수들의 진로를 막아버리는 올림픽 정신과는 거리가 있는 전략이란 것이다. 결국 2002년 10월 희생을 강요당한 선수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전 부회장은 감독을 사퇴했다.
<2003~2004 시즌> “안현수 vs 비안현수” 갈등의 시작
2002년부터는 남자팀과 여자팀 코치가 분리되어 김기훈(남자팀), 이준호(여자팀) 코치 체제가 된다. 선수 시절 금메달을 휩쓴 김기훈 코치는 전 부회장이 키웠다. 김기훈 코치는 안현수를 발굴해 키웠고 그에게만 추월 방법 등 노하우를 전수했다고 알려졌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선 예비명단에도 없던 어린 안현수가 김기훈 코치의 특혜로 김동성과 함께 1000m 경기에 출전했다. 올림픽 후에도 안현수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탈락했지만 전 부회장의 지지를 받으며 국가대표로 부상했다. 안현수의 천재성을 알아본 전 부회장과 김기훈 코치의 안목은 탁월했지만 특혜를 받으며 등장한 안현수가 선수들 간 불화의 불씨를 안고 있었던 점은 부인 할 수 없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안현수 vs 비(非)안현수 구도가 생겨났다.
<2004~2005 시즌> 파벌 간 코치 쟁탈전… 하지만 회전문
김기훈 코치는 비전명규파 선수들의 폭로로 스케이트날 비리가 드러나 2004년 10월 사퇴했다. 이후 비전명규파 윤재명 감독이 남자팀을 맡게 된다. 하지만 윤재명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여자대표팀 내 구타파문 사건이 일어났다. 최은경 선수는 이 사건과 관련해 폭로를 주도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를 두고 남녀팀 모두를 비전명규파가 맡는 것을 경계해 전명규파이자 대표팀의 맏언니인 최은경 선수가 나선 것 아니냐는 설이 돌았다. 이 사건으로 김소희·최광복 코치가 물러나고 전명규파인 박세우·전재목 코치가 여자팀을 맡았다.
급기야 2005년 안현수에게 큰 상처로 남을 사건이 벌어졌다. 1월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서호진 선수가 자신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며 안현수를 구타했다고 알려진 것이다. 당시 안현수는 오른쪽 눈에 멍이 든 얼굴로 시상식에 올랐다. 이 일의 책임을 지고 윤재명 감독이 물러나고 김기훈 전 남자팀 코치가 재부임했다.
<2005~2006시즌> “더 이상 에이스 밀어주기는 없다”
김기훈 코치가 올림픽 남자대표팀 코치로 결정되자 비안현수파 선수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특정 선수만을 편애하고 다른 선수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코치 밑에서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며 선수촌 입촌을 거부했고 그 여파로 김기훈 코치는 사임했다.
2005년 7월 올림픽을 앞두고 새 지도자가 필요했던 빙상연맹은 윤재명 감독을 다시 기용하려했으나 안현수·최은경·강윤미와 학부모, 박세우·전재목 코치가 기자회견을 열어 반대 입장을 표했다. 당시 전재목 코치는 빙상연맹 고위진의 퇴진까지 요구했다가 결국 해임되고 안현수 등은 전재목 코치 해임에 반발해 전지훈련을 거부했다.
이후 남자팀 코치로 비전명규파인 송재근 코치가 부임되자 안현수는 전명규파 박세우 코치를 따라 여자팀에서 훈련받았다. 반면 비한체대파 여자 선수 진선유는 남자팀에서 훈련받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특히 2005년 11월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박세우 코치는 진선유를 제외한 여자선수들에게 “중국에게 져도 좋으니 나의 지도를 거부한 진선유를 막아라. 넘어져서라도 막아라. 실격당해도 좋다”라고 지시하고 선수들은 이를 실행했다. 이때 회의를 느낀 한 여자 선수는 비한체대파인 남자팀으로 이전하기도 했다.
‘에이스 밀어주기’에서 ‘에이스 밀어내기’로…
안기원씨의 인터뷰로 미루어볼 때 안현수는 2006년 이후 비안현수파 팀 동료들로부터 견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 탓일까. 안현수는 2008년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다 미끄러지면서 무릎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으로 세 차례나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안현수는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때도 뒷말이 돌았다. 이전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4월과 10월 두 차례 치렀는데 부상에서 회복 중이던 안현수를 탈락시키기 위해 이례적으로 4월 한차례만 열었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0년 소속팀인 성남시청까지 해체되면서 적(籍)이 없어진 안현수는 자신의 꿈을 위해 2011년 러시아로의 귀화를 선택했다.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에이스 밀어주기 훈련의 마지막 계보를 이은 안현수 역시 파벌싸움의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스러울 순 없을 것이다. 전명규 감독 시절 에이스 밀어주기에 불만을 품은 선수들이 지도자가 된 이후 악습을 끊기 위해 비안현수파를 형성해 대립한 것 역시 질타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각자의 입장이 있는 것.
어쩌면 파벌 싸움의 원인은 금메달만 따면 모든 것이 해결됐던 국민적 여론과 곪아 터질 때까지 문제를 방치했던 빙상연맹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번에도 개혁을 미룬다면 제2의 안현수가 등장해 다른 나라의 국기를 들고 환호하는 한국 출신 선수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